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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세이준의 <지고이네르바이젠>

탐미와 몽환의 퍼레이드

스즈키 세이준은 1960년대 일본 B급영화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한다. <도쿄 방랑자>와 <살인의 낙인> 등의 영화는 갱영화와 야쿠자영화, 그리고 뮤지컬 등의 장르적 구분을 뛰어넘는 실험작이었으며 당시 관객을 열광케한 문제작이기도 했다. 반면, 이런 무모한 영화를 제작했던 닛카츠 영화사에겐 스즈키 세이준 감독은 하나의 골칫덩어리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스즈키 세이준은 값싼 B급영화를 만들면서 기이한 발상으로 가득찬 작품들로 1960년대 일본영화에 발자취를 남긴다. <살인의 낙인>(1967) 등 당시 스즈키 세이준이 발표한 영화에선 극단적인 클로즈 업과 극도로 양식화된 장면들, 그리고 기이한 허무주의와 유머가 뒤섞여있었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들은 그의 영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1968년에 스즈키 세이준은 너무 난해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닛카츠 영화사에서 해고당한다. 그러자 오시마 나기사 등 당시 영화인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영화사에 항의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닛카츠 영화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스즈키 세이준은 이후 공백기를 거쳐 근대 소설가 이즈미 교카에게서 영감을 얻은 영화를 발표했다. 그것이 <지고이네르바이젠>(1980)이다. 이 영화를 포함해 이른바 ‘3부작’인 <아지랑이좌>, <유메지>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스즈키 세이준은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컴백하기에 이른다. 스즈키 세이준은 원작에 나타난 환상적 이야기와 분위기에 매료되어 이를 영상으로 옮겼다. 평론가 요모타 이누히코는 “<지고이네르바이젠> 등의 3부작엔 전후 일본영화가 도달한 가장 세련된 미의식과 바로크적 정신의 결합이 엿보인다”라고 논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두 친구가 한 여인을 사이에 놓고 겪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지고이네르바이젠>은 1920년대 초반 다이쇼시대의 퇴락한 분위기를 빼어나게 영상화하고 있다.

독문학과 교수인 아오치는 우연히 옛친구인 나카사고를 만난다. 아오치 일행은 숙소를 정하고 거기서 방금 동생을 잃은 오이네라는 여성을 만난다. 이후 나카사고는 여행을 계속하고 아오치는 집으로 돌아온다. 세월이 흘러 나카사고는 결혼을 하고 그의 집을 방문한 아오치는 그의 아내 소노가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 오이네와 닮은 것에 놀란다. 같은 밤 아오치는 사라사테의 음악인 ‘지고이네르바이젠’을 듣는다. 한편, 병원에 입원해 있는 처제를 찾아간 아오치는 자신의 아내가 병원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내와 나카사고가 불륜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렇듯 <지고이네르바이젠>의 이야기는 환상과 현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어 버린다. 에로스와 죽음에 대한 매혹으로 가득찬 대사와 모호한 화면은 제작 당시 많은 영화팬들을 열광케 했으며 스즈키 세이준은 일본영화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할수 있었다.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지고이네르바이젠>에 대해 “이 영화엔 독창적 아이디어와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영화 속 인물은 누가 살아있는 것이며 누가 죽은 것인지 분명치 않다. 그것은 불길한 세계라기보다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세계로 읽힌다. 화려하고 에로틱한 저승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라며 감탄의 글을 남긴 적 있다. <지고이네르바이젠>을 스크린을 통해 보는 관객은 영화를 보는 것보다 짧은 죽음, 혹은 백일몽에 가까운 체험을 할지도 모른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 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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