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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충돌을 다루는 코미디, <에어 콘트롤>
황혜림 2000-01-18

늘 좀더 새로운 재료 찾기, 혹은 익숙한 재료를 낯설게 요리할 방법 찾기에 골몰하는 할리우드가 주목한 신소재 하나. 바로 <에어 콘트롤>이 파고든 관제사들의 세계다. <에어 콘트롤>의 시작은 96년 <뉴욕타임스 선데이 매거진>에 실린 기사로 거슬러올라간다. 다시 프레이가 쓴 그 글은 관제탑 업무와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는 관제사들에 대한 것이었다. <히트> <파이트 클럽> 등을 제작한 중견 프로듀서 아트 린슨은 일 자체의 극적인 위험과 직업상 독특한 생활문화를 갖는 그들의 세계가 새로운 소재라는 판단에서 이내 영화화 판권을 확보했다. 인기 TV시리즈 작가 글렌과 레스 찰스 형제가 시나리오를 맡았고, 감독 제의를 받은 마이크 뉴웰은 <도니 브래스코>를 마치고 원래 쉬려던 계획을 접고 합류할 만큼 흥미를 보였다.

뉴웰의 말을 빌리자면 <에어 콘트롤>은 “비행기 충돌이 아니라 사람들의 충돌”을 다루는 코미디. 원제 ‘푸싱 틴’은 관제사로서 유능하다는 의미의 은어다. 유능하지만 상반된 성격을 지닌 두 관제사 닉과 러셀은 일상에서 사사건건 경쟁을 벌인다. 일급 인생을 살던 닉의 평화는 자기보다 더 유능한 러셀을 보는 순간 깨어진다. 러셀은 과감하면서 실수없는 항공교통 관리로 닉의 명성을 흔들어놓고, 뭇 남성들의 부러움을 살 만큼 젊고 육감적인 아내를 뒀다. 열등감과 경쟁심에 이성을 잃어가는 닉은 불붙은 성냥을 오래 들고 있는 장난 수준부터, 자유투 내기, 목숨을 건 난폭운전 등 여러 가지 승부를 벌이지만 번번이 동요없는 러셀에게 승기를 뺏기고 만다. 두 사람의 과열된 경쟁은 급기야는 서로 상대방의 아내와 부정을 저지르는 파괴적인 승부에까지 이른다. 안온한 중산층의 틀을 유지했던 닉의 인생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모든 것을 잃은 닉은 벼랑으로 내몰린다.

얼핏 보면 전자오락 화면 같은 레이더스코프를 들여다보며 수신기를 통해 비행고도와 속도를 지시하는 숫자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관제사들의 공간은 색다른 세계다. 한순간에 수백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직업적 특성상 극도의 긴장과 집중력을 요구받는 이들은 거칠고, 자기 중심적이다. 아직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고도의 전문직 사회로, 남성성이 강한 세계이기도 하다. 이런 공간에서 만난 두 남자의 라이벌 관계는 유치할 만큼 단선적인 승부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하나의 정점에서 몰락해가는 전개과정 자체는 제법 사실적이다. 세련된 달변의 이탈리아계 뉴요커 닉과 과묵하고 신비스러운 남부의 인디언 혼혈 러셀의 갈등구조로 끌어가는 만큼, <에어 콘트롤>은 캐릭터 위주의 드라마다. 관제사라는 특수 환경 속에 살아난 일상의 디테일과 냉소적인 유머감각, 설득력 있는 캐릭터에서 뉴웰의 연출력은 여전히 탄탄하다. 닉이 몰락해가는 과정의 세부묘사에 비해 회복 과정의 단순함과 빠른 결말은 다소 싱겁다. 아름답고 착실한 조강지처 코니, 불안정한 메리 등 여성 캐릭터가 사실상 남자들간 승부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감도 없지 않지만, 케이트 블랑슈, 안젤리나 졸리 등 여배우들과 존 쿠색, 빌리 밥 손튼 등 주연급들의 연기는 탁월하다.

감독 마이크 뉴웰

영국과 미국, 장르와 장르 사이의 종횡무진

마이크 뉴웰은 <네번의 결혼식 한번의 장례식> <도니 브래스코>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 마이클 앱티드 등과 함께 60년대 영국 텔레비전의 황금기에 장르를 불문하고 드라마를 찍으며 연출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42년생인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그라나다TV에서 63년부터 3년간 연수를 받았다. TV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던 뉴웰이 감독에 데뷔한 것은 TV일을 하고 약 10여년이 흐른 뒤였다. 초기에 이집트의 유적의 저주를 그린 공포영화 <어웨이크닝>, 2차 세계대전중 일어난 살인사건을 그린 <배드 블러드> 등을 만들었던 뉴웰은 85년작 <낯선 이와 춤을>부터 감독으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낯선 이와 춤을>은 아들과 함께 사는 바걸 루스와 상류층 사내 데이비드의 위험한 사랑, 그리고 의혹의 살인을 그린 수작 범죄드라마. 87년 <좋은 아버지>는 앤서니 홉킨스가 주연한 범작이었으나, 이탈리아의 성을 배경으로 여성 4명의 낭만적인 사랑을 그린 <4월의 유혹>은 뉴웰을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올려놓았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이자 감독 짐 셰리던이 시나리오를 쓴 <오씨>는 고대 켈트족의 신화와 집시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근원을 찾아가는 두 형제의 여정을 다룬 작품. 하지만 그의 대표작은 <풀 몬티>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한동안 영국 영화사상 흥행 1위였던 <네번의 결혼식 한번의 장례식>이다. 자유분방한 미국 여인과 소극적인 영국 신사의 사랑을 소재로 영국식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 이 영화는 일부 작품에서 변주된다. <에어 콘트롤>의 파티장면 등에서도 약간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비밀근무를 하는 FBI와 마피아 세계를 무대로 인간에 대한 신의를 그린 최근작 <도니 브래스코>까지 뉴웰의 연출은 캐릭터를 잘 살리고 냉소적인 재담을 선호하면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희비극이 어우러진 담담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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