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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몬트리올] 그 총기사건 어찌 잊으랴

필립은 회사 선배에게 총기사건을 직접 전해듣고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1989년 12월 몬트리올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끔찍한 총기 사건이 있었다. 스물다섯살의 청년이 총을 들고 교실로 들어가 남학생을 내보내고 여학생들만을 남긴 뒤 “너희들은 여자인데다가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니까 모두 페미니스트가 될 것”이라며 총을 쏴 6명의 사상자를 냈다. 범인은 교실을 나선 뒤 학교 곳곳에서 여자들만 보면 총을 난사해 모두 14명의 여성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이 사건은 지난 2월 퀘벡 출신 감독 데니스 벨레네브에 의해 영화화됐다. 바람이 유난히 심하게 불던 어느 날 <폴리테크닉>이 영어 버전으로 상영된 극장에서 나오던 필립과 마주쳤다.

-이 영화를 보러 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이 사건은 내가 사는 도시 몬트리올에서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다. 또한 ‘학교 총기사건’이라는 이슈가 일반화되기 전인 1989년에 일어난 일을 2009년에 영화로 보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덧붙이자면 얼마 전에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의 감독 데니스 벨레네브는 비슷한 주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갔을지가 궁금했다.

-두 영화를 비교해본다면 어떤가. =<엘리펀트>는 굉장히 섬세하고 미묘한 느낌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보다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한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폴리테크닉>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거의 다큐에 가까울 정도로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두 영화는 매우 다른 영화인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더 사실적으로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의미라면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가. =나는 엔지니어로 일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학교는 내가 지원했던 학교이다. 결국 다른 학교로 가기는 했지만. 또한 내 회사의 보스가 나온 학교이기도 하다. 그는 그 사건이 있었던 날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다. 영화에서처럼 총소리가 마구 났고 그것을 피해 도망가던 중 킬러가 여자들만 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직접 전해 들었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나로서는 이 영화가 또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다.

-구체적으로 영화의 어떤 점이 좋았나. =소재는 충격적이었지만 영상이 굉장히 아름답다. 어떤 장면은 시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아마 흑백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또한 이 흑백의 느낌은 사실에 대한 거리두기 효과도 있는 것 같다. 게다가 겨울에 촬영되어서 그런지 눈 내리는 장면이라든지 학교 바깥 풍경은 대체로 평화롭고 아름답다. 아이러니하다.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도 있었나. =영어로 만들어진 것이 조금 어색했다. 이 학교는 원래 불어 학교인데다가 배우들도 모두 퀘벡주의 불어 사용자들이다. 영어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어색하게 들렸으니까. 불어 버전으로 보거나 영어 자막이 있는 걸로 봤다면 더 진정성을 느꼈을 거다. 아. 그리고 영화의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전형적이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여성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감독이 관객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보였다. 이전까지의 파워풀한 감정이 조금 희석되는 느낌이랄까.

-영화에 나오는 범인의 묘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보기에 그는 가난하지도 않고 왕따도 아니고 일정한 교육도 받았다. 그냥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많은 무고한 여성들을 죽여야만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도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평소에 퀘벡영화를 즐겨보는 편인가. =나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좋은 영화들을 보는 것이 좋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나. =샘 멘데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봤다.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간의 연기 호흡이 매우 좋았다.

-한국영화는 본 게 좀 있는가. =있다! 2년 전 판타지아필름페스티벌에서 <디데이-어느날 갑자기 세 번째 이야기>를 봤다. 굉장히 무서워 하면서 본 기억이 난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