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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가 스릴러와 만나 드라마로 풀린다, <잔혹한 출근>
이다혜 2006-10-31

김수로와 오광록의 개인기가 스릴러와 만나 드라마로 풀린다.

두 남자가 한 여고생을 엘리베이터에서 유괴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행동거지가 어설프다. 클로로포름으로 적신 수건을 여고생의 입에 틀어막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약발이 잘 안 듣는 모양으로, 여고생이 몸부림을 칠 때마다 여고생을 가둔 상자가 꿈틀거린다. 코미디로도, 혹은 스릴러나 드라마로도 갈 수 있는 이 초반 대목부터 <잔혹한 출근>은 셋 모두를 잡으려고 한다. 그래서 개인기에 기반을 둔 폭소보다는 상황이 낳는 간헐적인 웃음과 이중유괴의 긴장이 낳는 스릴, 그리고 결국 가족애로 귀착되는 감동이 <잔혹한 출근>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코미디로 입지를 굳힌 김수로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지만 <잔혹한 출근>에서 코미디가 차지하는 비중은 낮은 편이다.

평범한 가장인 듯한 동철(김수로)은 주식투자 실패와 막대한 사채이자로 인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상황이다. 다정한 아내와 어린 딸 앞에 사실을 밝힐 수 없는 그는 대출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주변 사람들에게 등을 돌려가면서까지 안간힘을 써 한푼 한푼 돈을 끌어모아 사채이자를 갚는 데 급급하다. 동철은 사채업자 주백통(김병옥)에게 이자를 갚으러 갈 때마다 만호(이선균)와 마주친다. 현금이 모자라 금붙이까지 주백통에게 넘겨 겨우겨우 살아가던 만호는 이자를 갚고 나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아이를 유괴하고, 동철은 엉겁결에 유괴에 합세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가 밤새 전화를 받지 않는 통에 둘은 몸값 요구 한번 못해보고 첫 번째 유괴에 실패한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두 번째 유괴에 나선 두 사람. 그들은 부잣집 딸이라는 태희(고은아)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지만 말썽많은 애물단지였던 태희가 유괴되었다는 말에 태희 아버지(오광록)는 냉담하게 반응한다. 게다가 동철은 뜻밖의 전화를 받는다. 자신의 딸을 납치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유괴범의 딸을 유괴해 부모가 신고할 수 없는 완전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고, 동철은 딸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원래 요구했던 것의 몇배가 되는 억대의 몸값을 태희 아버지에게서 받아내야 하는 상황에 빠진다.

두건의 유괴, 정확하게는 세건의 유괴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잔혹한 출근>은 주인공 김수로를 포함해 이선균, 김병옥, 오광록 등 자기 색깔이 분명한 인물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적절히 배치시켰다. 별 표정이 없는 듯 서늘한 눈으로 웃음을 흘리며 채무자들의 숨통을 죄는 주백통 역의 김병옥과 말썽만 부리던 딸이 진짜 납치되었음을 알고 절망에 빠지는 아버지 오광록은 적절한 대목에서 영화에 웃음을 불어넣는다. 동철 못지않은 경제적 궁지에 몰려 납치극을 제안하는 만호 역의 이선균은 김수로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대목부터의 인간적 매력을 잘 살렸다. 정작 납치극을 제안한 만호가 왜 결정적인 대목에서 동철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뚱맞아보일 때도 있다는 게 문제다. 주식에 목을 매다 유괴범이 되어버린 동철을 연기한 김수로는 초반의 코믹한 연기에서 중반부로 갈수록 가족에 애정을 가진 가장의 절망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신인인 고은아는 버릇없는 부잣집 딸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지만 갑자기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겪는 대목은 너무 갑작스럽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의 베일을 하나하나 벗기는 듯하면서 속시원히 풀지 않는 시나리오의 구성은 영화로 고스란히 옮겨져 스릴을 낳는다. <잔혹한 출근>의 극적 긴장감을 낳는 사건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동철의 딸을 납치한 게 누구인가’ 하는 수수께끼다. 동철의 가족에 대한 정보가 있을 뿐 아니라 동철이 납치사건을 저지를 예정이라는 것까지 알고 그의 딸을 납치하는 범인의 신비로운 존재에 대한 궁금증. 둘째는 동철이 태희를 납치했다는 것을 고리대금업자 주백통까지 알게 되어 주백통이 동철에게 입막음의 대가로 2억원을 요구하는, 커질 대로 커진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가 다른 하나다. 이 과정에서 코미디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에, 과연 동철이 딸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까지 포함되면서 <잔혹한 출근>은 너무 많은 문제점들을 놓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인다. 스릴러로서의 긴장과 드라마로서의 감동과 코미디가 낳는 웃음이 어느 한쪽 확실하지 않다. 여기저기에 애매하게 다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애를 느끼며 우는 장면이 나오다가 다시 엎치락뒤치락 하는 상황이 등장해 웃음을 유발하고, 곧바로 긴박감 넘치는 추격장면으로 이어지는 식의 구성은 보는 사람의 감정을 어느 한 곳에 머무르게 두지 않는다. 사건의 발발과 진행, 결말을 이해한다 쳐도, 원인이 분명치 않은 것은 근본적인 문제다. 주식대박을 노리고 사채까지 끌어쓰다 돈을 다 날린 동철이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남의 가족을 해하는 유괴범이 된다는 설정이나, 사채이자를 갚기 위해 여동생의 차를 몰래 팔고 동창회비를 빼돌리면서 자기 가족의 화목을 맹목적으로 지키려 한다는 설정은, 가장으로서의 막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극적 설정일 수 있지만 그바람에 동철의 성격은 왔다갔다 한다. 플롯과 캐릭터의 조화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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