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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애국의 길?
김영하(소설가) 2006-02-03

올해는 내가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IMF 직전인 97년 봄. 나는 이미 데뷔한 신인작가였지만 그 수입만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아내 역시 나와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 강사였다. 그 뒤로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사이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가 없다. 몇번쯤 아이를 가져볼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갖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지난해 겨울, 자식이 넷이나 되는 부산의 한 대형서점 주인은 내게 아이가 없다는 얘기를 듣더니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애를 안 낳아서 나라가 큰일이라는 것이다. 출산율이 저하되면 국가경쟁력이 약해지고 어쩌고저쩌고. 듣고 있자니 끔찍했다. 만일 불임 부부가 앞에 앉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람도 세상에는 있을 텐데 말이다. 그 폭력적인 설교가 듣기 괴로워서 “그럼 사장님은 애국하려고 넷이나 낳으셨어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알아들을 양반도 아닌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가끔 나는 그런 식으로 사적인 문제를 국가경쟁력과 결부하여 떠드는 인간들에게 짐짓 심각한 얼굴로 “제가 무정자증이거든요”라고 말해 입을 막아버린 적도 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지난 10년간 하지 않은 일 중에는 선거도 있다. 나는 아직도 내 한표가 소중하다는 말이 납득이 안 된다. 한표는 그냥 한표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표로 등락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며 나를 설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이 있으니 로또를 사라는 얘기와 비슷하다. 내 선거구에서 내 한표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그 어떤 정치적 신념에도 휘둘리지 않고 살고 싶은데 투표를 하게 되면 필경 특정한 정치적 신념에 깊이 연루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자기가 산 주식은 반드시 오를 거라 믿는 것과 마찬가지 심리상태가 될 것이다. 확률적으로 무의미한 한표를 던지고 그런 부담스런 심리적 역동을 겪게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당해 보인다.

아이 문제도 어떤 면에서 선거와 비슷하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출산율이 갑자기 상승할 리도 만무하다. 국가적 이슈도 아니고 그저 우리 부부의 개인적 결정일 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아직도 아이가 고양이보다 좋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훨씬 시끄럽고 요란하며 많은 돈이 들 것이다. 가끔 귀엽겠지만 그건 고양이나 개도 마찬가지다. 자기 아이니까 기대도 크겠지만 결국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쓸쓸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 아이라고 유독 잘되리라 믿을 근거가 어디 있겠는가. 십대가 되면 더이상 귀엽거나 예쁘지도 않은 것이 사고를 치고 부모에게 반항하다가 이십대가 되면 자기 삶을 찾아 떠나갈 것이다. 나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아이는 나를 한심해하겠지. 어떤 친구는 내게 늙어서 쓸쓸할 거라고, 그때를 위해 하나 낳아놓으라고 말하지만, 아이가 있든 없든 노년은 쓸쓸할 것이다. 있는 자식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아예 없던 것보다 더할 것이다. 생은 누구에게나 얼마간은 외로운 것이 아니겠는가. 또 어떤 동료 작가는 아이를 낳아봐야 인생을 알 수 있다며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경험주의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경험해봐야 아는 것도 있겠지만 오히려 경험했기 때문에 못 보는 것도 있는 법이다. 사실 주변에서 정말 인생을 아는 것 같은 부모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아이들과 하루하루 부대끼느라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같았다. 인생을 아느냐 모르냐의 문제가 정말 출산과 관계가 있을까? 아니다. 그렇게 인생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이 이럴 리는 없다. 어차피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것, 그저 막막한 안개를 뚫고 전진하는 것일 뿐. 그러니 제발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충고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애국이든 뭐든, 그냥 멋대로 살게 좀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무자식의 외로움은 내가 감당할 일이지 다른 누가 대신해줄 일도 아니지 않은가. 왜 누군가가 숙고하여 내린 개인적 결정에 엉뚱한 범주를 들먹이며 설득하려 드는 걸까. 타인의 사적인 결정에는 알아서 침묵해주는 정도의 센스? 이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