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고급스럽게 치장한 저예산 액션영화, <세븐 세컨즈>
김도훈 2006-03-07

웨슬리 스나입스는 도망자다. 도망치는 전직 군인(<나인 라이브스>), 도망치는 유엔 비밀요원(<아트 오브 워>), 도망치는 특급 죄수(<도망자 2>) 등 <블레이드> 연작을 제외한다면 스나입스는 지난 10여년간 스크린 속에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세월을 보냈다. <세븐 세컨즈>에서도 스나입스는 동료를 잃고 도망길에 오른 강도로 분한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전직 델타포스 툴리버(웨슬리 스나입스)는 동료들을 모아 카지노에서 은행으로 이송 중이던 돈을 탈취한다. 귀환하던 일행은 갑자기 나타난 러시아 갱단한테 살해당하고, 갱단이 노리는 것이 이송차량에 실려 있는 철제 가방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툴리버는 가방을 들고 도주를 시도한다. 우연히 만난 나토군 상사 앤더스(탐진 오스웨이트)에게서 휴대폰과 차량을 빼앗아 현장을 탈출한 툴리버는 가방 속에 든 것이 6500만달러짜리 고흐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갱단의 본거지를 찾아나선다. <세븐 세컨즈>는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 도둑질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다. 과연 영화는 고흐의 작품에 얽힌 음모와 맥거핀을 구사하며 초반부터 애써 머리를 굴려댄다. 하지만 결국 툴리버는 총을 들고 적진으로 들어서고, 음모는 허술하게 풀리고, 영화는 배신을 응징하는 총격전으로 여차저차 마무리된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난국에도 <세븐 세컨즈>가 생각만큼 값싸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각본과 연출의 구멍을 안정적인 배우들과 근사한 배경이 살짝 가려주기 때문이다. 부쿠레슈티는 흔해 빠진 미국 중소 도시들보다 근사한 액션 무대를 제공하고, 허허실실한 코미디 감각으로 무장한 다국적 조연들도 꽤 믿음직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망가진 자동차를 우아하게 몰고 다니는 앤더스 상사다. 전설적인 <BBC> 소프 오페라 <이스트엔더스> 출신인 탐진 오스웨이트는 영국적인 삐딱함과 재기를 구사하며 말도 안 되는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저예산 액션영화를 실제보다 고급스럽게 치장하려는 감독들에게 <세븐 세컨즈>는 유용한 교훈을 줄 법도 하다. 첫째, 값도 싸고 보기도 좋은 동구권 도시로 향할 것. 둘째, 가슴 큰 할리우드 이류 여배우를 캐스팅하는 대신 영국 소프 오페라의 세계를 뒤져볼 것. 물론 그런 잔재주도 영화를 온전히 구원하지는 못한다. <세븐 세컨즈>는 미국 내 극장에 걸리지도 못한 채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한 두 번째 웨슬리 스나입스표 영화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