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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와 피안의 세계, <언더 더 선>

엘렌과 첫 저녁 식사를 나눈 뒤 올로프는 그녀의 손을 바라본다. “당신의 빨간 손톱을 보니 딸기를 심고 싶군요.” 아름다운 화면이 아니라면 지극히 통속적인 대사다. 스토리는 그렇다. 40이 넘도록 섹스 한번 못해 본 남자가 아름다운 가정부를 들여 소망을 이룬다는 스웨덴판 ‘빨간 딸기’. 그리고 둘 사이에서 안달난 에릭은 엘비스의 춤을 추며 남성을 과시하는 철부지다. 그런데 50년대 스웨덴 시골의 한 농장에서 펼치는 지루한 연애담이 유럽 박스오피스 1위, 자국에서 백만관객을 동원했다는 것은 좀 다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우선 이 영화의 스타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아보기 힘들겠지만 망나니 에릭은 <아름다운 청춘>에서 수줍어하면서도 과감한 미소년 역할을 맡았던 주인공 요한 비더버그. 거기에다 도발적이면서도 전형적인 미인의 틀에서 벗어나는 엘렌 역의 헬레나 베르스트롬은 감독과 부부 사이인 스웨덴의 대표적 여배우다. 숫총각 역의 롤프 라스가르드 역시 연극무대에서 다져진 연기파 배우. 거기에다 감독인 콜린 너틀리는 90년대 초반부터 스웨덴영화를 살려놓은 대표적 인물 중의 하나다. 이러한 인재들이 엮어놓은 고감도 멜로드라마(?)는 전원을 배경으로 매우 세심하게 인물들의 감정을 엮어낸다. 다분히 연극적인 상황전개는 스웨덴 특유의 영화전통이 서려 있으며, 소품이나 대사의 활용도 세련되었다.

그러나 <언더 더 선>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청춘>이 보여준 세계관처럼 고통이나 현실의 고민이 없는 탐미적인 세계일 뿐이다. 어찌보면 안정된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듯, 50년대의 한가로운 전원은 뜨거운 태양 아래 노출된 채 도취와 쾌락에 빠져든다. 이 영화의 절정인 소낙비 속에서의 정사가 뜨거운 에로티시즘만으로 충만한 것도 바로 편안한 노출증 때문이다. 올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있기는 하지만 경쟁상대인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 비하면 치열함이 없는, 도피와 피안의 세계로 일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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