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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번역가 정영목

“세상 모든 일이 번역인지도 모르죠”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는 7과 1/2층에 자리잡은 사무실이 등장한다. 천장이 유독 낮은 이 방은 알고 보면, 타인의 몸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비밀 통로다. 번역가의 작업실을 상상하는데 퍼뜩 그 괴상한 방이 떠올랐다. 출판 번역가의 작업실이란 말하자면 독자의 방과 저자의 서재 사이 층계참에 포복한 셈이어서,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일쑤다. 역자의 작업은 저자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본 것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번역가 정영목의 작업실은 일산이다. 보통 회사원들이 직장에 도착할 즈음 집을 나서는 그는 15분을 걸어 친구의 연구소 한쪽에 자리잡은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커피와 인내심이 식지 않도록 주의하며 영어로 쓰인 책을 한줄 한줄 모국어로 옮긴다. 1991년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으로 출판 번역가로 입문한 그가 옮긴 책은 줄잡아 100여권. <의뢰인> <펠리칸 브리프> 등 존 그리샴의 스릴러가 초창기 그의 작업이고 알랭 드 보통의 저서 중 다수가 정영목의 손을 거쳤다. 노벨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연작은 적당한 포르투갈어 역자를 만나지 못해 그가 중역한 경우다. 화제작 <로드> <서재 결혼시키기> <책도둑>이 그의 번역으로 소개됐고 비소설로는 모차르트, 붓다, 간디, 융의 전기와 <지젝이 만난 레닌>, 조지프 캠벨의 <신의 가면III-서양신화> 등이 있으니, 웬만한 애서가라면 책꽂이에서 정영목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터다.

기나긴 임종의 기록에 가까운 암담한 내용에도 국내에서 16만부 가까이 팔린 소설 <로드>의 역자 후기에서 정영목은 스스로를 “친절하지 않은 번역자”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에 거는 편집자들의 신뢰는, 번역에는‘친절’보다 중한 미덕이 있음을 방증한다. 정영목과 세권의 책을 낸 <문학동네> 이현자 팀장은, 문학성이 깊고 번역이 까다로운 소설의 최고 적임자로 그를 꼽으며 “그저 한 문장을 잘 옮기는 것과 작품 전체의 온전한 이해가 뒷받침된 균형 잡힌 번역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도서출판 강 대표인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로알드 달의 단편집 <>을 정영목의 새로운 번역으로 읽었던 소감을 “이야기만 같을 뿐 구간(舊刊)과 완전히 다른 소설이었다. 번역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번역가의 대학 동아리 후배이기도 한 정홍수 평론가에 따르면 청년 정영목은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정리해주는 조용하고 현명한 형이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 그의 자취방을 찾아갔다가 책상 왼쪽에 원서, 오른쪽에 원고지를 두고 곧바로 펜을 달리는 광경에 감탄했던 일도 정 대표가 전하는 추억이다.

하지만 지인과 동료들이 말하는 성취를 본인의 목소리로 듣는 일은 불가능하다. 정영목은 밥벌이를 위해 번역을 했고 본인의 노동이 성실하기만 희망할 뿐이라고 반복한다. 옮긴이에게 주어지는 한뼘의 공간인 역자후기에서 그의 글이 고집하는 자세도 극도의 겸양이다. 부커상 수상작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The Sea) 후기는 “부커상이 영국에서 유명하고 중요한 문학상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지만”이라고 말문을 연다. 그리샴의 소설에 견해를 보탤 때는 “저자가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번역자도 편승한 우스운 꼴이지만”이라고 유보조항부터 단다. 그런 그가 챙기는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지금 여기서’이 책을 읽는 이유와 의미다. 영국과 러시아 제국주의가 중앙아시아에서 벌인 쟁투를 그린 <그레이트 게임>에서, 독자들이 영국인 저자를 과도하게 동일시할까봐 조심스레 경계한 후기는 좋은 예다.

번역은 독해보다 천만배 무겁다. 외국어로 의미를 어림잡는 행위와 그것을 모국어 문장으로 확정하는 결단 사이에는 통과해야 할 엄격한 법정이 존재한다. 번역가 발레리 라르보는 훌륭하게 정리했다. “번역은 삶과의 끊임없는 친밀한 접촉이다. 독서라면 그 삶을 흡수하여 소화하는 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번역이라는 것은 그 삶을 밖으로 잡아 끌어내 세포 하나하나마다 새로운 몸뚱이가 솟아오를 때까지 자기가 꽉 붙들고 있는 것이다.”(<번역사 산책> 쓰지 유미 저, 이희재 옮김, 궁리 펴냄) 세상이 번역을 ‘먹물의 막장’이라 불러도 “그럴지도 모르지” 주억거리며 묵묵히 일해온 사람, 인터뷰 내내 번역 예찬이라고는 “어찌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번역인지도 모르죠”라는 단 한마디가 전부였던 사람과 헤어지며 나는 그가 번역가의 묵직한 의자에 무척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태원에서 성장기를 보내셨다고요. 언뜻 듣기엔 번역가에게 어울리는 고향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는데요. (웃음) =지금의 이태원은 몰라도 제가 어려서 살던 해방촌은 그렇지 않았어요. 기지촌이라 미국인들을 더러 보긴 하지만 접촉은 없고 그렇다고 “기브 미 쪼꼬렛”할 시대는 지났고.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이 많고 부대 정문 앞에서 아가씨들이 미군 병사를 기다리는 부박한 곳이었죠.

-번역이라는 작업에는 원전의 뒤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내성적인 일면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책상에 홀로 앉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일의 성격과 본인의 기질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느끼세요? =지금까지 해왔다는 건 제가 뭐라 생각하든 성격과 맞는 것 아닐까요? 설령 맞지 않았어도 맞추었다는 뜻이고요. 굳이 조직생활을 기피했거나 중뿔나서 회사를 못 다니겠다고 뛰쳐나온 경우는 아니에요. 졸업 직후 문예진흥원에 들어가 1년 남짓 다녔죠. 문예지 원고료 지원 업무였는데 조사하고 접수하고 영수증 챙기는 일을 했어요.

-‘문예’라는 단어가 포함된 것이 선택에 영향을 줬나요? =(잠시 생각한다)저희 세대의 진로 고민은 지금 세대와 달랐을 거예요. 제 경우에는 직장을 선택할 때 우선 고려한 것이 최소한의 시간만 일을 하고 칼퇴근을 해서 나머지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가였어요.

-느낌에 그 ‘다른 일’이 취미는 아닌 것 같은데요. 80년에 대학(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하셨는데 혹시 정치적인 이유로 도망 다니는 처지의 친구를 도우셨다거나…. =그맘때야 친구 절반은 도망 다니고 있었죠. (웃음)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따로 있었다고만 말하죠. 그러다 영문학과 대학원 간다는 핑계로 직장을 나왔어요. 그 대학원은 몇년 전에야 겨우 졸업했지만. (웃음) 직장을 나온 뒤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학원 강의와 과외, 번역 같은 일을 했지요. 하지만 가르치러 왔다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일이 싫어져서 과외는 그만두고 수입은 시원치 않지만 번역만 하게 됐어요. 번역은 1991년부터 시작했는데 ‘부업의식’의 여파는 꽤 오래갔어요.

-남들 눈에는 영문과와 대학원을 차근차근 나와 번역가가 된 직선코스인데 내막은 그렇지 않군요. 번역이 생업이라는 자의식은 대략 언제 때쯤에 왔나요? =아마 <마르크스 평전>을 옮긴 즈음(2001)이었나봐요. 중요하다고 여겼던 일이 끝나고 계속 흔들리는 상태에서 내 일이 뭔지 정신 차리고 생각해봤어요. 그 나이에 고시를 보는 친구, 유학을 떠나는 친구도 있었는데, 저는 사람이 못나서 하던 일을 관성적으로 하게 된 거죠. 그즈음 번역할 책을 제가 고를 수 있는 위치도 됐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번역가란 이방의 언어와 문화에 반한 사람들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요. =상상하셨던 번역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제 아래 세대를 만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나 제 윗세대가 외국문화에 대한 매혹을 번역가가 된 동기로 꼽는다면 전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것 같아요. 저희 세대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게 과연 정당하냐고 의문을 제기한 세대거든요. 영문과더러 제국주의학과라는 농담도 오가는 상황에서는 서구 문화에 대한 매혹이 있다 해도 뒤틀려서 표현됐겠죠.

부업의식을 떨치기까지의 긴 시간

-<매일경제>와 인터뷰하시면서 경제학이나 법학이 아닌 영문학과를 선택한 이유를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답하셨던데요. 거꾸로 법학이나 경제학을 할 경우 예상한 결과는 뭔가요? =어린 나이에 법이 무엇인지 알기나 했겠습니까? 법학이나 경제학이 싫었다기보다 그 전공은 부모님이 내게 바라는 바의 상징이었죠. 반발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집안 어른들이 기대하는 삶을 도저히 살 수 없을 듯한 예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인문대를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정 그러면 영문과를 가라고 하셨어요. 일종의 타협점이었던 것이죠.

-학창 시절 독서를 많이 한 편입니까? =많이 읽은 친구들에 비하면 턱도 없죠. 즐겨 읽긴 했는데 어머니가 학업과 무관한 책 보는 걸 말리셨어요. 그래서 대학 가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다림이 컸죠. 그런데 80년 3월에 입학을 해보니 공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본래 늦되는 편이라 학생운동에 동참하는 데에 갈등이 있어요. 공부 좀 해보려고 했는데 방해받는 게 싫었고, 고교 시절 교련 과목이 싫었듯 대열에 서기 싫은 저항감이 있었죠. 그러다 81년에 경제학과 4학년생이 도서관에서 투신했어요. 공부만 하던 선배였다고 했어요. 이게 뭔가, 큰 충격을 받았어요. 판단과 행동을 가속한 사건이었죠.

-말씀을 듣다보니 한 시절을 박탈당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저는 절대 박탈당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누가 강요했던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을 했기에 즐거웠어요. ‘화양연화’라 불러도 좋을 만큼 행복했다고 생각해요.

-그 시절에도 외국어 사회과학 원전에 대한 갈증이 있었을 법합니다. =일본어는 선배들에게 남들은 사흘 배우면 읽는다고 구박 받으며 한자로 대충 때려잡는 법을 배웠어요. <자본론>을 그때 영문판으로 구해서 봤어요. 셰익스피어보다 사회과학서적을 먼저 본 경우죠. <성문종합영어> 다음의 제 영어교과서는 그쪽으로 넘어간 것 같네요. (웃음)

-1991년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으로 처음 출판 번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번역자들의 상황이 기억나세요? ‘번역계’라는 것이 있었는지 세대구분은 있었는지. =안정효, 이윤기 선생님 외에 특별히 번역가가 언급되는 일은 없었어요. 번역으로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번역만 해서 먹고살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나요? (웃음) 단, 소설을 쓰려고 하거나 다른 일을 도모하는 중간 단계에 번역을 하는 전통은 길었죠. 합리화지만, 제가 말씀드린 부업의식이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죠. 한 사람이 매달려 할 정상적인 직업으로 번역을 나도 남도 인정하지 않은 긴 세월이 있었던 거죠.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안정효, 이윤기 선생님이 중요한 역할을 하셨고 또 IMF 이후 번역을 지망하는 분들이 급속히 늘어났어요. 실직자가 많아지니 번역은 좌우지간 혼자 먹고살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출발부터 번역을 업으로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죠. 새로운 세대를 보면 내게는 애초에 없는 자세가 있구나 생각합니다. 제게 번역은 첫사랑 같은 느낌이 전혀 없고 어쩌다보니 같이 살고 있는 상대에 가까우니까요. (웃음)

-번역 작업의 일반적 순서가 궁금합니다. 일단 책을 통독하고 일을 맡을지 결정하시겠죠? =과거에는 책을 선정하는 일도 맡는 번역자가 더러 있었고 지금도 기획을 겸하는 훌륭한 번역가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요즘은 주로 출판사가 에이전시를 통해 책을 선정합니다. 책을 받으면 빠르게 읽으면서 할 만한지 살피고 답을 드립니다. 그리고 번역을 시작하죠. 전 둔한 편이라 읽어서는 감이 안 오고 손으로 옮겨봐야 알겠더라고요. 보통은 절반가량 진도가 나가면 궤도에 오릅니다.

-궤도에 오른다 하면? =배우로 치면 대사가 입에 붙는 거죠. 저자의 문체가 내 몸에 붙어 대충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이 오죠. 처음에는 불분명했던 대목이 뒤쪽을 마저 읽으면서 비로소 이해되는 경우도 많아요. 아, 이 사람은 말을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구나 깨닫는 거죠. 그렇게 한 차례 번역하고 처음부터 다시 보며 습득한 스타일대로 다듬어요. 그러니까 앞쪽 절반을 퇴고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제 경우는 초고 만드는 시간과 다듬는 시간이 얼추 비슷해요. 이렇게 다듬어 보낸 다음 나중에 역자교정을 편집자와 의견을 나누면서 보고 옮긴이의 글을 마지막으로 씁니다. 동시에 두권 정도 진행해요. 종일 같은 책만 붙들고 있으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말귀를 알아듣는’ 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워

-번역을 논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외국어도 잘 알아야 하지만 모국어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던데요. =소설은 번역의 결과 자체가 소설로서 읽혀야 하죠. 그런 의미에선 모국어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맞는 말인데, 문제는 그 능력이 어디서 오냐는 거죠. 예를 들어 글솜씨가 있으면 되느냐, 문장구조가 정확하고 비문만 없으면 되느냐. 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우리말을 구사하는 법은 국어실력뿐 아니라 번역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거든요. 번역자는 저자의 스타일을 향해 가려고 애쓰는 것이기에 문제는 내가 우리말을 잘 쓰느냐보다 저자의 문체를 우리말로 잘 옮겼느냐입니다.

-번역이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이란 전제를 인정하고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극단적 예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서문을 보면 14세기 말 독일의 한 수도사에 의해 라틴어로 쓰인 작품의 17세기 라틴어판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이탈리아어로 옮겼노라 써 있잖아요. (웃음) 이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할 때는 어떤 문체가 합당한 것인지 굉장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잖아요? =불가능이라… 원작과 번역은 다른 거죠.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악몽이 되는 것이고요. 말장난이나 운을 갖고 벌이는 유희를 그대로 번역하기는 힘들어요. 나아가 오리지널 텍스트가 뭐냐는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걸작이 있을 때 작품의 의미가 고정돼 있다면 많은 학자들이 논의할 필요도 없겠죠.

-문외한 입장에서도 번역은 딜레마 덩어리로 보여요. 단어를 정확히 옮기는 게 옳으냐 아니면 사상을 옮기는 게 옳으냐, 운문을 운문으로만 옮겨야 하느냐 산문으로 옮겨야 하느냐, 독자와 동시대 문체로 써야 하느냐, 원전과 동시대의 책으로 읽혀야 하느냐 등등. 매번 작업할 때마다 그런 문제를 고민하시나요?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로 풀면 얘기가 복잡해집니다. 번역자의 선택이 가능한지도 별개 문제입니다. 제가 “자, 오늘부터는 의역을 해볼까?” 하고 의역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좌중 웃음) 광고라면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지만 문학 텍스트는 오역이 아닌 이상 번역자의 기질과 성향,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 결정적인 것 같아요. 제 경우 굳이 어느 쪽이냐를 묻는다면 직역쪽에 가깝죠. 독자의 편의를 염려하는 것은 편집자 소관이고 역자는 저자가 어떻게 말한 것인지를 충실히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죠.

-근본적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기술이 필요하겠군요. =그렇죠. 번역에서는 말귀를 알아듣는 게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저자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 깊어야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맥락을 잡을 수 있지 않겠어요? 이른바 ‘초를 치는’번역은 싫어해요. 번역은 설명이 아니잖아요? 원문 풀어쓰기(paraphrasing)도 아니고요.

‘번역투’가 나쁘다는데 장말 나쁜가?

-번역문이 술술 읽혀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반대쪽에는 번역문은 원문쪽으로 끌어당겨서 쓴 이질성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던데요. =저보고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번역스러운 번역쪽을 택하겠죠. ‘번역투’가 나쁘다는 것이 통념인데, 왜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거든요. 번역인데 번역투가 아니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요? 가만보면 몇몇 분열적인 직종이 있어요. 번역은 번역이 아닌 것처럼 보여야 칭찬받고 연기는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여야 호평받고. 정신건강에도 안 좋은 겁니다. (좌중 웃음) 옛날엔 실물과 똑같다는 것이 그림에 대한 칭찬이었지만 달라졌잖아요. 저는 번역의 매끄러움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번역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사실 주된 비난의 대상은 한글 문장을 번역투로 쓰는 경우죠. 번역서가 악영향을 끼쳤다고 원흉으로 지목받기도 하지만요. 우리가 읽는 책의 절반 이상이 번역서라면 자연스런 사태이기도 하겠죠. =번역의 영향이 없진 않죠. 하지만 A라는 저자의 목소리는 영어로 읽어도 독특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작가란 모름지기 그런 독특한 목소리가 없으면 작가가 아니잖아요? 비문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고 저자의 문투를 무화하는 방향은 제 방침이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보존하느냐를 고민하는 쪽이죠. 물론 번역자 중에는 (글이) 이런 꼴은 못 본다고 생각해 다듬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입장의 차이죠.

-서평이나 신문의 책 기사에서 번역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거칠다고 지적하느라 언급하는 예가 많지만 매끄럽다는 칭찬도 있죠. 기자가 원서도 읽었을 가능성은 희박한데 무엇을 기준으로 좋은 번역이라고 하는지 여러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일단 대부분 원문과 대조없이 평한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죠. 기사에서 번역을 논하는 의도는 사실 본격적으로 번역을 평가한다기보다 이 책은 기본이 안돼 있다는 평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방법 아닐까요?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거니까. 축구 경기를 보면서 기본기가 안돼 있다고 해설하듯이 말이죠.

-번역자로서 마지막 방법이 영어 원문을 그대로 쓰고 주석을 다는 것일 텐데요. 역주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주석을 싫어하는 건 편집자들이죠. 책이 어려워 보인다고 학술서도 아닌데 그래야 하냐고 묻기도 하는데, 전 번역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봐요. 영어의 말장난도 어떤 역자들은 비슷한 우리말 농담으로 치환도 하지만 일단 전 그런 재주가 없고요.

-왜요. <책도둑>에서 “A로 시작하는 말”을 “ㅅ이나 ㅆ으로 시작되는 말”로 옮기셨잖아요? (웃음)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옮길 때, 제복이라 치고 입었는데 결과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표현을 “제각각복을 입었다”라고 옮겼어요. 그때는 뭐 약간 제 상태가 좋아서 해본 건데(웃음), 만약 그런 농담이 자주 나왔다면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렇게 옮기지 않았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재치가 없어요.

<로드> 성공, 한국 독자의 수용력에 놀라

-의뢰를 많이 받는 번역가이십니다. 수락 여부를 좌우하는 조건이 뭔가요? =처음 읽었을 때 독자 입장에서 제가 느끼는 호감이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소설이나 인문사회과학서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요. 무엇이건 제가 어느 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책이길 바라죠. 그런 동기가 없으면 몇달의 작업을 어찌 견디겠습니까? 좀 이해해주세요. (웃음)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낸 <미메시스>라는 번역 무크지가 있었습니다. 99년에 “올해의 좋은 번역서 가운데 선생님이 옮긴 <신의 가면III: 서양신화>가 있던데요. 개인적으로 성취감을 크게 느끼는 번역서는 무엇입니까? =번역의 완성도에 대한 만족과 성취감이 일치하진 않아요. 일단 <마르크스 평전>이 떠오르네요. <지젝이 만난 레닌>도 작업은 힘들었지만 보람있었어요. 존 스타인벡의 <통조림공장이 있는 골목>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죠. 마치 어려서 읽은 한국의 민중소설, 그것도 아주 잘 쓴 작품을 보는 것 같았어요. 현실을 끌어안는 품이 푸근한데 그 위에 예술적 깊이와 온기도 대단해서 각별했습니다.

-제약 조건 없이 선택할 수 있다면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호치민, 레닌, 마르크스, 마오쩌둥 평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마오쩌둥은 좀 생각이 달라졌지만 이 나이에도 설레는 남은 로망으로는 프로이트가 있었는데 그의 평전 번역에 곧 착수할 것 같습니다. 피터 게이가 썼으니 책은 좋을 것 같습니다. 한때 베토벤 평전을 옮기고 싶어 안달을 하고 출판사 사장님을 설득하느라 공을 들였는데 막상 설득에 성공하고 나니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계약을 했더군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가 전기를 해보고 싶은데 기회가 많이 돌아오지 않네요.

-주로 인물에 관한 책이군요. =중요한 인물의 저작을 옮기기엔 제 능력이 미흡한 것 같고, 평전이 제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난이도로 치면 소설이 최고죠. 어찌보면 인문사회과학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데 소설 번역은 결과 자체가 완성품이 돼야 하니까요. 예컨대 <지젝이 만난 레닌>의 경우 쉽지 않은 번역이었지만 지젝은 기본적으로 독자에게 말을 하려는 사람이거든요. 반면 소설 <로드>의 작가 코맥 매카시는 꼭 말을 하고 싶어 한다고 보기 힘든 면이 있어요. 독자가 알아듣는지 여부에 딱히 관심이 없달까. “잘 모르겠냐? 어쩔 수 없지”라는 식이죠. 내게 설명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옮기는 일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일을 애써 알아듣고 번역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죠.

-<로드>는 암울하고 무거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16만부가량 판매됐다고 들었어요. 올해의 작은 사건이랄까. =저도 의외였어요. 정보가 없는 상태로 번역하겠냐는 제의를 받았는데 간결함이 주는 매력과 알 수 없는 힘에 끌렸어요. 이게 뭘까, 더 알고 싶었어요. 책이 성공한 뒤 제 친구가 내린 해석을 옮기면 <로드>는 누구나 대입하기 쉬운 절망을 그렸기 때문에 잘된 거라더군요. 우리 독자들의 좋은 책에 대한 수용력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저 같은 사람에겐 큰 힘이 되죠. 일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이 신장되고 자유가 커지니까요. 사실 <로드>를 통해 얻은 가장 큰 대가는 그거예요.

-번역하는 과정에서 사전에서 꼭 맞는 단어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나요? =번역을 배우는 학생들 말이 사전에 나온 1번의 뜻으로 번역하면 안된대요. 실력이 없어 보이니까. (웃음) 그렇지만 저는 1번이 제일 중요한 뜻인데 그걸 피해가면 어떻하냐고 하죠. 단어의 의미는 문맥이 규정하죠. 사전에 나온 풀이가 문맥에 들어맞지 않으면 그때부터 고민에 들어가는 거죠. 사실 작가가 일일이 사전을 들춰보며 원문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 사전이 몇권이라도 소용없는 부분이 있어요.

영화자막 번역은 악몽이더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보니 편집위원들이 문학의 고전은 세대마다 새로 번역돼야 한다고 표명하셨어요. 번역은 원작보다 수명이 짧다는 것이 상식인데요. =그 문제도 단순하지 않아요. 그분들은 그렇게 선언했지만, 원작은 가만히 있는데 번역은 왜 시대마다 새롭게 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간단한 건 아니죠.

-번역문에 쓴 단어가 예스러워져서 동시대 독자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있겠죠? =저는 현재 흔히 쓰지 않는 단어도 뜻과 느낌이 맞다면 쓸 수 있다고 보는 쪽이죠. 쓰지 말아야 할 유일한 이유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인데, 독자들은 사전을 찾아보면 안되나요? 어휘 선택도 일종의 검열이라고 생각해요.

-불필요한 외래어를 쓰지 말자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원문이 젠체하며 외래어를 쓰는 문체라면 번역도 그래야겠죠. 실제로 출판 관행이 저자들의 문장은 토씨 하나 고쳐도 난리가 나니 조심스럽게 다루는데 번역문은 편집자가 윤문하기도 해요. 저로서 기분 좋은 변화가 있다면 과거에는 당의를 입힌 매끈한 번역이 선호됐지만, 지금은 원작의 문체를 어떻게 정확히 드러내느냐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이에요. <로드>도 그런 불친절한 문체를 살려서 출간하기 쉽지 않죠.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한 문단이 몇쪽에 이르는- 역시 독특한 문체를 출판사에서 받아들여줬고요. <책도둑>도 흔치 않은 구성과 문체라 초반 진입을 못한 독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번역이 뭐 이래?”거든요. 그래서 편집자에게 고마워요. 좋은 편집자와의 만남이 번역가에겐 중요합니다.

-본인이 번역한 책 중에 개정해서 번역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눈을 크게 뜨며) 다죠, 다. 저한테 한정없이 잡고 있으라면 한책을 갖고 끝도 없이 고칠걸요? 오역은 당연히 바로잡지만 그래서 역자교정 이후에는 일부러 책을 안 보려고 해요. 그걸 어떻게…. 가끔 제 번역을 인용한 글을 읽으면 낯 뜨거워 못 읽겠어요.

-영화를 볼 때도 자막 번역에 대해 민감하십니까? =미디어 번역을 전공하는 친구들 말을 들으니 가로 번역은 몇자 이내, 세로 번역은 몇자 이내로 해야 하다보니 원뜻과 무관한 번역을 하는 분도 있대요. 물론 그분의 스타일이겠지만. 저는 영화를 잘 모르지만 어떤 영화는 언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디 앨런 영화자막을 만드는데 잣수 제한이 있다면 몹시 괴로울 거예요. 그분 영화야 스펙터클이 있길 하나 그야말로 말 갖고 하는 건데 대사를 잃으면 영화의 큰 부분을 잃는 셈이잖아요. 그걸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웃음) 딱 한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책을 번역하면서 한꺼번에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의 자막을 번역했는데 악몽이었어요. 자막 번역의 고충을 알았죠.

음식과 옷 묘사하기 가장 힘들어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관념적인 명제보다 시시콜콜한 묘사가 옮기기 더 어렵지 않나요? 역서 중 책장의 역사를 다룬 <서가에 꽂힌 책>을 읽었는데, 중세의 사슬 달린 책장의 생김새를 설명하는 문장들을 읽으며 옮기는 이가 괴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묘사의 번역이 의외로 굉장히 힘들어요. 일단 이미지를 제 머릿속에 확실히 잡아야 우리말로 옮길 수 있고, 동시에 문체도 살려야 하거든요. 제일 싫어하는 내용이 음식과 옷이에요. 먹어보거나 눈으로 봤어야죠. 특히 여자 옷은. 번역뿐 아니라 작가들도 묘사력을 보면 재능을 가늠할 수 있어요. 묘사를 못하는 사람은 영어 자체가 꼬여서 이미지를 설득 못하거든요. 주장하는 문장이 훨씬 쉽죠.

-한 문화권에는 존재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등가물을 찾을 수 없는 단어가 맞을 텐데요. 관직명도 그렇고요. =<번역어 성립 사정>이라는 일본에서 나온 책이 있어요. 민주주의, 연애 등 10개의 단어를 갖고 처음에 서양어로부터 어떻게 일본어로 번역됐느냐를 따진 책이죠. 예를 들어 경제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해서 쓰게 됐는지 알 수 있죠.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쓴 라틴어가 영어로 흘러드는 과정에 관한 책도 있어서 한때 이 두권의 책을 엮어 번역해볼까 하는 구상도 있었어요. 일본 책이 먼저 나와서 무산됐지만.

-선생님이 두권 이상 번역한 책의 작가들을 살펴보면 존 그리샴, 알랭 드 보통, 주제 사라마구, 타리크 알리 등이 있는데요. 어떤 작가들이라고 생각하세요. =존 그리샴은 정의감이 중요한 장점이죠. 그 정의감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다른 문제지만요. 주제 사라마구는 노동자 출신다운 강단과 세상을 보는 각도가 있는데, 낯선 그의 스타일이 실은 구술문화에서 온 것이라고 해요. 타리크 알리는 훌륭한 저널리스트이고 이슬람 문화에 대한 애정은 깊지만 의욕만큼 성취한 작가는 아직 아닌 듯합니다. 알랭 드 보통은 글쓰려는 주제 안으로 독자를 포섭하는 능력이 있죠. 무거운 책과 가벼운 책을 번갈아 내는 느낌입니다. 신경질적인 면도 있지만 무게도 실을 줄 아는 저자입니다. 제가 번역한 책 중에서는 <불안>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현재 <>(Work)이라는 책을 쓰고 있대요.

-다양한 작가의 책을 작업했는데 옮긴이가 같아 나타나는 문체의 일관성이 전혀 없을까요? =누군가 그런 말을 제게 해준다면 최악의 평가일 겁니다. 피아니스트에게 베토벤과 쇼팽을 똑같이 연주했다는 말과 같은 거니까. 물론 불가피한 공통점이 있고 저의 무엇이 저자와 변증법적으로 작용해서 번역이 나오는 것이겠지만요. 훌륭한 배우의 경우 어떤 역을 연기했을 때 “이게 그 사람이었어?” 하고 놀랄 때가 있잖아요?

-배우의 경우 육체성을 떼놓을 수 없으니 약간 다르겠죠. 가끔은 독자로서 동의하기 힘든 내용을 번역하기도 할 텐데요. =제 의견을 피력하는 자리는 아니니까요. 최근 나온 <그레이트 게임>이 그런 예인데, 저자 피터 홉커크가 영국인의 시선으로 아프가니스탄인을 폭도로 간주한다거나 하는 대목이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한국의 독자들이 ‘폭도’라는 말의 다양한 함의를 이미 역사적으로 경험해서 아니까 굳이 각주를 달지 않고 역자후기에만 언급했습니다.

번역은 사고의 문제, 인간의 문제

-선생님은 유학도 간 적이 없고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시지도 않는데요. 영어를 잘하기 위해 온갖 투자와 노력을 하는 젊은이들이 보면 비결을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언어에는 끈적한 속성이 있고 해당 사회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터득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어요. 그러나 영어든 한국어든 어떤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일정한 선을 넘으면 모두 사고의 문제,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귀를 잘 알아듣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면 영어를 잘하는 것과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같은 의미일 수 있죠. 그리고 영어를 잘하는 건 좋은데 그걸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요. 물건을 사고팔려는 건지, 철학을 하려는 건지, 연애를 하려는 건지. 그런 요소가 있으니 제가 번역을 하고 있겠죠? 외국 거주 경험이 없고 이중언어 사용자가 아니면 번역을 못한다면 저 같은 사람은 낄 자리가 없겠죠.

-자동 번역기계가 등장했을 때는 감회가 어떠셨나요? =서류 양식의 번역이라면 모르지만 소설의 번역은 ‘사람의 일’이란 생각을 해요. 배우처럼 불가분의 육체성이 번역에 붙어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를 교환하고 이해하는 영역에서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 게재되거든요. 아닌 척하고 싶지만 투명한 체하고 싶지만 번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번역자의 무엇인가가 책 속에 남을 겁니다.

-<지젝, 레닌을 만나다>의 후기에 번역 준비과정에서 과거에 나온 책들을 보면서 20여년 전 금서를 타자기로 번역했던 익명, 가명의 번역자들에게 감탄했다고 쓰셨던데요. =과거의 책들을 찾아본 까닭은 일단 틀리고 싶지 않았고, 앞서 옮긴 이들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작업한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번역이 좋아서 감탄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도록 만든 원동력에 눈길이 갔어요. 저야 먹고살려고 번역한 거지만 그들에게 번역은 틀려서는 안되는 절박한 문제였던 거죠. 오류 여부를 떠나 본인의 번역이 당시 논쟁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행동을 결정하는 큰 변수가 된다는 데서 나오는 서늘한 기(氣)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때 그 사람들만이 소유한 기운이었고 지금의 저한테는 없는 부분이라 부럽기도 하고 그립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번역이란 지금 말씀하신 정치적 절박함이건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건 문학에 대한 동경이건 아마추어적 열정이 중대한 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번역을 비전문적 영역으로 여긴다는 뜻은 아니고요. =패러독스인데, 20년 전 레닌을 번역한 사람들은 당연히 아마추어였을 텐데 그들만큼 프로가 되겠다고 의식한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레닌 이론의 핵심이 직업혁명가론이잖아요. (웃음) 아마 새로운 세대들은 아마추어적 정열을 바탕으로 프로페셔널 번역가가 되겠죠?

-혹시 반대 방향의 번역, 한글을 영문으로 옮기는 작업에는 관심이 없으십니까? =여러 설이 있지만 모국어가 도착어(번역문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번역이 아트(art, 예술)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래프트(craft, 장인의 기술)는 되는 것 같아요. 즉 결과로 나오는 언어를 세공해야 한다는 뜻인데, 세공은 모국어가 아니면 힘들 것 같아요.

追伸: 나이와 함께 체력이 쇠하고 집중의 지속이 짧아졌다고 정영목은 말했다. 이어“그래서 저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책이 점점 더 필요해집니다”라고 덧붙였다. 거꾸로 젊은 번역자들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덤벼들어야 할 책이 있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느슨해지려는 몸과 마음의 탄력을 추슬러주는 정영목의 도락은 등산과 클래식 공연 관람. 얼마 전에는 그가 사는 도시의 음악당에서 최다 관람 관객 2위로 뽑혀 부상을 받기도 했다고. 표값이 아닌 방문횟수를 합산한 덕분일 거라면서도 흐뭇한 기색이 비친다. 번역자의 가슴에는 원작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누락시켰던 말의 부스러기가 쌓일 테지만, 연주자는 공연으로 작품을 끝없이 재해석할 수 있다. 연주자와 연주를 향한 그의 사랑에는 혹시 그런 특권을 향한 천진한 동경이 포함돼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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