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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아, 이거 역사영화 아니라니깐 그러네

투덜군, 멜 깁슨 영화를 두눈에 힘풀고 즐겁게 감상하는 법을 역설하다

다들 알다시피, 왕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개봉 당시에 상당한 논란이 있었더랬다. 그건 이 영화가 예수 수난을 정확히 묘사했는가, 또는 얼마나 기독교스럽게 묘사했는가에 대한 논란이었더랬는데, 이는 필자가 평소 주야장천 역설해왔던 장르 구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결과였다. 모든 문제는 당 영화를 ‘종교영화’ 또는 ‘역사영화’로 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패션…>의 장르적 정체는 무엇인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액션동포(同胞)영화’다. 다시 보신다면 알겠지만, 영화의 초장부터 안개낀 푸른 상방조명 맞으며 눈썹을 홀라당 밀어버린 <스타트랙>풍의 악마가 등장, 콧구멍을 통해 CG로 만든 뱀꼬리를 들락거리게 한다든지 예수를 판 대가로 유대교 제사장이 유다에게 은전 꾸러미를 던질 때 ‘이거 엄청 중요한 장면이거덩’을 부르짖듯 <매트릭스>적 슬로모션으로 보여준다든가 하는 등의 장면들은 당 영화가 얼마나 진부찬연한 테크닉으로 점철된 이류 액션영화인지를 역설하고 있었더랬다. 또한 당 영화가, ‘어유, 저걸 내가 당하면 얼마나 아플 것인가…’라는 사해동포주의를 새삼 일깨우는 ‘동포(同胞)영화’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고.

한데 이번 멜 깁슨의 신작 <아포칼립토>에 대해서도 <패션…> 당시의 오류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고대 마야문명을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가 또는 얼마나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가 등은 아 글쎄, <아포칼립토>에는 적합한 논의가 아니라니깐 그러네. <아포칼립토> 역시 <패션…>과 마찬가지로 ‘역사영화’나 ‘문명영화’ 따위가 아닌 단순 ‘액션동포영화’일 뿐이다.

크게 보아 당 영화는, 액션어드벤처계의 걸출한 두 영화를 참고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전반부의 <스타워즈>, 후반부의 <프레데터>가 그것인데, 단지 바뀐 것이 있다면 미술이나 의상 같은 비주얼을 고대 마야문명에서 가져왔다든가, 나쁜 놈(또는 괴물)의 시점을 주인공의 시점으로 바꿨다든가, 외계어 대신 고대 마야어를 썼다든가 하는 정도다. 뭐 물론 고대문명도 사랑과 낭만과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것이 아닌,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것이었다라든가 문명은 다 그 속에 망할 만한 이유를 내포하고 있다든가 등등의 메시지를 전하려 나름 애쓴 흔적도 보인다만, 그게 <스타워즈>나 <프레데터>의 그것보다 깊이있다든가 독창적이라 사료되지는 전혀 않으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쏜가.

다른 많은 시답잖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멜 깁슨 영화는 지나치게 진지하게 봐줄 때 오히려 더 많은 헷갈림이 유발된다고 본다. 때론 어깨에 힘을 빼고 느긋하게 바라보는 자세가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 영화비평계처럼 진지함이 기준치를 훨씬 초과한 곳에서는 더욱 말이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그래봤자 ‘기껏해야 영화 한편’이 아닌가. (※이 원고는 590호 게재 예정이었으나 지면관계로 한 주 늦게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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