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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 - 아름답고 다정한 나의 이웃(2)
2001-08-16

김지운 칼럼

전편의 줄거리- 신분 상승을 꿈꾸며 강북 혜화동에서 강남 청담동으로 이사온 김씨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웃의 여성들에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달리게 되는데( ? ) 어느날 대낮, 복도에서 만난 화장지운 여성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결국, 김씨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이곳은 사람 사는 곳이 못 돼!”를 외치며 짐을 싸기 시작하여 그녀들 몰래 다시 강북으로 이사한다. 중류층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젊은 부부들이 주를 이루며 살고 있는 서민풍의 아파트로 이사온 김씨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며 만족해하는데 그러던 어느날, 막 잠이 들려던 김씨를 깨우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면서 김씨를 둘러싼 무시무시한 일들이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하는데….

2부 시작.

쌍둥이를 본 나는 다리에 힘이 쭉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쌍둥이를 낳은 쌍둥이 어머니에게 애들이 너무 뛰는 바람에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그 쌍둥이 어머니는 그다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나도 말려보지만 애들인데 어떡하겠어요? 아파트에선 서로 조금씩 이해하셔야죠.” 물론 서로 조금씩 이해하며 살아가자는 말엔 동의하지만 나로선 이 어머니에게 이해를 구할 만한 일을 할 게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면 나는 계속 이 상황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끝까지 감수해야 하는 거냐라고 물었고 그 어머니는 “애 안 키우세요?”라며 비수를 꽂았다. 난 수줍어하며 “저 아직 총각인데요”라는 말을 뱉을 뻔하다가 얼른 정신을 차려 “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요”라는 말로 재치있게(?) 역공했다.

쌍둥이 어머니는 한번 해보자는 거야, 라는 투로 눈에 쌍심지를 키웠고, 속으로 뜨끔했지만 아무리 쌍둥이 어머니라 해도 너무하는 거 아냐, 라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그러면서 쌍둥이 어머니의 나이를 가늠해보았다. 꽃다운 나이에 일찍 결혼을 해서 바랬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지만 쌍둥이를 덜컥 낳고 전업주부가 되어 하루종일,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는 집안일과 극성스런 쌍둥이 뒤치다꺼리를 하며 쌓아온 삶의 피로와 짜증이 연륜이 되어 본격적으로 아줌마의 세계로 들어선 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도 나보다 네댓살 아래로 가늠되었다. 거짓말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순간 난 그녀의 처녀 때의 모습을 그려보았고, 현실이 그녀를 이렇게 안하무인 아줌마로 만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피니시공격을 가해야 할 때, 상대의 입장을 살피면서 스스로 전투력을 무력화시켰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에 쌍둥이 어머니의 찢어질 듯한 고함소리, 그 소리가 끝나면 바로 아이들 목이 쉬여라 울어젖히는 소리가 추가되었다. 벌통을 건드렸다. 그냥 내버려둘걸. 하여튼 그 소리는 허구한날 들렸고 어쩌다 소리가 나지 않으면 윗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괜시리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차츰,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일일이 묘사하면 책 한권을 내놔도 모자라기 때문에 지면관계상, 요점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지하주차장이 텅 비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1층까지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내 차 뒤로 차를 겹겹이 세워두기 일쑤고 문을 열기도 어렵게 바짝 차를 대놓는 일들도 허다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그러고도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식으로 주차를 하냐고 물으면 “네?” 하며 생뚱맞은 표정으로 힐끔 쳐다보고는 말없이 차를 ‘피융∼’ 하고 빼버린다. 대게 젊은 부부일수록, 여자일수록 그렇다. 정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남 생각 안 하는 민족 하나를 뽑아보라면 나는 1초도 생각 안 하고 한국사람!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외국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남한테 피해주지 말라는 것을 부모에게 듣고 자랐다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무조건 하면 된다는 말을 집안의 가훈처럼, 내력처럼 듣고 자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남 생각 안 하는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 사회인지, 우리는 서로서로 “당하고” 있다.

김지운/ 영화감독·<조용한 가족> <반칙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