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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 뭔 말을 하냐고? 재밌잖아!
정재혁 사진 이혜정 2008-12-09

서울독립영화제2008 무대 오르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

장기하를 아는가. 미미시스터즈라 불리는 수상한 여인 둘과 함께 무대에 올라 팔을 흔들며 달이 차오른다고 읊조리는 남자. 젊은 송창식 같은데 훨씬 웃기다. 최근 최고의 화제를 낳으며 인기를 얻는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12월11일 개막하는 서울독립영화제2008 무대에 선다. 5월 싱글앨범 <<싸구려 커피>>를 발표했고, <EBS>의 헬로루키, 쌈지사운드페스티벌에서의 공연으로 단번에 인기 검색어 자리를 차지한 밴드다. 언니네 이발관, 불독맨션, 델리 스파이스, 크라잉넛 등 이전에도 대중적으로 주목받은 인디밴드들이 있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은 다르다. 포털 사이트 지식 검색 게시판엔 빅뱅과 이들의 음악성을 비교하는 글이 올라오고, 장기하가 제6의 동방신기 멤버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이들의 코믹하고 인상적인 공연 모습은 패러디를 통해 네티즌의 놀잇감으로 수차례 변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인디밴드로는 최초로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를 가진 주인공이다. 인디밴드의 활약과 네티즌의 놀이문화 사이 어딘가에 선 이들. 그 무리의 리더 장기하를 만났다.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의 공연과 <이하나의 페퍼민트> 방송 이후 급속도로 유명해졌다. 예상했나. =이런 식의 화제가 될 거란 생각은 없었다. 조금 알려지는 것보다야 많이 알려지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음반을 붕가붕가 레코드에서 소규모 수공업 방식으로 제작했다. 판매 사이트엔 자주 품절이라고 뜨더라. =CD를 손으로 만들다보니 한계가 있다. 초판 100장을 시작으로 처음엔 100장 단위로 만들다가 이제는 1천장 단위로 만들고 있다. 지금도 평소보다는 더 무리를 해서 만들고 있긴 한데 대량 제작이 아니다보니 입고일이 지나면 품절이 되곤 한다.

-얼마나 팔렸나. 예스24에선 동방신기, 빅뱅에 이어 판매순위 3위를 했다고 하던데. =지금도 3위 정도라고 알고 있다. (웃음) 한 5천장 정도 팔린 것 같다.

-또 다른 인디밴드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본인의 이름으로 밴드를 꾸리게 된 이유는 뭔가. =나의 자작곡을 이전 밴드에선 소화할 수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만들 때 가지고 있던 그림이 궁금하다. 미미시스터즈의 존재랄지.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노래들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공연할 때 그림을 걸어놓는달지 비주얼적인 면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으로 정면승부하거나 정석에 집착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이것저것 해본 거다. 미미시스터즈는 노래를 하나둘 만들면서 생각해낸 거다. <나를 받아줘>란 노래를 만들었는데 여성 코러스가 꼭 필요했다. 그런데 어차피 할 거라면 어느 정도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 안무가 나온 거다.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음악 외적인 요소를 보강하는 효과도 되었고.

-본인의 의상, 가령 하얀 셔츠 위에 빨간 코사지나 미미시스터즈의 의상은 누가 결정하나. =내 옷은 내가 고르는데 일단 다른 멤버들과 맞춰 입는다. 꼭 세련되고 좋은 걸 입을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신경 써 입고 나왔다는 느낌은 주고 싶다. 미미시스터즈의 경우 처음 컨셉을 떠올린 건 <나를 받아줘> 공연을 하면서다. 그 노래 가사에 상처받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자가 아주 크게 다쳐서 오히려 단단해진 이미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선글라스와 진한 빨간색의 립스틱 등을 떠올렸다. 요즘엔 이들의 스타일링을 해주는 분이 따로 있다.

-지금은 관객의 호응이 대단하지만 <공감>에서의 공연을 보니 손을 흔드는 퍼포먼스에 관객이 주저해하는 것 같더라. 생소한 저 공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한달까. =사실 지금도 <싸구려 커피>가 카페 같은 데서 흘러나오면 저게 뭐냐고 하는 분도 있다. 뭔 말을 하고 있어, 라면서. 하지만 내가 재밌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웃음) 내가 객석에 있다면 재밌을 것 같아 하는 거고 내가 우주에서 혼자 떨어진 사람은 아니니까 누군가 함께 재밌어해줄 거라 생각한다.

-노래 가사가 재밌기도 하지만 잘 들린다. 그게 너무 잘 들리니까 리듬, 멜로디 이상의 음악적인 요소로 느껴지더라. 특히 한국말의 억양을 잘 놀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가사를 먼저 쓰기도, 멜로디를 먼저 만들기도 하는데 어떤 방법을 택해도 멜로디에 말을 구겨넣거나 말에 멜로디를 마구 얹는 식으로 하진 않는다. 말 자체에도 강약이 있기 때문에 그 말들을 어디서 끊고 붙이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 같다. 가령 ‘따따따따’도 ‘따따 따따’가 되면 다르니까.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로 신중현, 배철수 등을 들더라. 82년생이 듣고 좋아하기엔 꽤 올드한 취향이다. =내가 70, 80년대 음악을 알게 된 건 100% 눈뜨고 코베인 멤버들 덕이다. 나에게 눈뜨고 코베인은 일종의 전환점, 분수령, 갈림길, 뭐 그런 존재다. 물론 그전에도 가요는 다 좋아했었다. 초등학생 땐 서태지빠였고, 현철, 김지애도 다 좋아했다. 그런데 신중현, 배철수는 아무래도 동시대 음악이 아니니까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눈뜨고 코베인을 시작할 때 내가 하도 음악을 모르니까 까막귀(눈뜨고 코베인의 리더)가 음악을 들려줬다. 눈뜨고 코베인은 산울림을 모범으로 삼았기 때문에 70, 80년대 한국 음악을 많이 듣게 됐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계속 듣다보니 참 좋더라.

-장기하와 얼굴들은 다른 인디밴드들이 주목받은 것과 달리 일종의 네티즌 놀이문화의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재밌는 것 같다. 나도 네티즌의 한 사람으로 재밌는 게 많으면 좋다. 나에게 욕을 하거나, 많이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재밌게 노는 거니까 나쁘지 않다고 본다. 물론 내 음악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직 비주얼, 합성만 하면 슬플 것 같다. 난 어쨌든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얼마 전에 한 선배가 네 노래가 좋지만 100% 노래만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하더라. 일종의 사회현상이란 것도 알아야 한다고.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요즘 우리 싸이클럽의 가입인사 보면 디시에서 재밌게 보고 왔는데 노래도 좋네요라는 글이 꽤 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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