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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부모 심층인터뷰
고경태 2007-09-21

대화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는 거 안다. 하지만 죽도록 안 한다. 열살 먹은 우리 아들은 하루 종일 유희왕 카드만 쳐다본다. 용돈이 생기면 문방구로 달려가 카드부터 고른다. 전화통을 몇 시간씩 붙들고 친구와 나누는 대화의 90%는 유희왕 카드에 관한 거다. 아빠 얼굴 한번 쳐다볼 때 유희왕 카드는 100번도 넘게 들여다본다. 조근조근 말을 붙일라치면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해진다. “바쁘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 달라질까? 중딩, 고딩 자녀를 둔 선배들에 따르면 “네버”다. 어쩌면 “포에버”일지도 모른다. 성장할수록 아이들은 따로 놀고 싶어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오른 뒤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없다. 몇 마디 ‘서바이벌 영어’로 나 홀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지나치게 간단한 한국어 회화로만 부모와의 시공간을 유영했던 건 아닐까. “밥 줘, 학교 갑니다, 다녀왔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같은…. 어머니는 늘 딸 같은 살풋한 말 상대를 원했지만, 무뚝뚝한 아들은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으며 수다를 떤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버지와는 더욱 그랬다. 소가 닭을 볼 때 그럴 것이다. 마지막 병상에서조차, 진심을 담아 살가운 애정표현을 한 적이 없다는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한달 전 고향집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14년 전 돌아가셨지만, 당신의 손때가 묻은 서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서가엔 아버지가 생전에 구입한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종교에 관심이 많았고, 보수적인 세계관을 지닌 분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단정했다. 9시뉴스가 흐르는 텔레비전 앞에서 의견일치를 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모르겠다. 서재의 책들을 차분히 들여다보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문학과 사회과학, 신학에 관계된 상당수의 책들은 평소 아버지의 지론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그것들을 다 읽었을까? 그저 단순한 책 수집 욕심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서가를 뒤지다 낡은 사진첩도 발견했다. 틈틈이 찍은 풍경사진을 모은 뒤 사진들 밑에 꽤 긴 감상을 끼적거린 일종의 수상록이었다. 표지엔 ‘1965’라고 연도가 표기돼 있었다. 그때 나이, 서른. 앨범의 글 속엔 유독 ‘고독’이라는 낱말이 자주 등장했다. 치기어린 감상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고독에 몸서리치도록 만든 사건이 있었을까. 사회 전체가 압축성장으로 질주하던 그 시기에, 아버지는 무슨 희망을 안고 살았을까. 보람과 기쁨을 어디서 얻었을까.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한번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국사나 세계사 시험 준비를 하듯 부모의 역사를 요약 정리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건 ‘대화’ 따위의 수준으로 가능하지 않다. ‘심층 인터뷰’가 필요하다. 얼마 전 일본 추리소설을 읽다가 가족을 상대로 ‘심층인터뷰’를 할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레몬>에서 고등학생 딸이 ‘아버지의 자서전 쓰기’ 방학숙제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었다. 죽은 아버지의 옛 지인들을 만나 조사를 벌이는 내용이었다. 범인을 쫓는 소설의 맥락과 관계없이, 그 부분이 유독 참신하게 와닿았다. 아버지가 직장 동료에게 어떻게 비쳐졌는지, 누구와 친했고, 누구와 사이가 나빴는지, 특기할 만한 사건은 무엇이었는지를 기자나 수사관처럼 캔다는 게 신선할 따름이었다.

그 소설처럼 해보면 어떨까. 이왕이면 옛 지인이 아닌 어머니나 아버지 본인을 직접 심층 인터뷰한다면 더 좋겠다. ‘인터뷰이’가 ‘인터뷰어’를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 대접하고, 민감한 질문에도 솔직히 답변해준다면 특종(!)이 터질 게다. 까마득히 몰랐던 가족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쏟아지고 각종 의혹이 풀릴 테니까. 부모가 전혀 다르게 보이면서 가족에 대한 이해가 상상을 초월하여 깊어질 거라 추측된다(아, 물론 배신감에 치를 떠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역사는 수많은 개인사의 퍼즐로 이뤄진다. 개인의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이고 부분적인 기억들은 역사의 피와 살과 뼈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다. 역사학자들은 “개인적인 것은 역사적이다”라고 말한다. 그 어떤 무지렁이 할머니일지라도 그의 전 생애를 ‘구술’받으면 의미있는 역사의 한 자락이 더듬어지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를 심층 인터뷰하다 보면 그때의 사회상과 트렌드, 정치적 배경이 자연스레 포착될 거다.

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방학숙제나 리포트로 ‘부모 심층 인터뷰’를 시켰으면 좋겠다. 가족과 역사 두 마리 토끼 잡기다. 유년의 기억에서 연애나 직장생활, 해외여행 경험, 정치적 태도 등 두루두루 구체적으로 묻고 기록하도록 하자. ‘87년 6월’, ‘97년 외환위기’ 등 특정 시기로 주제를 좁혀도 좋다. 그 기록을 함께 공유한 뒤 가족 야사 자료로 남기면 훌륭한 가보가 되지 않을까. 추석이 코앞이다. 고스톱만 치지 말고 가족을 심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