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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고 거리낌없는 연기 중독, <사생결단>의 추자현

왜 욘사마는 바늘 끝처럼 곤두서는 신경줄을 견뎌내면서 무자비하게 근육을 키워야 했을까? 꽤 오랜 시간 스스로를 외부와 차단시킨 채. 뒤에 어렴풋이 설명을 했더랬지만 완벽한 납득은 어려웠다. 절정에 오른 인기를 그저 즐기거나 증폭하는 최선책, 그 어느 쪽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떤 도전? 굳이 필요한 시점일까 싶었지만, 자신에겐 절실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배우는 호모 사피엔스의 일반 명칭과 구분할 만한 다른 본성을 지녔다. 그 끼가 모두 사랑받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 끼를 풀어놔야만 하는 부류다. 2005년 봄, <카이스트>의 추자현이 필리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누드 화보집 촬영을 했다는 뉴스가 떴다. “왜 추자현이 누드를 찍었나요?” 지식검색에 물어볼 만큼 의외의 일이었다. 그때까지의 그는 터프하거나 코믹하거나 두 가지 ‘사양’ 중 하나였다.

“누드 찍고 인터뷰를 일체 하지 않았다. 나이가 꽉 차서 활동을 접어가는 것도 아니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누드를 찍었을까. 왜? 이제 조심스레 이야기를 한다면, 그때 나에게 화보집을 추천하거나 제안한 사람은 없었다. 100% 나의 판단이었고, 사생결단이었다. 난 매콤한 김치찌개도 먹고 싶고, 시원한 북어국도 먹고 싶은데 매일 된장찌개만 먹는 느낌이었다. 굶으면 굶었지 같은 건 그만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먹었으니까. 된장찌개보다 더 비싼 걸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른 맛을 원했던 거다.”

방송에서 입지가 다져진 건 아니었지만 늘 같은 메뉴만 요구하는 TV를 중단하고 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소속사도 놀랐던 누드 촬영을 선택했다.

“쉬면서 바로 찍었다. 너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지,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의 선택이니까, 모바일로 나가면 사진을 걷어들일 수도 없는 거고, 이것 때문에 방송 못할 수도 있고 그렇게 원하는 연기를 못할 수도 있다. 자신있니? 난 자신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누드를 찍는 목적이 돈 때문이라거나 사고를 쳐서가 아니기 때문에.”

<카이스트>는 ‘추자현’이란 이름을 알린 수훈의 드라마지만 동시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이미지의 굴레였다. 탈출을 위해, 제2의 인생을 도모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방송 중단과 누드였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모험이다. 수개월이 흘렀고, 소속사에서 <사생결단> 시나리오를 건네줬다. ‘그냥 읽어봐.’ 여자가 달랑 한명 나오는데 비중이 크고 굉장히 센 캐릭터다. ‘어때?’ ‘누가 할지 모르겠지만 연기 잘해야 할 것 같아. 근데 나보고 여기서 뭐하라고?’ 그렇게 정식으로, 신인처럼 오디션을 봤다.

“연극영화과 들어갈 때 교수님들 앞에서 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게 했다. 지영 역이 탐나서가 아니라, 정말 탐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자세를 갖고 있으니까 다음에라도 맞는 역할이 있으면 달라는 뜻에서….”

지영은 <사생결단>에서 마약의 파노라마를 유일하게 체현하는 인물이다. 특별한 사연없이 약을 접하고, 약에 취해 짐승 같은 섹스를 하게 되고, 약을 구걸하기 위해 또 동물 같은 취급을 받으며, 벌레가 온몸을 누비는 환각의 금단현상을 겪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약에 취해 벌이는 섹스와 약을 끊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과잉되기 십상인 몸짓을 추자현은 냉정하고 거리낌없이 실행했다. 류승범과의 멜로선도 넘치지 않게 이어갔다. 추자현의 무서운 모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추자현의 발견이란 표현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사회 첫날, 너무 많은 분들에게 칭찬받았다. 수개월 동안 고생했던 대가를 그 하루에 다 받은 느낌이었다. 여기는 열심히 하니까 알아주는 곳이구나, 더불어 칭찬까지 해주는구나, 또 함께 가려고 하는구나. 내가 이 자세만 잊지 않으면 이 공간에서 사랑받을 수 있겠구나 싶더라. 인생의 글을 다시 써보자고 크게 맘먹었지만 보여준 것도 없는 나를 발견해준 영화에 대한 의리를 잊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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