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예쁜 게 죄 인가요?
이영진 2008-06-05

1960년대 미용정형외과 줄줄이 개업, 배우들도 쌍꺼풀 수술 등 유행

납작코는 오시오. 들창코도 문제없소. 매부리코는 깎아드리리다. 양인들의 쌍꺼풀이 부럽소? 이마빡이 튀어나왔다고 고민 마시고, 귀가 뒤로 자빠졌다고 부모 탓 마시오. 유방이 작다고, 머리숱이 적다고 골방으로 숨지 마시오. 주름이 많다고, 암내가 난다고 뒷걸음치지 마시오. 점은 빼드리고, 입술은 줄여 드리오. 들어간 볼살은 부풀리고, 사라진 턱은 살리오. 거시기 크기도 확대 가능하오. 연락주시오. 멀쩡한 사지만으로 양이 안 차는 이들 어서 오시오. 여기는 미의 전당, 종로2가 35번지 파고다공원 정문 옆이오.

1960년대 들어 영화잡지 광고란에는 성형 전문의원들의 개업 소식이 줄을 이었다. 고작해야 성병 혹은 부인병 전문 의원들의 광고가 전부였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종로에는 장안의원, 광화문에는 연합병원, 명동에는 영락의원, 남대문에는 남문의원 등 10곳 넘는 미용정형외과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미국에서 다년간 안면성형을 연구하고 일본에서 치열성형까지 마스터했다”는 등 유학파 의사도 등장했으며, 이들은 호언장담과 친절약도 외에도 비포&애프터와 기자와의 일문일답식 광고까지 실었다. “눈이 멀고 관절이 굳는” 납성분의 연분을 화장품으로 바르던 1920년대. “번개탄 비슷한 가봉으로 파마를 하던” 1930, 40년대. 미용실에 연탄 피워 오드리 헵번식 헤어 스타일을 만들어냈던 1950년대. 고통을 수반한 여성 미용의 역사는 1960년대 들어 성형 시술이라는 쾌거(?)를 이뤄낸다. “미국 시민들은 코가 못생기거나 조그마한 상처만 있으면 떼버리고 인공코로 바꾸어 붙인다고 하더라.” 불과 10년 전인 1950년대 초만 하더라도 먼나라 양코쟁이들의 독점 가십이었던 성형이 한국에 상륙했으니 어찌 감격하지 않을쏘냐. 한 일간지는 1960년대 초 ‘미용수술의 상식’이라는 기사까지 게재, 부위별 수술법을 자세하게 소개했을 정도다. 성형외과 의원들이 영화잡지를 주요 타깃으로 삼은 건 당연한 수순. 신인배우 모집 공고에 이력서 든 배우지망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던 1960년대가 아니던가. 당시 배우지망생 중엔 “요구하지도 않은 나체사진까지 동봉한” 이도 있었고, “부모 몰래 가출해서 상경한” 중학생도 있었다. 세상을 불태울 만한 의욕의 소유자들이었으나, 이들은 불행히도 “윤정희의 이목구비, 남정임의 입체감있는 입술, 도금봉의 풍만한 궁둥이, 최지희의 야생적인 눈”을 갖진 못했다. 그러니 배우가 되기 위한 열두 계단 중 세 번째 계명이 “무조건 정형(성형)수술을 해둔다”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영화잡지> 1964년 1월호)

얼굴로 먹고사는 배우들도 성형 열풍을 외면할 순 없었다. <영화잡지> 1972년 4월호의 ‘인기 스타들의 가면(마스크)을 벗겨라’는 촬영 중 절벽에서 떨어져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었으나 성형수술로 부활한 신성일의 사례 외에도 “배우 수명을 늘리기 위해”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경쟁적으로 쌍꺼풀 수술 등의 성형 유행이 일었다고 적고 있다. “톱스타 OOO 양이 눈까풀 수술을 했고 한OO 씨도 성형 수술을 했다…(후략).” “(칼 대지 않은) 김지미의 진짜 얼굴과 태현실의 (눈 위) 검은 점”이 더욱 돋보인다고 덧붙인 당시 기자는 한동안 매니저들에게 왕따를 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진일보한 신기술이라는 광고처럼 누구나 미모를 소유했다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1961년 서울 종로에 사는 한 유부녀가 “남편 모르게 유방 미용수술을 했다”가 “양쪽 유부에 종창이 생기는 바람에 (가슴을) 절단해야 하는” 비극적 선고를 받은 이후 의료사고는 수시로 발생했다. 한 미용정형의원의 경우 1960년대 초 연간 1천여명의 환자를 받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는데, 당시 의사들의 상당수가 번듯한 자격증이 없는 불법, 편법시술자였다. 1967년 3월 정부가 미용정형은 의료행위가 아니라며 단속방침을 밝히고, 1970년대 초 대법원이 이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소 팔아 얼굴 고친 배우지망생들 중 ‘괴로운 미녀’가 된 이들 또한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형 광풍은 사그라지지 않았는데, 외모지상을 부추기는 미디어야말로 다름 아닌 21세기 성형공화국 탄생의 일등공신 아니었을까. 그걸 증명하기엔 시간 부족, 지면 부족. 어쨌거나 1960년대 중반, ‘키 크는 기계’, ‘젖 크는 기계’를 발명, 특허출원까지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광고까지 등장했음을 아시는지. “무릎 밑에 2개의 전자파 발진장치”를 달면 키가 큰다는 선전은 그렇다치고 젖은 도대체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참조 <영화잡지> <동아일보> <월간 인물과 사상-한국 미용 성형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