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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관계에 관한 이야기, <리턴>
박혜명 2006-08-29

*스포일러로 간주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버지가 12년 만에 돌아왔다. 할머니와 엄마의 보살핌 아래 살아왔던 두 아들 안드레이(블라디미르 가린)와 이반(이반 도브론라보프)은 아버지(콘스탄틴 라브로넨코)의 느닷없는 귀향 혹은 침입이 탐탁지 않다. 집에 돌아온 날 오후 내내 죽은 듯이 자던 아버지는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한 다음날 “엄마가 허락했다”며 두 아들을 데리고 낚시 여행을 떠난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아버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여행은 아이들의 생각과 달리 하나도 즐겁지 않다. 아버지는 시종 강압적이고 명령조이며 엄격하다. 여행 일정도 마음대로 바꾸는 바람에 안드레이와 이반은 질질 끌려다니다시피 한다. 그 와중에도 형 안드레이는 아버지에게 순종하려고 노력하지만 동생 이반은 드러내놓고 반항한다. 위험수위를 넘실대는 갈등과 다툼, 침묵과 강압 속에서 세 부자는 쪽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어딘지도 모를 외딴섬에 이른다.

<리턴>은 7개의 챕터로 이루어졌다. 영화는 일요일에서 시작해 토요일로 끝난다. 영화의 첫 장면인 일요일 오후, 안드레이와 이반은 친구들과 인근 호수에서 다이빙 놀이 중이다. 족히 20~30m는 돼 보이는 높이에서 “못 뛰어내리면 겁쟁이”라고 친구들이 엄포를 놓는다. 안드레이는 호수에 뛰어들었다가 뭍으로 나오지만 이반은 물에 뛰어들지 못한다. 월요일, 이반은 형을 포함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그날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고 화요일부터 고행에 다름없는 여행이 시작된다. 집에 돌아가기로 한 금요일, 세 부자에게 비극이 터진다. “영화의 사건은 성경의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7일간의 창조 범주 안에 자리하고 있다”라는 안드레이 즈비아진체프 감독의 말이 확증해주듯, <리턴>의 이야기는 거대한 성서적 알레고리를 품고 있다. 이반이 다락방에 숨겨둔 책에서 아버지의 옛날 사진을 꺼낼 때, 카메라는 ‘그림으로 공부하는 성경’쯤 돼 보이는 책의 삽화들을 유심히 비춘다. 아버지 앞에서 반항으로 일관하는 이반의 이름은 구약성서에서 믿음 좋은 동생 아브라함과 달리 신의 뜻과 계획에 대한 의심이 가득했던 형 이반과 우연찮은 동명이며, 영화의 마지막 대목에 삽입된 하강의 이미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성 금요일에 있었던)을 연상시킨다. 혹은 <리턴>의 이야기를 읽기 위한 틀로 신화적 관점이나 정치적 관점,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아버지와 두 아들이 외딴 시골에서 인적없는 도시를 거쳐, 성서적 ‘태초’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자연으로 나아가는 여정은 그만큼 근본적인 성질을 띤다. 반대로 말하면 <리턴>이 지닌 풍부한 상징과 비유의 장치들은 단 하나의 의미망 안에 포획되지 않는다. 유기적이고 치밀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지거나 상투적이 될 여지 또한 허락지 않는다. 아버지는 12년간 무엇을 하다 왔는가. 아버지가 갖고 다니는 상자 속엔 무엇이 들었는가. 아버지가 여행 도중 누군가에게 전해받은 물건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관한 대답을 <리턴>은 과감하게 거부한다.

그런 질문들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리턴>은 한편으로 그저 아버지와 아들을 이야기할 뿐이다. 처절한 반항도, 절대적인 숭고함도 남지 않은 부자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미하일 크리취만의 촬영은 광대하게 뻗어나간 자연 속의 인간을 깊숙이 클로즈업한다. 불신과 호기심으로 뒤섞인 아들들의 얼굴을, 침묵의 순간이 말을 하는 순간보다 더 긴 아버지의 얼굴을, 정면과 프로필로 담아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어느 순간 관객을 빨아들인다. 강압적인 아버지가 밉고, 반항하는 둘째아들 이반이 얄미워 죽겠고, 밸없이 순종적인 첫째아들은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그러다 맞이하게 되는 결말은 가슴을 커다란 둔기로 얻어맞은 듯 멍하고 깊은 충격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너무 슬프다. 아버지 역의 콘스탄틴 라브로넨코는 물론이고 연기 경험 전무한 아역 블라디미르 가린과 이반 도브론라보프 등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질려버릴 만큼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형 안드레이 역을 연기한 배우 블라디미르 가린은 이 영화를 촬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호숫가에서 수영을 하다 추락사했는데, 그의 시신이 발견된 호수는 <리턴>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바로 그 장소였다고 한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즈비아진체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18살 때 고향에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회고전을 본 뒤 그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의 데뷔작 <리턴>은 실제로 <솔라리스>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도 극찬을 얻었다. 여기에다 <LA타임스>의 케네스 튜란은 “감정적 측면, 비주얼 측면, 비유적 측면에서 모두 성공적”이라는 호평을 썼고 <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먼은 “미스터리한 모험에서 시작해 절망의 스릴러로, 그리고는 생존기로, 마지막엔 비극적인 우화로 끝을 맺는다. 원시적이면서 간결한, 이 놀라운 데뷔작은 제목 그대로 우아한 단순성을 품고 있다”며 양식의 일관성과 명쾌한 서사구조의 힘을 높이 칭찬하기도 했다. 즈비아진체프 감독은 시베리아 지역의 신흥 공업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자랐다. 연기학교를 졸업한 가난뱅이 무명배우 출신이며, 스릴러 장르의 TV시리즈에서 3편의 에피소드를 연출한 경력이 있다. “나 좀 살려주라.” 문자 그대로 목구멍에 풀칠을 하기 위해, 방송국에 일하는 친구를 찾아가 사정하던 시절을 보내고 “먼 길을 돌아” 서른여덟의 나이에 데뷔작을 만들 수 있었다. <리턴>은 2003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과 최우수 데뷔작품상(미래의 사자상)을 동시 수상했다. 이는 당시에 황금사자상의 유력한 후보로 점쳐진 영화들을 제친 결과로, 그해의 이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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