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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포스터를 믿느냐? <바그다드 카페>
2000-01-04

난 영화포스터를 믿지 않는다. 칼을 떼로 들고 있는 포스터를 보고 칼싸움 영화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떼창’만 실컷 듣고 나온 오페라 영화- 영화 내내 하도 넓은 반경으로 격렬하게 졸아대서 목 근육에 ‘갑빠’가 생기게 했던- <오델로>에 당한 고등학교 시절 이후에는 말이다. <바그다드 카페>라는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그 포스터가 하도 ‘땡기지’ 않아서였다. 웬 청승으로 영화를 혼자 보게 됐는지는 도저히 생각나지 않지만, 그 포스터가 얼마나 ‘땡기지’ 않았는지는 생각난다. 저렇게 심심한 포스터라면, 적어도 ‘칼싸움’ 기대했는데 뚜껑 열고 보니 ‘오페라’여서 속았다는 기분에 화딱지 나는 경우는 없겠거니… 하는 게 그 심심해 보이는 영화를 고른 주된 이유였으니까. 무슨 약속 시간인가에 맞추려면 적어도 서너 시간은 보내야 했는데, 보다가 심심하면 피곤하던 차에 그냥 대충 의자에 기대 잘 요량이기도 했고.

그렇게 엄하게 그 영화를 보게 됐지만, 내게 영화 보기는 <바그다드 카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난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서야 영화도 책처럼 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는 <스타워즈>처럼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 줄 알다가 말이다. 그리고, 영화음악 하나가 영화의 분위기를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도 <바그다드 카페>를 통해 알게 됐다. <Calling You>의 그 마술적인 나른함에 한없이 잠겨든 <바그다드 카페>는 마치 ‘소리나는 무성영화’ 같은 분위기마저 내고 있었으니까.

또한 유명하지 않은 배우와 생전 들어보지 못한 감독도 어디선가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는 이유로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영화들 중 놓친 걸작이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비디오 가게에 가면 신작 코너가 아니라 먼지 쌓인 구석부터 뒤지기 시작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바로 <바그다드 카페> 덕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그다드 카페>가 내게 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여자’를 ‘여성’으로 볼 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서서쏴”와 “앉아쏴”의 해부학적 차이 외에 남녀의 차이를 ‘미팅 나가면 여자들은 화장실 갈 때 꼭 지들끼리 같이 가더라. 수상한 것들’ 하는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던 20대 초반의 내게 <바그다드 카페>는, ‘여성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지를 알게 해주었다. 그 뚱뚱하고 서구인들 사이에서 가장 매력없다고 정평이 난, 독일 아줌마 야스민이 삐꾸 화가 콕스의 그림 모델이 되어 한 꺼풀씩 옷을 벗어낼 때, 생리적 ‘발기’ 이외의 발기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저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것만으로 브랜다의 아들 살라마로 하여금 바흐의 평균율을 완성케 하는 장면에서 여성성이 가진 파워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어느 날 콕스가 꽃을 꺾어 들고 야스민에게 청혼을 하자 야스민이 했던 대답- 브랜다와 상의해볼게요- 속에서 남성끼리의 의리라고 하는 것이 여성끼리의 동지적 연대에 비해 얼마나 극우적인 것인가 하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후 불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서걱서걱한 사막의 건조함으로 시작한 이 영화가, 누구 하나 소리내어 울지 않고, 드라마틱한 캐릭터나 폭발적인 긴장이 있는 것도 아니며, 박장대소할 개그가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결국 감동적이고 따뜻하며 흐뭇하고 명랑하게 끝나는 것은, 오로지 그렇게 영화 곳곳에 밀도있게 녹아 있는 ‘여성성’ 덕분이었다.

<스타워즈>에서 적군의 기지가 폭파될 때 느꼈던 환희보다 딱 세배 더 짜릿한 환호를, 바그다드 카페로 모여든 운전기사들 앞에서 야스민과 브랜다가 마술을 펼칠 때, 지르고 만 나는 그 이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게 되었다. 물론, 20대 초반의 혈기 왕성한 수컷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건 언어적 페르몬을 발산시켜, 좀 ‘팔려 보겠다’는 수작일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당시의 나로선 그렇게 선언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그 영화가 준 인상이 깊었다.

물론 난 이제 더이상, 어릴 적부터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주욱 자란 나 같은 한국 남자가 갖는 어설픈 반쪽짜리 페미니즘으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만큼 용감하지도 뻔뻔하지도 않다. 상식적인 인간이라 주장하며 버팅기는 정도일 뿐. 그러나, 어설프나마 생물학적 암컷뿐 아니라 여성성이란 것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알게 되었고, 그 여성성을 통해 수컷을 남성으로 다시 볼 줄 아는 눈을 뜨게 된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영원히 반쪽만 알고 살 뻔했는 데 말이다.

그 이후, 내가 짝퉁이라고 단정지은 <델마와 루이스>를 비롯하여 수많은 ‘페미니즘표’ 영화들을 우연찮게 혹은 일부러 보았지만, 아무런 자조나 절규, 비탄 없이 여성성에 압도되고 설득되는 <바그다드 카페> 같은, 그런 마술 같은 영화는 다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영화포스터를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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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딴지일보 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