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소년의 말미와 청년의 초입을 돌아보다, <발레교습소>

변영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 소년의 말미와 청년의 초입을 돌아보다.

갈등의 진원지는 사방에 있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는 그해,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거나 또는 재수생이 되거나, 아니면 그 둘 중 무엇도 아닌 것이 실제로 돼버리는 경험을 맞이하는 그 첫해의 삶이 막막하다는 사실에 대해 대개는 알고 있다. 변영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 <발레교습소>는 청춘의 그 공백기에 쓰여지는 불안의 기록들을 담고 싶어한다. 영화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주인공의 시간을 다룬다. 그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순간에서 시작해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이제 막 고민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까지만을 다룬다. 잘난 척하며 그 너머로 넘어가는 것을 경계한다. ‘발레교습소’는 바로 그들이 모여 스스로 고민을 짜내고 해결하는 곳이다.

고3 민재(윤계상)는 몇년 전 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답답하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비행기 조종사인 아버지는 대를 이어 항공과에 갈 것을 종용한다. 한편 민재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같은 학년 수진(김민정)을 짝사랑한다. 어느 날 미팅 자리에 나가 서로 얼굴을 익히는 행운을 갖게 되지만, 진짜 그들의 관계를 맺어주는 곳은 구민회관 발레교습소다. 아버지의 차를 몰래 훔쳐타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던 민재가 길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발견하게 되고, 그 모습을 본 발레교습소 강사(도지원)는 사람을 친 죄를 눈감아줄 테니 발레교습을 받으라고 강요한다. 누명을 쓰지 않기 위해 민재와 친구들은 억지로 교습소를 다니고, 그곳에서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끌려오게 된 수진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금세 행복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발레교습소>는 주인공 민재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갈등과 관계들이 얽혀 있다. 먼저 그 나이 또래에 느낄 만한 수험생으로서의 부담감이 있다. 동시에 민재를 괴롭히는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며 아버지와의 보이지 않는 긴장이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수진과의 관계가 있다. 민재와 수진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지만 불안한 미래에 휩싸여 망설인다. 한편, 그가 동네에서 마주치는 불운한 소년가장 기태의 삶 역시 일별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 정도의 급박함은 아니지만 자기 길을 앞에 두고 방해받거나 어려워하는 친구 동완과 창섭의 이야기도 있다. <발레교습소>는 민재를 중심으로 다수의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얽히는 복잡한 이야기가 된다. 영화 속에는 이 모든 것을 되도록 다치지 않게 끌고 가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민재가 먼 친지들과 설날 식사를 같이 하다 결국 화를 내고 울음을 터뜨리며 외치는 장면은 위의 모든 관계들이 하나로 일렬하며 충격을 일으키는 민감한 정서적 순간의 표출이다.

그러나 <발레교습소>는 변영주라는 걸출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느슨하다. 사회적인 무게에서 벗어나 쉽게 유치해질 수 있는 소년, 소녀의 욕망과 상태에 관심을 가진 것에 딴죽을 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시기의 상태에 대해서 간과하는 일반적인 흐름에 용기있게 거스른다는 것은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태도이다. 아쉬움은 다른 곳에 있다. 주인공 민재의 감정에 따라 카메라의 고정과 유동을 결정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 마스터 숏이 거의 없는 이유는 어느 틀에도 정박하지 못하는 인물의 불안함을 영화적인 형식으로 표현하겠다는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이해된다. 그런데 그런 특출함을 제외하곤 전반적으로 숏과 신들의 그 상호 긴밀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 영화의 리듬을 쉽게 방해하는 유머들이 자주 개입함은 물론이고, 그 유머들이 제대로 웃기지 못한다는 것은 더 치명적이다(짧은 순간 웃음으로 정지된 극적 리듬을 유머의 강도를 통해 찰나적으로 다시 이어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재를 둘러싼 그 다수 인물들과의 관계가 쉽게 접착되지 않는다. 그 관계들이 관습적인 해소로 풀어지면서(비록 그것이 무한한 해소는 아닐지라도) 섣부른 휴머니티의 작동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너무나 흔한 감정으로 그들을 묶어내면서, 흔하지 않을 그 연대의 가능성은 오히려 힘이 떨어진다.

영화의 상업적인 제한 시간이 없었더라면 이 인물들의 이야기가 좀더 깊게 펼쳐졌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한편 누구나 할 수 있는 변명이다. 그 점에서 <발레교습소>는 무리수를 두었다. 염려했던 신인배우의 연기는 감독의 교감을 통해 생각보다 훨씬 세공되었지만, 그 대신 영화 자체에 걸었던 기대감은 흠집을 갖고 있다. <발레교습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거나, 더 적은 관계로 집약되었어야 한다.

:: 변영주 감독 인터뷰

“열아홉 그들의 진정성을 그렸다”

왜 발레인가.

도약 같은 멋진 동작을 하려면, 먼저 그것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본동작을 알아야 하는데, 이 아이들은 인생에서 그걸 못하는 애들이 아닌가? 그 점에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또 일상에서 쓸모없어 보인다는 것, 은밀할 수 있는 육체들이 타이츠를 입고 성큼 드러나는데, 사실은 또 그게 별것 아닌 것, 애들인데 몸은 어른인 것, 그런 점들 때문이다.

두 번째 극영화다. 첫 번째와 어떤 차이가 있나.

<밀애>는 변영주가 해보고 싶은 영화적 열망이 중심이었다. 그림이 중요한 영화였다. 다큐멘터리 하면서 억눌렸을지도 모를,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비스콘티의 영화처럼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하지만 <밀애>를 찍고 나서 30대 주부의 리얼리티에 대한 반성을 많이 했다. 캐릭터와 같은 나이의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발레교습소>는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나머지 것들이 배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발레교습소>의 주인공들 세대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감정을 갖게 되기를 바라나.

어떤 울림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열아홉일 때 서른아홉의 변영주를 상상해본 적은 없다. 전형적인 기성세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19살 때 있던 것이 지금도 남아 있고, 그중에는 세상에 맞설 용기도 있다. 결코 너희들도 그렇게 쉽게 기성세대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19살이기 때문에 하기로 결심한 영화인 셈이다. 어쩌면 이 영화가 착한 영화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열렸을 때 또래들은 오히려 닫힌 걸로 볼 수도 있다. 이해하는 입장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딱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발레교습소>는 19살 그들의 진정성을 담보로 한마디 하는 거다. 내 19살과 달라지게 하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포함하여.

갈등구조가 다소 관습적인 방식으로 해소된다. 예컨대 후반부 발레 공연장면.

나는 그것들이 해소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그렇다면 그건 훨씬 더 고급스럽게 찍혀야 한다. 그 점에서 단지 기록하는 느낌으로 찍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발레 공연장면도 후진 공간 안에서 별것도 아닌 것으로 박수를 조금 받는 것뿐이다. 발레 공연이 성공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우선 이 아이들이 칭찬이란 걸 받아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