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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미국 3부작 <만덜레이>

미국이라는 알레고리 속에선 누구든 미국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라스 폰 트리에의 미국 3부작 중 2편인 <만덜레이>는 아버지와 함께 ‘도그빌’을 떠난 그레이스가 ‘만덜레이’라는 노예제가 상존하는 농장에 머물게 되면서 전개되는 상황을 다뤘다. 전작과 이어지는 연극적 비주얼, 공평무사한 내레이션, 살짝 우아한 바로크 음악과 엔딩 때 흐르는 데이비드 보위의 <Young American>은 영화에서 일어나는 파탄들에는 무심해 보이는 형식적 골격을 제공한다. 그레이스라는 한명의 이방(혹은 타인종) 여자와 마을 사람 전체와의 대면이라는 서사적 설정 역시 전작의 구도를 잇는다. 그러나 가면 쓴 미국식 합리성의 폭력에 훼손당했던 그레이스의 입장이 이번엔 마을의 질서와 윤리를 만드는 주재자의 위치로 전도된 듯하다. 노예들에게 자율과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가르쳐’주기 위해 농장에 머물기로 한 그레이스는 미국식 미덕과 민주주의의 질서에 대한 포교자가 된다. 그러나 타율에 익숙한 자들의 내성은 자율이라는 이질적인 사태에 근본적으로 적응하지 못한다. 깨질 듯하면서도 매혹적인 니콜 키드먼의 그레이스는, 씩씩하면서도 설레는 열정을 지닌 미국 소녀 이미지의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분한 그레이스로 약간 캐릭터가 변경된 인상이며, 이 그레이스는 3부인 <워싱턴>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다. 미국에 가지 않고도 카프카는 <아메리카>를 썼다, 미국에 가본 적 없는 라스 폰 트리에가 도발적인 미국 3부작을 연출하고 있듯이. 여기서 ‘아메리카’라는 알레고리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떤 무고하고 순진한 사람이라도 아메리카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끝없는 회의를 갖게 하는 미친 마을, 도그빌과 만덜레이가 아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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