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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삼류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영화광들의 삼류영화에 대한 이유있는 애착

영화광들에게는 약간 삐뚤어진 성향이 있다. 많은 영화광들이 전설적인 ‘삼류영화’를 보기 위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향해 발걸음을 서두른 지가 어언 14년, 거 참 희한하다. 이건 마치 질 떨어지는 슈퍼마켓용 포도주를 음미하기 위해 포도주 애호가클럽 회원들이 모이는 것만큼이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제7의 예술의 파리 다보탑인 시네마테크는 보란 듯이 한달에 두번씩 실리콘으로 만든 괴물이 나오는 영화, 가물가물 잊혀진 이탈리아 포르노영화, 멕시코 권투영화 혹은 일본의 잔인한 고문영화처럼 음침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삼류영화에 대한 이러한 애착은 1950년대에 이미 시작됐다. 아도 가이루는 대표적 저술인 <영화에서의 초현실주의>라는 책에서 “간곡히 부탁한다. 부디 ‘안 좋은’ 영화 보는 법을 배우라. 그중엔 가끔 숭고한 작품들이 있으니까”라고 외친다. 이렇게 해괴한 취향의 영화광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영화예술에서 시(詩)란 전혀 엉뚱한 일탈, 즉 감독이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가 창조한 작품이 어떤 우연적인 형태를 취하는 바로 그 순간에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삼류영화의 팬들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 늘 온갖 에피소드들을 당신에게 늘어놓는다. 예를 들면 장 클로드 다그가 영화사상 가장 별볼일없는 영화인이라는 말을 거기서 꼭 듣게 될 것이다. 1971년 다그 감독은 지금은 잊혀진 탐정영화 한편, 전혀 웃기지 않은 코미디영화 한편, 찾아보기도 힘든 에로틱 괴기영화 한편, 그리고 뮤지컬 멜로드라마 한편을 제작한 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그러자 그는 다음 작품의 제작비 마련을 위해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그의 커리어는 결국 감옥에서 끝이 나는데, 어찌됐건 간에 장 클로드 다그는 이것으로 영화사(史)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비록 삼류의 문을 통해서라지만.

삼류영화의 팬은 아무도 모르지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어떤 스타의 광적인 팬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도로시 스트라텐을 열렬히 숭배하는 어떤 팬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데 도로시 스트라텐이 대체 누군가? 1980년 <플레이보이> 표지를 장식한 이 금발의 미녀는 ‘올해의 섹시걸’로 선정된다. 그 뒤 갓 스무살의 그녀는 <갤럭시나>(Galaxina)라는 SF패러디영화를 한편 찍는다. 그러나 그녀는 작품이 나오자마자 의처증이 있던 남편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조금 전 위에서 말한 도로시 스트라텐의 열렬한 숭배자는 그녀가 끔찍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더라도 틀림없이 국제적인 슈퍼스타가 됐을 거라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당신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거다. 그렇다. 그녀의 죽음은 분명 영화계의 커다란 상실인 거다.

삼류영화는 정통 영화사와 완전히 동떨어진 영화는 아니다.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이 자신의 작품 <아귀레, 신의 분노>와 <피츠카랄도>에서 극찬했던 클라우스 킨스키 같은 명배우도 커리어의 대부분을 페르난도 디 레오의 <히츠콕 박사의 불만족한 인형들>(La Bestia uccide a sangue freddo)과 같은 끔찍한 영화나 이탈리아·터키 합작 삼류영화에 전념했었다.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대만 출신 여배우 서기도 가벼운 포르노영화로 데뷔한 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로 넘어갔지 않나. 감독들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은 존경받고 있지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저예산으로 제작한 자신의 공포물에 전설적 포르노 배우 마릴린 체임버스를 출연시킴으로써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피터 잭슨 역시 <반지의 제왕>이 나오기 훨씬 전 잔디 깎는 기계로 좀비들을 살해하는 <브레인 데드>를 연출한 장본인이다.

간혹 영화의 한 장르가 삼류에서 공식적인 영화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1980년대에는 무시받았던 ‘가라테영화’는 삼류영화라는 오명을 벗고 ‘무술영화’라는 이름하에 당당히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삼류영화에 관심을 갖다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영화사의 대대적인 흐름을 발견했다며 떠벌리는 비평가들이 알고보면 새로운 걸 발견한 게 아니라 이름만 슬쩍 바꿔 달고 있다는 사실. 어떤 영화를 ‘삼류영화’ 대신 ‘작가주의영화’라고 새로이 명명하는 것이다.

번역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