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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쳤다고 치고 떠나자
2001-09-12

김지운 칼럼

“박수칠 때 떠나라.” 장진의 연극제목이다.(여기서 장진은 와호장룡의 장진이 아니다) 장진감독이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연극을 한다고 할 때 참 제목 한번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박수칠 때 떠나기가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다. 모름지기 인간이기 때문에 더 큰 박수를 받고 싶어지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떠날 때를 놓치고 만다. 하물며 뭐 좀 한번 해보려고 하다가 박수는커녕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쪽 가슴이 저릿저릿 저려온다.

처음에 칼럼 연재 제의를 <씨네21>쪽에서 받고 “에이, 농담두… 놀리지 마세요” 그랬다. 정말 농담이거니 했다. 글이라곤 군대에 있을 때 위문편지에 답장 써본것과 시나리오 두세편 써본 게 전부 다인 나에게 칼럼을 부탁하니 농담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독특한 시각과 장난 아닌 글발을 유감없이 펼쳐보이던 김봉석의 숏컷 칼럼 아닌가? (아직도 난 김봉석 기자와 인사 한마디 못 나눴지만, 하여튼 난 김봉석의 숏컷 팬이었다) 괜히 쓸데없이 글이랍시고 끼적거렸다가 비교되거나 해서 욕이라도 먹으면 득될 게 없을 것 같았다.

몇 차례 고사를 하다가 지금은 영화사 사장님이 되신 조종국 전 기자께서 하면 된다라는 심보로, 거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줏대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써도 되는 건가? 또는 내가 칼럼을 쓸 수 있을까? 하면서 사뭇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래, 이번 기회로 나도 사회 전반에 걸쳐 문제의식을 가져보자라든가, 아마 이 게으른 삶을 바로잡아줄지도 모른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자기합리화 과정을 거치기 시작하여 한 3개월만 써보자라고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씨네21>을 보며 김봉석의 숏컷 마지막호를 보았다.

그게 벌써 일년이 되었다. 일년 전 그가 이 칼럼을 떠나며 한 말이 기억난다. 다른 건 다 잊어버렸고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뭐 이런 요지였다. 너무 원망스러웠다. 나한테 한 말은 아니지만 내 입장에서 들으면 영화나 잘 만들지 칼럼은 무슨 칼럼이냐?라고 들렸다. 나갈 거면 곱게 나갈 것이지 뒤에 올 사람한테 못질을 해도 대못을 박고 떠나나? 자신은 멋있을 줄 모르지만 뒤에 글을 쓸 난 뭐가 되냔 말이다. 그래서 난 조종국 전 기자이며 동시에 현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어 정말 못 쓸 것 같다고 엄살 아닌 엄살을 떨었다.

나에게 그는 용기를 주기는커녕, 이것은 국민과의 약속(?)이며 이제 와서 못한다면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며 어쩌며 하면서 겁을 팍 주었다. 첫글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당시 나는 인터넷영화 <커밍아웃>을 촬영하고 있었다- 쓰기 시작해서 어느새 일년이 넘었다. 격주로 쓰는 것이긴 하지만 한번도 빵꾸를 내지 않은 것이 내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글쓰는 것도 그럭저럭 재미도 붙었고 내가 그만두지 못하게 <씨네21>쪽에선 반응 죽인다고 계속 공갈을 쳐왔다. 워낙 칭찬에 약한 인간이라 그런 공갈을 듣고도 매번 앞에선 부끄러워하면서 속으론 다음엔 좀더 잘 써야지 하며 다짐을 하기도 했다. 3개월만 쓰려고 했던 것이 한번이라도 잘 써서 박수라도 받고 나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년을 썼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모두, 다 이런 생각으로 못 떠나는 거 아닐까? 충분히 박수를 받았는데 더 큰 박수를 바라는 거 아닐까? 그러다가 주저앉거나 놓치는 거 아닐까? 했다. 그렇다. 그러다 떠날 때를 놓치는 거라 생각했다.

터무니없지만 박수받았다고 치고 떠나는 것도 살면서 나쁠 것 없는 지혜였다.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버리는 것도 잘해야 된다던 어떤 분의 편지가 떠올랐다. 그동안 시덥지 않은 글 용케 참고 읽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아무쪼록 모두 안녕히….

김지운/ 영화감독 <조용한 가족>·<반칙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