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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
2001-08-03

“돌 하나에도 혼이 있다”

인간과 자연의 숨결이 교감하는 애니메이션의 소우주를 창조하는 조물주,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국을 찾았다.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지난 7월21일 일본에서 개봉돼 흥행의 순풍을 타는 틈을 빌어 국내 애니메이션업체 DR무비의 초청으로 서울을 다녀간 것. 일본애니메이션 외주제작으로 명성을 다져온 DR무비는 <원령공주>에서 일부, <센과…>에서 본격적으로 지브리의 외주를 받아 작업에 참여했다. 마침 <이웃집 토토로>의 국내 개봉도 코앞에 둔 25일, 미야자키는 신라호텔에서 1시간여의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백발에 눈썹이 짙고 검은 뿔테안경을 낀 점잖은 인상에, 뜻밖에 이따금 아이 같은 미소를 띄우며, 간명하고도 빈틈없는 대답을 들려줬다.

+ 한국에 온 것이 처음인데, 어떻게 오게 됐나.

=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면서, 지브리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외주를 맡겼다. 그 일을 해준 DR무비에 감사차 오게 됐다. DR무비에 일부 제작을 맡기면서 젊은 스탭들도 4명을 파견했었는데, 모두 건강하게 돌아와서는 한국이 굉장히 재미있고, 음식도 맛있다고 해서 마음놓고 왔다.

+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 이렇게 닮은 나라가 있었구나, 하는 게 첫 번째 느낌이고, 두 번째는 버스가 굉장히 많다는 거다.

+ 마침 <이웃집 토토로>가 일본에서 개봉된 지 13년 만에 한국에서 개봉된다. 소감이 어떤가. 이 작품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먼저 <이웃집 토토로>는 일본을 굉장히 싫어했던 어릴 적 나 자신을 위해 어른이 돼서 쓴 편지와 같은 작품이다. 무엇을 싫어했냐고? 간단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어릴 때 전쟁을 통해서 가족들이 돈을 벌게 됐고, 전쟁을 통해서 일본이 잘못된 생각으로 가득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라는 것은 영화를 본 사람의 것이다. 관객은 그냥 즐겨주시기 바란다. 일본에서는 이 작품이 개봉된 뒤 숲을 보전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런 면도 같이 봐주면 고맙겠고.

+ <이웃집 토토로>도 그렇지만 당신의 작품에는 자연,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이 드러난다. 또 남성보다는 여성 주인공이 많고. 어떤 계기가 있었나.

= 아마 서른살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세상에서는 인간만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숲과 공기와 물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주나 도시를 그리는 것보다는 자연을 그리는 걸, 남자보다는 여자를 그리는 걸 더 좋아한다.

+ 당신의 작품 속 동물들은 동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일본에서 계속 자라온 나 자신의 마음속 깊이 어딘가에는 토속신앙, 애니미즘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나무나 돌, 강, 그런 자연 하나하나에 다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 거의 평생을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어떤 소회가 드나. 그렇게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을 해오면서 느낀 애니메이션의 즐거움이라면.

= 애니메이션은 즐겁지 않다. 괴로운 작업이다. 어린 아이들이 <이웃집 토토로> 같은 작품을 보며 감동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38년간 애니메이션을 해왔는데, 그 삶을 돌아보면 드는 생각은, 힘이 들었다는 거다.

+ 감독의 삶을 지탱하는 좌우명은.

= 아무리 힘든 일도 언젠가는 끝난다.

+ 그 힘든 일이 끝난 뒤에 하고 싶은 일은 뭔가. 취미든, 아니면 바람이든.

= 항상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히 그런 것은 없다.

+ 토토로, 고양이 버스, 검댕 먼지 등 <이웃집 토토로>를 비롯해 당신 작품의 놀라운 상상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혹 나이가 들수록 상상력이 줄어든다는 불안은 없나.

= 음…, 어릴 때 난 주위에 뭔가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어른이 돼서 다시 보면 그건 내가 상상했던 것이고, 이건 뭐, 저건 뭐였다고 밝혀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가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그 뭔가에 형체를 준 게 토토로, 고양이 버스, 검댕 먼지 같은 것이다. 상상력에 대해서 말하자면 40년 전에 생각한 거랑, 어저께 생각한 거랑 별 차이가 없는 걸로 봐서 줄어드는 것 같진 않다.

+ <센과…> 이후 은퇴를 발표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후배 양성에 힘쓰고, 요즘 공들여서 건립중인 지브리 미술관에서 상영할 단편작업만 할 거라는 게 사실인가.

= 공식적으로 은퇴한 적은 없다. 일단 장편애니메이션을 지금과 같이 만드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미술관에 들어갈 작품과 단편작업은 계속할 생각이다. 3편 정도 기획했는데, 1편은 완성했고 1편은 돈이 안 될 것 같아서 중단했다. 나머지는 진행중이다. 이 단편들은 미술관 내에서만 상영할 계획이다.

글 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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