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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
김애란(소설가) 2008-04-11

정체를 짐작하기 힘든 악, 지영민을 온몸으로 추격하는 <추격자>

어두운 골목, 서울의 주름 사이를 가쁘게 미끄러져가고 있는 한 사내를 떠올린다. 미진(서영희)이 선 우연의 문(門) 앞에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남자의 적당히 이완된 말씨를 그려본다. 그의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이름을 자꾸 생각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보라.’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아프고, 어느 작품은 머리가 아픈데, 이 영화를 보고나선 며칠간 몸이 아렸다. 영화가 끔찍한 장면을 다뤄서만은 아니었다. 영상 속 폭력에 무던해진 지 오래고, 어느 면에선 그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다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런데도 필름이 피를 타고 도는 느낌이 났다. 가까스로 화염 속에 들어간 소방관이 결국 시신을 안고 나왔을 때처럼, 몸에서 지워지지 않는 탄내가 났다. 나는 내가 왜 힘든지, 또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름’이란 명명만 불안하게 맴돌 뿐이었다.

범인은 지영민(하정우)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그의 이력도, 환경도, 범행동기도 어렴풋 짐작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는 그저 그 이름이기만을 고집한다. 그는 오래전,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에게서 받아둔 명함처럼 가볍게 팔랑이며 우리 앞을 스쳐간다. 그러니 <추격자>에서 가장 전사(前史)가 풍부하고 입체적인 인물, 엄중호(김윤석)가 지영민이라는 텅 빈 기호 속으로 미친 듯이 돌진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해석에 반대하는 악(惡), 투명한 악. 그 주변을 땀으로 물들이며 좇기. 그 ‘알 수 없음’의 세계에 얼룩을 남기기. 내 동선을 통해 네 이름 자(字)를 상상하기.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 (중략) 당신이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살인자, 안톤 쉬거가 하는 말이다. 쉬거는 영민과 다르지만, 그의 말은 근래에 출몰하는 ‘악’의 성격에 대해 얼마간 단서를 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어쩌면, 엄중호가 추격한 건 지영민의 주소가 아닌 이름이지 않았을까. 엄중호의 마지막 살의 안에는 분노 너머의 환상- 많은 고문관들이 그랬듯, 상대의 육체를 찢고 발기면 진실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이 아른거리지 않았을까.

영화 막바지, 추격자는 광기를, 도망자는 침착함을 드러내며 마블링처럼 엉킨다. ‘삶의 졸렬함과 죽음의 비열함 한가운데서’(토니 모리슨의 소설 속 한 구절) 뒹구는 두 사람. 화창한 죽음. 비오는 진창. 그 안에서 절망하지 않는 인간은 오직 지영민 혼자뿐인 것처럼 보인다. 두께가 없는데 생생한 인물. 과거가 없는데 선명한 이름. 감독은 지영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단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홍진 감독이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럴 땐 ‘그가 누군지 알고 싶다면,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는가를 보라’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지영민은 구속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를 모르고, 엄중호의 추격은 실패한 추격, 실패할 수밖에 없는 추적이 된다. 그가 ‘그럴 리 없음’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그럴 만도 함’의 근거를 제공해주지 않는 인물인 까닭이다. 그가 존재하기 전까진, 그가 실재한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인물. 그들의 이름은 나중에 붙여진다. 그리고 늘 충분치 않다. 우리가 악과 마찬가지로 선에 대해서도 무지하듯. 그것은 오랜 추구의 질문이자 미결의 문제이다. 엄중호는 달리고 또 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는 질문에 말로 대답치 않고 몸으로 매달린다. 십자가 아래서. 시청 밖에서. 네가 누군지 몰라도,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겠다는 듯. 안도와 이해를 배척하며 질문의 순도를 지키겠다는 듯. 그 달음질의 종착지에서 <추격자>는 결국 ‘누구냐, 너’라고 묻는 대신 ‘네가 누구냐고 묻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어리둥절해하는 듯하다. 그 물음의 언저리, 마지막으로 비추는 종로의 풍경이 황량하다. 관객의 얼굴 맞은편, 거울처럼 놓인 2008년 서울의 심연이 아득하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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