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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어떤 롱테이크, 정성일과 박찬욱의 대담

정성일과 박찬욱의 대담

롱테이크는 널리 알려진 촬영기법 가운데 하나다. 오랜 시간 컷을 나누지 않고 찍는 이 기법은 지루한 예술영화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오해가 무조건 부당한 것은 아니다. 의미없는 롱테이크만큼 효과만점인 자장가도 드물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롱테이크는 가장 단순한 촬영기법이다. 널리 아다시피 뤼미에르가 만든 최초의 영화는 롱테이크로 찍은 것이다. 컷을 잘게 나누고 편집을 하는 것은 좀더 나중에 개발됐다. 초기 영화의 발달사는 지금 현재 어떤 개인이 영화를 배운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롱테이크는 편집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자연스런 선택이다. 그러던 롱테이크가 대가들의 전유물이 된 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기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장들의 영화에서 롱테이크는 시간과 감정의 결정체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롱테이크는 지루하다는 말을 믿을 필요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살인의 추억> 도입부에 롱테이크로 촬영한 장면. 넓은 들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범인의 족적 위로 경운기가 지나가며 논두렁에서 한 경찰관과 반장님이 굴러떨어지는 장면을 보라. 컷을 나눠 찍었다면 불가능했을 현장감이 생생히 살아나지 않는가. 다른 예로 <소름>에서 김명민이 장진영의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은 어떤가. 제발 그만, 이라고 외치고 싶을 때까지 지속되는 롱테이크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게 만들지 않는가.

장광설을 늘어놨지만 가끔 영화잡지를 만들면서도 영화 찍듯 롱테이크를 쓰는 게 낫겠다고 판단할 때가 있다. 몇 시간씩 인터뷰를 했는데 달랑 1쪽에 기사를 우겨넣어야 한다면 그처럼 소모적인 일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기자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은 롱테이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취재한 내용 가운데 쓸 것과 버릴 것을 냉정히 골라 짧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취재원이 들려준 이야기가 너무 재미날 경우엔 어쩔 수 없이 글이 길어지는 일이 벌어진다. 편집장으로선 판단을 해야 한다. 컷을 나눠 여운을 남기는 것이 효과적인가, 롱테이크로 긴 호흡을 살리는 게 효과적인가. 대체로 미리 정한 규격에 글을 맞추게 되지만 때로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번호에 실린 정성일과 박찬욱의 대담이 그런 경우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이야 워낙 길게 쓰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이번에 또하나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5시간 동안 <친절한 금자씨>에 관해 장면별로 분석해 질문을 던진 이번 대담은 결국 27쪽에 달하는 양이 되고 말았다.

더 자를 것인가, 말 것인가.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고 내린 판단은 이번엔 극단적 롱테이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친절한 금자씨>에 관한 폭발적 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긴 대화가 만들어낸 어떤 감동 때문이기도 하다. 대가다운 유려한 롱테이크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 그렇다고 정성일이 갑자기 박찬욱 감독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글에서 익히 봤던 얘기를 나누었다면 이런 롱테이크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대담에서 정성일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발견한 의문을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진다. 그건 마치 박찬욱과 <친절한 금자씨>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은 잊고 처음부터 다시,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인터뷰를 읽고나면 박찬욱은 그동안 너무 많이 알려진 만큼 우리가 너무 많이 몰랐던 감독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독자 여러분께 이 롱테이크 미학의 정수를 빨리 와서 구경하시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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