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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를 울리는 음악, <반칙왕> 영화음악 어어부 프로젝트
사진 이혜정황혜림 2000-02-29

영화를 보고 듣는 것처럼, 음악도 때로 듣고 보는 유희가 될 수 있다. 귀를 타고 흘러들어 청각으로 인지되지만, 그 중 어떤 음악들은 음표와 언어로 나름의 그림을 그려 보인다.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도 그렇다. 흘러간 서커스나 유랑극단에서 흘러나올 법한 폴카에 걸쭉한 음색으로 삶의 축소판 같은 링의 세계를 담은 <사각의 진혼곡>은 영화 <반칙왕>과 닮은 그림을 들려준다. “저기 왼쪽 구석에 주전자 바라보며 일그러진 자신을 본다… 링 위에 꽉 차인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가 없는 저 바다/ 오버 액션 구경꾼, 오버 액션 레슬러” 하며 쿵짝쿵짝 흐르는 동안 어딘가 주눅들고 뒤처진, 그러면서 있는 힘 다해 싸우고 지쳐 나가떨어지길 반복하는 레슬러와 제 사는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것이다. 익살맞고 서글픈 가사와 복고풍 폴카는, 경쟁사회의 부적응자 같은 소시민이 추억의 스포츠 레슬링을 통해 비루한 일상의 해방구를 찾는 <반칙왕>의 웃기고 서글픈 코미디에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

어어부프로젝트는 거의 모든 악기를 직접 다루는 ‘밴드 마스터’ 장영규(32), 보컬을 담당한 ‘저자’ 백현진(28)으로 구성된 2인 밴드. 94년에 타악기연주자 겸 영화음악가 원일까지 3명이 함께 결성한 어어부밴드가 전신이다. 97년 첫 음반 <손익분기점>을 내놨는데, 그 중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가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에 삽입된 게 영화와의 첫 인연. ‘척추뼈를 다치고, 마누라가 집나가고, 집구석이 잿더미되어 염산을 들이마신’ 남자의 사연을 처량한 트로트풍 가락과 절절하고 걸쭉한 목소리에 담은 그 노래는 행려 장면에 녹아들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엔 잘 안 알려졌지만, 타이틀격이었던 삐삐밴드의 <나쁜 영화>도 백현진의 가사였다. 98년에는 원일이 빠지면서 2인조로 두 번째 음반 <개 럭키 스타>를 선보였다. 초현실주의 시 같은 가사와 단순한 멜로디와 리듬의 전형을 뛰어넘어, 구슬 떨어지는 소리 등 음향을 음악의 개념으로 전도한 낯선 음악은 일종의 컨셉 음반으로, 한편의 표현주의 영화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둘 다 작사, 작곡을 하지만, 주로 장영규씨가 곡을 쓰고, ‘저자’가 가사를 쓴다. 그래서 곡이 훨씬 많은 <반칙왕>의 음악은, 장영규씨의 작품. 백현진씨는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만든 <사각의 진혼곡>과 <무더운 하루>의 가사를 쓰고, 노래와 구음으로 도왔다. 나머지 노래와 모든 연주곡은 장영규씨의 창작이다. <반칙왕>은 어어부프로젝트의 이름으로 참여한 단편 영화 <햇빛 자르는 아이> <동화>, 개인적으로 맡았던 단편 영화 <장농>과 <링>에 이어 장영규씨의 5번째 영화음악인 셈이다. 어어부밴드의 <밭가는 돼지>를 듣고 그들의 공연을 본 김지운 감독이 느낌이 맞는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 특별히 영화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어어부 이전부터 무용이나 연극, 뮤지컬 등 여러 분야의 공연음악을 해왔던 장영규씨에게는 흥미가 가는 일이었다. <사각의 진혼곡>은 계약도 하기 전에 만들어서 감독에게 들려줬고, 그 밖에 꽤 많은 곡을 미리 만들어 들려줬다. 영화를 찍을 때부터 분위기나 리듬을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전체적으로는 아날로그 악기들을 많이 써서 약간 촌스럽고 복고풍 분위기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가족 줄거리처럼 읽히는 노래”를 생각한다는 3집 작업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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