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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의 애버뉴C] 33rd street/ 디 아더스
글·사진 백은하( <매거진t> 편집장) 2005-10-01

팀 버튼과 <유령신부>를 만나다

꼬박 3시간 째 긴 줄에 서 있자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몇 주 전 링컨센터에서 <유령신부>의 개봉에 앞서 ‘팀 버튼과의 만남’이 있다는 메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있다가 예매하면 되겠거니 하며 게으름을 피웠더니만 표는 금새 매진되어버렸고, 결국 행사 당일 긴 줄에 서야 하는 비극을 맞고야 말았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의 줄에 매달려, 아픈 다리를 두드려가며, 팀 버튼을 만나고 싶다면 이 정도 줄쯤, 이 정도 시간이 아깝겠냐며, 게으른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그래도 노력한 성과는 있어서 턱걸이로 입장이 가능했고 그렇게 나는 <유령신부>와의 첫날 밤을, 덤으로 ‘버튼’까지 직접 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유령신부>는 결혼을 앞둔 한 남자가 우연히 시체의 손에 반지를 떨어뜨리면서,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고 죽은 신부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오랜 민담에서 시작된 영화다. 영화 상영 후 관객들과의 만남을 위해 무대 앞으로 나온 팀 버튼은 예전에 비해 살도 넉넉하게 붙었고, 무뎌졌다기 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진 인상이었다. 물론 오른쪽으로 불균형하게 부풀어 오른 곱슬머리만큼은 여전했지만. (아! 영화사 직원들의 삼엄한 경비 때문에 불행히도 사진은 찍지 못했다.) <찰리와 초콜렛공장>이 개봉한지 몇 달도 안되어 새로운 영화를 들고 나온 그의 체력과 열정에 놀라워하는 관객들에게 그는 “물론 나야 완벽히 다른 작업이었고, 공동작업이었으니 좀 덜했지만 낮에는 윌리 웡커가 되었다가, 밤이면 빅터로 변해야 했던 조니 뎁이 좀 힘들었을 것이다” 라며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유령신부>는 올해 본 그 어떤 영화보다 슬펐다

지난 달부터 맨하탄의 벽이란 벽은 다 도배하다시피 한 <유령신부>는 기대감을 부추긴 만큼의 보답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 영화였다. 물론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풍성해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기술력도 놀라웠고, 팀 버튼 특유의 기괴한 동시에 사랑스러운 상상력도 여전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죽음에 대한 시각이었다. <빅 피쉬>의 마지막에 한바탕 축제를 벌이며 아버지를 레테의 강으로 떠나 보냈던 아들은, 이제 왁자지껄한 뮤지컬과 함께 다시 한번 신나게 사자(死者)들을 무덤으로부터 호령한다.

“미국문화는 죽음을 어둡고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하지만, LA에 많이 살고 있는 히스패닉들의 문화를 보면 죽음을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축제처럼 즐긴다. 죽음에 대한 완전한 반대의 자세, 그것이 영화 속 두 세계의 톤을 잡는데 큰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결국 <유령신부>에서 땅 위의 세계는 무채색의 비극적 오페라로 펼쳐지고, 땅 아래 세계는 형형색색 즐거운 뮤지컬로 채색되었다.

<유령신부>같이 신나는 영화를 보면서 울컥한 기분이 들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는데, 사실은 이 영화는 올해 본 그 어떤 영화보다 슬펐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지하의 유령들이 단체로 지상의 세계로 밤의 피크닉을 떠난다. 그 때 한 해골이 어떤 가족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모두들 귀신을 보고 무서움에 떠는 순간, 갑자기 한 어린아이가 달려가 유령에게 안긴다. “할아버지!” 라고 외치며. 살점도 없는 그 형상만으로 사랑하는 이를 알아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것은 어쩌면 팀 버튼이 영화라는 세계를 빌어 맞이하고 싶었던 기적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 자와 죽은 자들의 가슴 벅찬 상봉도 잠시, 영화는 결국 ‘그들’과 ‘우리’가 함께 만지고 부비고 살아 갈수 없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끝난다. 물론 <디 아더스>의 마지막처럼 ‘우리가 이 집의 주인이야’라고 엄포하진 않지만,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라고 고통스럽게 안녕을 고한다.

올 가을 맨하탄에서 열리는 전시 중에서 가장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바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완벽한 영매: 사진술 그리고 오컬트>(The Perfect Medium: Photography and the Occult)전이었다. 여기서 선보이는 120점의 사진은 “영혼의 사진작가”라고 불리웠던 19세기 말의 오컬트 작가들의 사진들이다. 지금이라면 간단한 소프트웨어만 있으면 초등학생도 만들어 낼 수 있는 합성사진들(그 당시에도 암실에서의 단순한 작업의 결과물이겠지만)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물리적 과정을 떠나 바로 사진을 둘러싼 그 시대가 읽히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고 있자면 전쟁으로 어이없이 사라져버린 존재들을 그렇게나마 불러오고 싶은 산 자들의 욕망. 죽은 자들의 세계와 어쩌면 소통할지도 모른다는 간절함이 여기 저기서 배어 나온다.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공포나 거부는 어쩌면 홀로 떠나는 외로움이나, 홀로 남는 두려움이 불러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같이 떠날 수 있다면,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저곳이든, 이곳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비정하게도 죽음의 타이밍은 모든 이들에게 다르게 찾아오기 때문에 죽음이란 여전히 우리 삶에서의 가장 큰 공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죽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로 무섭고 두렵다. 그러나 이 공포가 그나마 조금씩 희석된 건 지난 몇 년 동안 연달아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겪고 난 후부터다.

재작년 친하게 지내던 B오빠가 저 세상으로 가고 몇 일 후, 그에 대한 기억을 내 웹사이트에 올리려고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튼튼하던 우리 집 옷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작년 E선배가 떠났을 때 역시 그녀를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멀쩡했던 전자렌지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전원이 나갔다. 예전엔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섬찟하거나 무서울 거라고 상상 했었는데, 정작 사실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죽어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떠나는 인사를 해 준, 내 무심함에 대한 늦은 야단을 치고 있는 그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길가다 영문도 없이 넘어질 때, 이유 없이 귀가 간지러울 때, 누군가 내 어깨를 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의 죽음을 금새 잊고 살 것이 분명한 나에게 당신들의 우연한 인사는 고마울 것이라고, 그들은 있다고, 그들은 있을 것이라고, 아니 그들은 있어야만 한다고. 물론 그것이 산 자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불러일으킨 착각이라고 해도, 나는 아직 그 착각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지가 않다. 그 늪에 빠져 그들을 잠시만이라도 만날 수 있고,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리석은 믿음이라 해도 살아있는 동안만은 행복한 바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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