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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중경삼림> -장형윤 감독
2008-04-11

그리고 내레이션은 내 취향을 바꿨다

스무살 때였다. 나는 창문도 없고 전압이 낮아서 냉장고만 돌아가도 형광등이 깜박거리고 헤어드라이를 켜면 전기가 나가버리는 그런 곳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공동화장실에는 지붕이 없어 비가 오는 날에는 화장실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정취가 있는 곳이었다. 자취방은 재래시장 건물 안에 있었는데 내부에는 낮에도 빛이 안 들어오는(방에 창문이 없으니까) 한칸짜리 작은 방들이 수십개 모여 있었다. 건물 기둥은 시멘트가 떨어져나가 철근이 들여다보였다. “시멘트와 철근을 기준량의 절반도 안 쓴 것 같아. 학교에서 배운 건물 붕괴 조짐 사진하고 똑같은데…. 곧 무너지겠다.”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가 말했다.

친구여, 무너지겠는 건 내 청춘이라네. 나는 그때 첫사랑과 막 이별을 한 참이었다.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이 180도인 것처럼 알 듯 모를 듯한 자연스러운 이유로 헤어졌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엇갈리는 마음에 이상함과 서글픔을 더 느꼈었다. 게다가 무너질 것 같은 자취방에 새벽이면 술을 사들고 찾아오는 친구와 그 일행들로 인해 잠을 잘 수 없는 암울한 시기였다. 그때 그 친구들을 피해 비디오방에서 본 영화가 왕가위의 <열혈남아>였다. TV가 없었음으로 나는 자주 새벽까지 라디오를 들었는데 그 덕에 당시 암암리에 퍼져 있던 <정은임의 영화음악> 같은 비밀종교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중경삼림>을 보았다. 그저 CD가 돌아가는 것을 찍은 것뿐인데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게다가 그 음악. 왕가위 영화는 언제나 음악과 영상이 착 붙어 있어서 한번 보고 나면 그 노래를 들을 때 그의 영화 말고 다른 이미지가 생각나지 않는다.

<중경삼림>에서 여자의 마음을 알아차린 양조위가 찾아왔을 때 왕정문은 여자 보컬의 재즈곡을 듣고 있었다. 요즈음 알게 된 것이지만 디나 워싱턴의 <What A Difference A Day Makes>란 곡이었다.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twenty-four little hour~. “당신에게 그 음악은 어울리지 않아요. 이걸 들어요.” 양조위가 말했다. 하지만 양조위. 이제 와서 기억력 좋은 척해도 안 통한다고. 그리고 난 그 재즈곡이 마음에 들었다. 재즈가 그렇게 좋을 수 있다니. 가수의 또박또박한 발음은 매력적이었다. ‘투웬니 포’라고 안 하고 ‘투웬티 포’라고 발음했다. 어쨌든 나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T를 어물쩍 안 넘어가는 그 자세가 좋았다. 느낌도 좋고. 그래서 그 노래는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내레이션. 나는 <중경삼림>의 내레이션이 정말 좋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고 자막이라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목소리의 언어적 울림만 기억하고 자막을 읽고 문학적으로 스스로 해석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내가 만약 영화를 만든다면 그런 목소리가 들어간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결국은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에는 내레이션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은 내레이션을 피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무래도 영화적 표현으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잘 쓰면 괜찮지만 위험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불량식품에 끌리는 초등학생같이 가끔 느낌이 좋은 내레이션이 사용된 영화를 보며 왠지 모르게 확 몰입해버리고 만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일까? 취향은 전부터 있던 경향이 숨겨져 있다가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이를테면 산업혁명 식으로) 완전히 변하는 것일까? 나에게 취향의 산업혁명이 있었다면 그중 하나가 <중경삼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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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윤/ 애니메이션 감독·<아빠가 필요해> <무림일검의 사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