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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하는 거대한 함대 <고스트 라이더>

관능적인 육체성이 마주쳐 불꽃 대신 재를 만들어냈다면.

마블 코믹스의 익히 알려진 매력은 혼란스러운 괴력이 확신에 찬 괴력과 싸운다는 데 있다. 스파이더 맨은 흉측한 거미인간이 된 대가로 힘에 대한 조정자와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 사이에서 줄타기 곡예를 벌여야 한다. 4500만부의 책을 팔아냈다는 <고스트 라이더> 역시 이 범주다. 악마 메피스토텔레스(피터 폰다)에게 영혼을 판 바이크 스턴트맨 자니 블레이즈(니콜라스 케이지)는 불멸의 힘과 굴종의 노예라는 이중의 캐릭터가 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빌려온 흥미로운 구도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것을 머릿속에 넣으려 했던 지적 욕망 탓에 유혹을 자초했던 파우스트와 달리 자니는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영혼을 건다. 욕망이 스스로에 향해 있다기보다 애초부터 일방향의 희생정신에 봉사한다. 마블 코믹스 캐릭터의 복합적 갈등이 일차방정식으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구도는 아들 블랙하트(웨스 벤틀리)가 아버지 메피스토펠레스를 없애고 세상에 군림하려는 반역이다. 아버지 메피스토펠레스는 영혼수집을 위해 고용한 고스트 라이더를 대리인으로, 아들 블랙하트는 4명의 타락천사 ‘데블4’를 내세워 전쟁을 벌이는데 도무지 부자지간의 갈등이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는다. 자니가 고스트 라이더가 됨으로써 잃어버렸던 청순한 사랑 록산느(에바 멘데스)는 뉴스 리포터로 되돌아온다. 6대의 블랙호크 헬기 위를 바이크로 뛰어넘겠다는, 명백히 자살 충동의 스턴트를 펼치는 자니는 그 무모함에 반하는 팬들의 열광에 휩싸이고, 유능한 리포터 록산느는 자니의 인터뷰를 놓칠 수 없다. 놀랍게도 에바 멘데스는 너무 관능적이어서 문제다. 그 관능이 자신의 애절한 사연에 스스로 호흡을 끊어버린다.

남는 건 액션블록버스터의 화려한 전시. 이건 마치 지휘자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거대한 함대 같다. 화염에 휘감긴 해골의 고스트 라이더와 그를 태운 헬바이크의 자세는 이글거리지만 표정이 없다. 스파이더 맨의 표정없는 가면에 비하면 화염은 더욱 활기차고 기기묘묘한데도 이 영웅에게선 그저 에너지뿐이다. 하여 니콜라스 케이지 그대로의 얼굴이 뒤로 갈수록 더 자주 불타는 해골과 교차하지만 쫓겨난 긴장감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헬바이크가 60층 빌딩을 거꾸로 오르거나 반대로 내리닫는 것도 활극이라기보다 그저 만화다. 차라리 육체의 전시성이 느껴지는 건 기름기를 쪽 뺀 니콜라스 케이지의 탄탄한 근육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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