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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요시모토 바나나를 찾아서, 일본의 차세대 여성작가들
권민성 2005-12-09

‘드라마와 영화는 한류(韓流), 소설은 일류(日流)’라는 말이 있다. 90년대부터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온 일본 소설은 이제 대형 서점의 주요 코너로 자리잡을 만큼 거대한 세력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 수상작은 보지 않아도 일본의 양대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 수상작은 꿰고 있을 정도다. 2001년 처음 소개된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지금껏 7권이 번역 출간되면서 각각 2만부 이상씩 팔리고 있다. 1999년 30만부 이상 팔려나간 <키친>으로 ‘바나나 돌풍’을 몰고 온 요시모토 바나나 역시 최근작 <불륜과 남미>까지 10여종이 평균 10만부 이상 팔리면서 대학가의 독서층을 꾸준히 장악해왔다. 심각한 한국 소설과 달리 10∼20대의 일상을 섬세하게 전달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이들 일본 소설의 강점. 최근에는 20대 초반의 작가들이 대거 등장, 2세대 일본 문학의 인기를 이어나갈 전망이다. 이제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이후 새로운 문학 아이콘이 될 차세대 여성작가 5인을 소개함으로써 일본 소설의 인기 비결과 향방을 가늠해본다.

비일상적인 캐릭터가 전하는 촉촉한 웃음, 다이도 다마키

주요작: <불량소녀>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

대형 서점에 가면 일본 문학은 외국 문학과 따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독 일본 소설이 한국의 독자에게 사랑받는 비결은 뭘까? ‘부담없고 쿨한 캐릭터와 재미있고 공감 가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다이도 다마키의 작품을 읽어봐도 좋다. 2003년 <이렇게 쩨쩨한 로맨스>로 제128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그녀의 작품에서는 유머와 인간미가 잔뜩 묻어난다. 이 작품은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나이 예순이 넘은 노인네 쓰쿠모와 서른네살짜리 여자 미호의 로맨스를 그린 쿨한 소설이다. 주인공 미호는 ‘자신보다 키도 작고 머리는 천연 파마 머리에, 목에는 갈색 검버섯이 피어 있고, 피부는 탄력이 없어 쭈글쭈글한 구운 어묵 같은’ 쓰쿠모와 사랑에 빠진다. 쓰쿠모는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 퇴직해 이런저런 소일거리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으며 이혼한 경력이 있는 노인. 그러나 미호에게 그런 조건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의 로맨스는 시종일관 귀엽다. 잠을 자던 미호가 왼쪽에 쏠려 있던 쓰쿠모의 머리를 머리카락 한올 없는 오른쪽으로 빗어 넘겨주는 장면이나, 생선 가시 사이의 흰 살까지 한점도 남김없이 깨끗이 발라 대가리 부분까지 파먹고 있는 쓰쿠모를 보며 ‘보면 볼수록 어린 왕자같이 생겼네요’라고 하는 장면 등에선 웃음이 터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누굴 때린 적이 있냐는 질문에 ‘내가 좀 멍해서 말이야’라고 태연히 대답하는 쓰쿠모는 마치 허무 개그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다이도 다마키는 이처럼 비일상적인 만남을 일상적으로, 특이하면서도 공감 가는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묘사하는 데 수준급의 기량을 갖고 있다.

단편 <M자형 이마>에서는 거구의 스모 선수 아즈마와 사귀는 열네살 이즈미가 등장한다. 그녀는 등교를 거부한 적이 있으나 아즈마와 사랑에 빠진 뒤 그의 스모 시합 구경도 하고 그와 함께 섹스도 하는 비일상적인 캐릭터다. 그러나 두루뭉술하고 밋밋한 얼굴의 아즈마를 두고 ‘M자형 이마를 경계로 반들반들한 머리는 눈이 부시다’라고 표현하는 그녀를 두고 ‘어디서 중학생이 감히?’라고 하는 말은 좀처럼 내뱉기 어렵다. <민들레와 별똥>에서 주인공 미치루의 오랜 친구 마리코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친구라고는 하나 자신에게 ‘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히피족’이라고 막말을 한다거나 불필요한 간섭을 한다는 점에서 마리코는 미치루에게 천적과 같은 존재다. 미치루가 ‘썸씽’이 있는 남자 유지와 전화를 하는 것을 보고, 다짜고짜 수화기를 빼앗더니 사귈 건지 말 건지 똑바로 하라고 참견할 정도다. 이처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껄끄러운 친구의 손길에서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그 친구만의 특별한 매력을 이해하는 평범한 미치루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손바닥의 땀처럼 촉촉이 배어 있는 작가의 모습을 만난다. 전화로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친구 마리코의 모습을 보면 마치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님) 있잖아’로 시작하는 우리의 일상을 스스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다. 경천동지할 큰 사건도 없고, 황당한 결말도,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도 별로 없지만, 왠지 캐릭터만큼은 뚜렷이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다이도 다마키의 최고의 장점이다.

일상 탈출을 통한 일상 찬가, 가쿠타 미쓰요

주요작: <납치여행> <사랑이 뭘까> <대안의 그녀> <공중정원> <인생 베스트 텐>

<대안(對岸)의 그녀>로 2005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가쿠타 미쓰요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장마다 교차하는 형식으로, 세명의 주요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우선 현재에는 남편과 세살 난 딸을 둔 가정주부 다무라 사요코와 플래티나 플래닛 회사의 여사장 나라하시 아오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 출신이지만, 자라온 환경은 전혀 다르다. 가사 대행업을 해주는 회사에서 만난 아오이는 모험심과 독립심이 강해 보이는 당당한 커리어우먼. 야경이 멋지고 벽에는 추상화가 걸려 있고 거대한 관엽식물이 놓여져 있으며, 와인과 치즈를 즐기는 아오이에 반해, 사요코는 방 세개짜리에 애가 있어서 늘 어질러져 있는 35년 할부짜리 집에서 5년간 가사에만 매달려왔다.

한편, 과거에서는 아오이의 고등학교 시절이 등장한다. 아오이는 어린 시절엔 늘 왕따를 당했다. 전학 간 군마의 여고에서 노구치 나나코를 만나기 전까진. 그녀들은 케이크와 레모네이드, 바닐라 아이스 크레이프 등을 찾아다니며 순수한 감성을 나눈다. 언덕에 앉아 도넛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맥주를 마셔대며 하세가와의 케이크 세트, 설날의 하늘, 빌리 조엘, 고치야의 포테이토칩 등 두서없이 그냥 좋아하는 것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그들. 열아홉살 생일에 서로에게 은반지를 선물하자던 이들은 방학 동안 러브호텔을 전전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오이가 눈을 떠보니 나나코는 온데간데없고 잡지에는 ‘여고생, 이상 성애 뒤 마지막으로 동반 투신 자살’이란 기사가 떴다. 하지만 나나코는 실제로 죽지 않았고 전학을 갔다는 소식만 들려온다. 어른이 된 아오이는 혼자가 되는 것에 공포를 갖고 있으며 아이가 자라서 상처받을까봐 아이 낳는 게 두렵다고 사요코에게 털어놓는다. 한편, 새로운 일을 통해 아오이를 만나고, 아오이가 언젠가 가십난을 떠들썩하게 했던 두 여고생 동반 자살 미수 사건의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요코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특히 고등학생인 나나코가 아오이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사요코는 본 적이 없는 경치가 실제 기억처럼 선명히 떠오르는 경험을 갖는다. 두명의 여고생이 대안(對岸)에 서서 고등학생인 사요코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제목의 ‘대안’(강 건너 기슭)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에 자연 묘사가 더해지고 따뜻함이 묻어나는 마지막 장면은 강물의 파문처럼 온몸을 은근한 감동으로 적셔준다.

온화하고 잔잔한 장편에 비해, 가쿠타 미쓰요의 단편들은 좀더 유쾌하고 발랄하다. 6편으로 구성된 단편집 <인생 베스트 텐>은 고독하고 쓸쓸한 일상에 비일상적인 해프닝이 일어난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화장실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407호 여자와 도배업 견습생의 만남을 그린 <바닥 밑의 일상>이나, 남자친구와의 갈등을 이탈리아에 여행 온 한 모녀의 싸움을 통해 풀어간다는 <관광 여행> 등은 그 옛날 유행했던 단편드라마 <드라마게임>처럼 소소하고도 유머가 묻어나는 일상을 보여준다. 특히 표제작인 <인생 베스트 텐>은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주는 듯한 빛나는 단편이다.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이벤트 10가지를 꼽아보기로 한 마흔살의 하토코는 동창회에서 중학교 때 3주간 사귀었던 남자친구 기시다 유사쿠와 만난다. 그날 바로 그와 잠을 자고, 그에게서 고급 냄비 세트까지 사버렸는데, 알고 보니 그는 가짜 기시다 유사쿠였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일상 탈출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가쿠타 미쓰요의 소설들은 마치 가끔씩 온몸을 간질이는 여행 욕구처럼 당신의 일상을 건드릴 것이다.

이런 쿨한 순애보도 있다, 이토야마 아키코

주요작: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이토야마 아키코의 책은 현재 국내에 단 한권만 번역되었다. 그러나 한해에 발표된 가장 완성도 높은 단편소설에 수여되는 가와바타야스나리문학상 수상작(제30회)인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이 일본식 순애보의 결정판이란 사실을. 누군가를 짝사랑하면 반드시 괴로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표제작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의 여주인공은 고독감에 밀려 절절한 심정을 토로하거나 혼자 훌쩍이는 유의 우울한 여자와는 거리가 멀다. ‘나’(오타니 히나코)가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나 반해버린 남자 오다기리 다카시. 그와 함께 재즈바 ‘엑시트 뮤직’에도 자주 가서 맥주도 당당히 마셨지만, 정작 남자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늘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오다기리를 12년째 바라보며 다른 남자들과 사귀었던 나. 나가 가장 원했던 것은 오다기리의 마음과 단 한번의 섹스였다. 그러나 남자는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만날 때마다 친구란 사실을 강조하며, 매번 낙방하기만 하는 소설 응모와 K-1에만 열중이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나에게 “‘너 말이야, 나랑 결혼하려고 해봐야 안 돼’라는 식의 거친 말투조차 좋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순애보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가 술이랑 약을 먹고 겨우(?) 이층짜리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등뼈가 부러진 오다기리를 보며 이렇게 읊조리는 장면이 있다. ‘꼴사납다. 너무 꼴사납다. 당신이 가진 최후의 담보는 멋있다는 거, 그거 하나인데, 심하다, 배신이다.’ 드라마 대사처럼 문체는 단조롭고,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에 나올 법한 소소한 이야기들은 ‘애절’과는 최대한 먼 거리에서 펼쳐진다. 오다기리를 가질 수 없었던 나는 그가 자신을 싫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섹스를 택하겠다는 기발한(?) 발상을 하고 메일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같이 자주세요.”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접적이다. 머뭇거림도 없다. 내가 오다기리의 손가락을 건드렸던 느낌을 ‘손 안에 들어온 십엔짜리 온도로, 당신의 손이 따뜻한 것을 알았다’라는 식의 감각적인 문장들도 쿨함에 한몫한다.

연작 단편인 <오다기리 다카시의 변명>에서 히나코는 오다기리에 12년간이나 연정을 품어왔다면서도, 회사의 과장과 살짝 바람을 피우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딱 한번 자고 임신까지 하며 그 사실을 오다기리에게 다 털어놓는다. 머리로 이해는 가지 않지만, ‘Cool is good’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만큼 매력적인 순애보도 없다. 주류를 이루는 주인공이 오다기리를 쿨하게 대하듯이, 일본의 미식가형 순애보 역시 독자를 막다른 골목 안쪽으로 몰아세우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어중간한 관계’,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애인 미만 가족 이상”의 관계에 대한 불안과 괴로움을 진토닉과 파스타, 에스프레스가 등장하는 미식가형 소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여자들의 삶에 관한 질펀한 수다, 유이카와 게이

주요작: <어깨너머의 연인> <점점 멀어지는 당신> <백만 번의 변명> <매리지 블루>

일본 소설에서는 취향이 굉장히 중요하다. 혹시 당신이 카페에서 어젯밤에 본 월화드라마에 관한 수다를 떨더라도, 테이블 위에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라도 한권 놓여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면 유이카와 게이의 소설을 살짝 들여다보자. 마블 시폰 케이크와 밀크티, 피부 마사지와 완벽 메이크업… 이런 것들이 마치 미용실의 여성 잡지처럼 소설 속을 장식하고 있으니까. 그녀의 소설은 다분히 허영적이고도 도회적인 느낌의 20∼30대 여성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장편 <어깨너머의 연인>의 루리코와 모에가 대표적이다. 스물일곱살 동갑내기인 그녀들은 다섯살 때부터 친구로, 유유상종이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루리코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나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이 세상에 있다고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어제 있었던 일은 깨끗이 잊어버리는 고양잇과의 여자. 그녀에게 ‘사람이 좋다는 것은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는 뜻’이고, ‘친절하다는 것은 굼뜨다는 뜻’이다. 살아 있는 것들의 내장은 그로테스크하고 외설스런 먹을거리라고 여기는 그녀에게 남자란 내장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다. 한편 남자, 사랑, 결혼 어느 것도 믿지 못하는 스물일곱의 직장 여성 모에는 입이 거칠고 고집이 세고 비딱하고 따지기를 좋아한다. 그녀는 루리코의 세 번째 결혼식에서 만난 유부남 가키자키와 호텔에 간다. ‘상어는 잠시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죽어버린대. 나 역시 늘 사랑에 우롱당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그녀. 가키자키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며 집을 나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모에는 ‘싱글인 내게 부부 사이의 문제는 최고의 재밋거리’라며 좋아한다.

루리코는 모에의 애인 노부유키를 빼앗아 결혼까지 했지만, 이내 그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불륜녀으로부터 남편 노부유키가 ‘20년 전에 유행하던 얼굴’이라는 소리를 듣고 열받은 루리코는 그런 남자를 자기한테 붙여줬다고 모에한테 오히려 따지기까지 한다. 루리코의 매력은 이런 황당함이다. 돈을 벌기 위해 청과물 시장에서 재고 조사 일을 하면서도, 남편의 불륜녀에게 따지러 갈 때도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브랜드 제품으로 완벽하게 몸을 감싸고 나서야 한다는 식이다. 한편, 루리코와 모에는 17살짜리 가출 소년, 즉 ‘친척 동생 비슷한 관계’랄 수 있는 다카시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런데 모에가 단 한번의 섹스로 다카시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다카시는 영국 유학을 떠나게 되자, 루리코는 셋이 함께 살자고 한다. 남자와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서도 대안 가족 형태를 만들게 된다는 내용이 마치 영화 <싱글즈>를 연상케 한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냐고? 루리코의 말로 대신 답해주고 싶다. “불행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이고, 행복을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란 말인가요?”

신화와 설화적 상상력이 토해낸 우화, 가와카미 히로미

주요작: <선생님의 가방> <뱀을 밟다> <니시노 유키히코의 연애와 모험> <빛나 보이는 것, 그것은>

가와카미 히로미의 별명은 ‘우화의 마술사’다. 그녀의 세계는 근래 일본 문학에 크게 유행하고 있는 쿨한 연애 소설들과는 외따로 떨어져 있다. 그녀의 소설은 전통적이고 우화적이며 설화적이며 몽환적이다. 실제로 자신의 꿈 일기를 근거로 소설을 쓰기도 한다는 그녀는 교훈적이거나 메시지를 호소하는 글을 쓰지 않는다. 11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뱀을 밟다>의 표제작 <뱀을 밟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알레고리 소설이다. 소설은 ‘미도리 공원 가는 길, 덤불에서 뱀을 밟고 말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여학교 과학 선생을 4년 하다가 관두고(저자 역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5년간 과학 교사를 했다), 불교 용품점 가나카나 당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사나다 히와코. 그녀는 그냥 가게에 앉아 있는데 난데없이 뱀을 밟는다. 그 이후로 그녀의 곁에는 자꾸 뱀의 세계로 유혹하는 뱀이 따라다닌다. 뱀은 쉰살가량의 여자로, 히와코의 엄마라고 우기기 시작한다. 히와코는 자꾸 뱀의 세계로 오라고 유혹하는 뱀을 향해 “뱀의 세계 따윈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자 전기가 방전을 하고 방이 물에 잠기고, 나와 여자로 둔갑한 뱀은 서로의 목을 졸라대고 방은 엄청난 속도로 물에 떠내려가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원죄 의식과 본성에 관한 이 우화 같은 이야기는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사라진 큰오빠가 눈에 계속 보인다는 내용의 <사라지다>는 황당하면서도 마력적이다. 그녀가 상상하는 세계는 가족 정원은 다섯명이라는 규정이 있다거나, 그런 집에 ‘통여우’라는 대나무 통에 사는 상상의 여우가 산다. 큰오빠가 약혼녀의 입에 키스하자 그 부분이 벌레에 쏘인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졸도한 그녀는 두루미 울음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이내 점점 몸이 줄어들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겨자씨만해지고, 내 몸은 자꾸 부풀어 오른다. 밤의 세계를 열아홉개의 연작으로 구성한 <어느 날 밤 이야기>에는 ‘아무리 부어도 컵이 가득 차지 않는다 싶더니 커피라고 생각했던 액체가 어느샌가 밤으로 변해 있었다’라는 식의 문장이 천연덕스럽게 씌어 있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처럼 초현실주의적인 이 이야기 혹은 설화 속에는 등을 파먹는 어둠과 머리카락이 한없이 자라고 질량이 없어지는 소녀, 일본 원숭이, 두더지, 키위, 두목 등 존재 원인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녀의 소설은 이즈미 교카에서부터, 가깝게는 요시모토 바나나에 이어져 내려오는 일본식 환상소설의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반드시 환상소설만 쓰는 것은 아니다. 쿨하고 건조한 문체로 씌어진 장편 연작 연애소설 <니시노 유키히코의 연애와 모험>은 열명의 여인이 사랑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 고교 선생과 여제자 사이의 잔잔한 사랑이 담긴 <선생님의 가방>은 <간장선생>의 에모토 아키라와 <음양사>의 고이즈미 교코 주연으로 드라마화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