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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후면비사] 복권 아니 탈세극장 현상금 등장
이영진 2008-07-24

1961년 극장들 탈세 방지책으로 입장권 복권제 시행, 쥐꼬리 당첨금에 관객들 외면 ‘유명무실’

1등=대한극장 C225번(상금 5만환) 2등=국도극장 F944, 국제극장 B4415(상금 2만환) 3등=단성사 400환권 22153, 동 극장 동 환권 6983, 을지극장 A1012(상금1만환) 한편 개봉관을 제외한 기타 극장에 대한 추첨은 상오 11시 현재 계속 중에 있다.

“행운을 드립니다. 여러분께 드립니다” 1960년대 극장에는 ‘골든 시트’가 있었다. 1961년 8월23일 자 <한국일보>는 경관 입회하에 극장입장권 제1회 추첨을 실시했고, 그 결과 5개 극장에서 6명의 당첨자가 결정됐다고 쓰고 있다. 이른바 ‘극장 복권’의 등장. 1947년 12월, 대한올림픽위원회가 제16회 런던올림픽 참가경비 마련을 위해 올림픽후원권을 발행하고, 이어 1949년 재해대책자금 조성 목적으로 후생복표를 발행했던 정부는 1961년 7월31일 극장입장권에 복권을 첨부하겠다고 발표한다. 까닭은 해외영화제 참가 영화인의 경비 마련도 아니었고, 열악한 영화인들의 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기금 마련도 아니었다. 영화산업 진흥을 위한 기금 마련이나 관객 증대를 위한 마케팅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극장의 탈세 방지였다.

1950년대부터 극장은 정부엔 눈엣가시였다. 아니, 그들의 눈엔 무법지대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극장은 청소년들에게 끽연과 음란을 제공하는 탈선의 공공장소였고, 극장주들은 탈세를 밥 먹듯이 하는 공공의 적이었다. 1950년대 중반부터서 하루가 멀다 하고 탈세 혐의로 극장주들은 원치 않는 콩밥을 먹었다. 2억1천만원의 거액 탈세 혐의로 결국 극장주가 8개월의 징역형을 받은 1953년 계림극장 사건, 세무서 공무원과 함께 짜고 탈세를 자행한 1955년 국도극장 사건, 외화 <부활>을 상영하면서 입장객의 절반만 신고하는 식으로 세금을 포탈했던 1959년 명보극장 사건 등은 일부였다. 해마다 때가 되면 극장은 서리를 맞았다. 굳이 증거를 들이댈 필요는 없었다. ‘죽자살자 영화 애호가들’의 초만원 입석 매진 사태는 그 자체로 탈세혐의를 뒤집어 씌울 수 있는 단서였다.

국고에 구멍이 났는데 정부로서도 두손 놓고 ‘멍’ 때릴 수는 없는 일. 1959년 4월1일 정부는 외국영화개봉입장권을 발행하기 시작한다. 연간 4500만환의 국가예산을 들여 납세증이 부착된 입장권을 찍어내는 식이었는데, 이마저도 별 효용이 없었다. 불과 한달도 채 되지 않아 각 지역 극장들에서는 “입장권을 통째로 받고서 좌석번호만을 적은 간이 입장권을 건네주는” 식으로 ‘표돌리기’가 횡행했다. 극장들은 또한 “사세국에서 발행하는 무료 입장권을 관객에게 유료 입장권으로 속여 파는” 식의 대응책(?)으로 맞섰다. 준법했다가는 “과중한 세율” 때문에 극장 운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탈법 이유였다. 극장에 내걸면 무조건 대박 행렬인 외화의 경우, 수입가는 1950년대 말부터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극장이나 수입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반(反)정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극장 복권은 그러니까 세금포탈 혐의가 다분한 극장을 찍어내기 위한 현상금인 셈이었다. 극장의 꼼수 앞에서 어쩌지 못하자 정부는 관객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복권이라는 유인책을 쓴 셈인데 과연 의도만큼의 결과가 나왔을까. 1966년 <신아일보>의 보도는 극장 복권이 유명무실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시 기사는 지난 5년 동안 극장을 찾아간 6억명의 극장 관객 중 단 한 사람의 1등 당첨자도 돈을 찾아간 이가 없었다면서 어떤 관객이 0.03%이라는 쥐꼬리 당첨금과 당첨률을 기대하고 입장권 쪽지를 한달 동안 보관하겠느냐고 꼬집었다. 미지급된 당첨금이 이월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과연 1등 당첨자가 있기나 한 건지. 관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색만 내놓고 공무원 나리님들이 ‘인 마이 포켓’한 건 아닌지 복권 추첨 방식 등에 대한 의문은 매번 제기됐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단 한번도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미 이때부터서 구린 돈을 종잣돈 삼아 부패공화국을 일구려는 워밍업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여간 탈세를 둘러싼 정부와 극장의 ‘톰과 제리’ 쇼는 1990년대까지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려졌는데, 그때마다 관객은 애꿎은 볼모였고 괜한 들러리였다.

덧말. 그런데 말이지, 벌떡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요즘 같은 흉작기에 극장 복권을 부활하면 어떨까. 괜한 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