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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가 복수를 낳은 역사, <뮌헨>
이다혜 2006-02-07

“나는 이 주제를 건드릴 때부터 친구를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비장한 예측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제작된 <뮌헨>에 관해 처음 흘러나온 뉴스가 개봉 전 영화를 본 유대인들이 불쾌해했다는 내용이었다는 데서 현실화되었다. <뮌헨>은, 1972년 9월5일, 팔레스타인 테러단 ‘검은 9월단’이 뮌헨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 코치 2명을 사살한 뒤 인질로 잡은 9명의 선수들마저 21시간의 인질극 끝에 모두 살해하는 사건에서 시작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독일 정부의 미온적 대응에 분개하며 테러 주동자들을 직접 처단하기로 결정한다. 악당이 처형되고 세계는 평화를 찾는다, 는 이야기를 <뮌헨>이 선택했다면 스필버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를 사는 데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대인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피를 피로 응징하면 악이 종식되는가.

<뮌헨>의 시작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그대로 따라간다. TV를 통해 전세계에 중계된 대로, 뮌헨올림픽에서 일어난 테러로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선수들과 코치들은 모두 사망하지만, 테러리스트들 중 세명은 현장에서 생포, 이후 석방되었다. 스필버그는 테러리스트들 석방 당시의 실제 TV 인터뷰 장면 등을 영화 초반 곳곳에 삽입하면서 빠른 속도로 기나긴 복수극의 서막을 연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저널리스트 조지 요나스가 쓴 <복수>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 요원이었던 아브너(에릭 바나)는 골다 메이어 총리의 적극적 승인하에 배후에서 테러를 주도한 인물들을 사살하는 암살대를 이끌게 된다. 모사드 장교 에프라임(제프리 러시)은 아브너에게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되어 암살을 주도할 것을 지시, 이로써 세계가 알았지만 ‘공식적으로’ 비밀리에 수행된 작전이 막을 연다. 기묘하게도 암살단을 이끄는 아브너는 인간적으로 그려지는데, 그의 팀원들 역시 킬러보다 소시민에 가까워 보인다. 폭탄 전문가로 영입된 로베르(마티외 카소비츠)는 브뤼셀에서 완구를 만드는 인물로, 전문 분야는 폭탄 제조가 아닌 해체이며, 한스(한스 지쉴러)는 골동품 매매업자로 여권 위조 전문가다. 여기에 전직 택시 운전사로 운전에 능한 스티브(대니얼 크레이그)와 뒤처리 전문 칼(시아란 힌즈)이 가세한다.

최초의 암살 이후 <뮌헨>은 고전적 첩보물의 구조를 따라가는 듯 보인다. 스릴러적 긴장은 파리에서 함샤리를 죽일 때 최고조에 달한다. 함샤리가 전화를 받으면 폭탄을 터뜨리기로 한 아브너 팀은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함샤리의 어린 딸이 외출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전화를 건다. 그때 소녀가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가자 아브너 팀이 경악해 실행을 잠시 늦추는 이 대목은 히치콕 식으로 긴박하게 연출된다. 암살은 성공적으로 착착 진행되는데, 역설적으로 불안이 아브너를 잠식한다. 아브너는 암살 목표의 위치 정보와 안전가옥을 제공하는 프랑스인 루이의 신뢰도가 불분명하며 자신들에 관한 정보 또한 누군가에게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게다가 암살 과정에서 목표가 되는 인물과의 인간적 접촉을 통해 도덕적 갈등을 느끼기 시작한다. 고의인지 실수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조직원들과 안전가옥을 함께 쓰게 된 아브너는 그들도 가족과 민족과 조국을 위해 투쟁할 뿐임을 깨닫는다. 가장 큰 문제는 암살한 인물들을 대치한 사람들이 이전보다 강경하고 잔인해서, 폭력의 고리가 더욱 굳건해진다는 깨달음이다.

스필버그는 어느 한편을 택하는 대신 복수가 복수를 낳은 역사를, 악을 악으로 응징한 사건을 아브너의 불안한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피를 흘린 것에 응당하는 수확을 거두었는가? <뮌헨>은 암살을 멈춘 아브너가 뉴욕으로 이주한 뒤, 악몽에서 발버둥치듯 아내와 정사를 나누는 모습과 뮌헨 공항에서 무차별 총격전으로 인질 전원이 사살되는 뮌헨올림픽 인질극의 결말을 교차해 보여준다. 아무리 정당한 명분에 의한 살인이라 해도 인간의 정신은 소모되고 만다. 모사드가 지휘한 암살작전의 실제 결말은 <뮌헨>에서보다 더 초라하고 처참했다. 모사드는 릴리함메르에서 제1목표였던 살라메로 오인한 민간인을 사살했다. 게다가 도주 과정의 실수로 공항에서 체포되어 배후에 모사드가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만천하에 알렸다.

<뮌헨>의 결말은 역사에 실재했던 국가간의 도륙을 개인의 도덕적 불안과 혼란으로 갈무리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지만, 이전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어둡고 비판적인 태도로 적뿐 아니라 자신의 민족을 그린 스필버그가 이룬 성취는 분명하다. 스필버그는 유대인들의 격렬한 비난을 예상했고, 피해갈 생각도 없었다. 특히 영화적 완성도의 측면에서 <뮌헨>은 야누스 카민스키의 촬영에 빚진 바가 크다. 카민스키는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 사용해 70년대 고전 스릴러영화의 느낌을 재현했고, 뮌헨 사건 대목은 블리치 바이 패스 기법을 사용해서 거칠고 건조하게 잡아냈다. “과장된 느낌으로 촬영했다. 사실을 재현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었다. 소재는 신선했지만, 오늘날의 상황과 너무 닮아 있다. <쉰들러 리스트> 때와 달리 이 영화는 훨씬 모호하고, 복잡한 악을 다룬다”는 카민스키의 말은, 그의 카메라가 실제 사건이 일어난 시대, 그리고 내러티브의 양면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카메라는 아브너와 에프라임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너머로 로어 맨해튼을 비춘다. 화면 속에는 9·11 테러로 지금은 없는 쌍둥이 빌딩이 보인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걱정하는 것은 <뮌헨>의 이스라엘만이 아니다. 스필버그는 <뮌헨>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고사한 바 있고, 그가 꼭 만들어야만 했던 영화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부시 정부에는 비판적이다.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질문을 던진다. 아무 질문도 던지지 않는 사람은 그 나라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9·11 이후 미국의 행보가 30여년 전 이스라엘을 빼닮았다는 깨달음은 <뮌헨>이 지금, 미국에 존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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