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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6집은 마지막 앨범이 될 것”
진행 김용언 정리 이주현최성열 2009-04-02

언니네 이발관 리더 이석원

지난해 여름 《가장 보통의 존재》가 발매되자마자 구입했다. 귀에 헤드폰을 처음 꽂았을 때, 그 느낌을 어떻게 말로 구체화할 수 있었을까. 절대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 들으면 안되는 앨범이라고 말하면 감이 잡힐까. 1번, 3번, 4번, 6번, 9번 트랙을 들을 때 눈물이 났다고 하면 어떨까.

언니네 이발관은 지난 3월12일 열렸던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상’과 ‘최우수 모던 록(노래)’, ‘최우수 모던 록(음반)’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가 2008년 한국 대중음악계의 최고의 결실이었다는 실질적이고 공식적인 인정이었던 셈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을 만나기로 한 날은 이상했다. 지난주까진 여름이었다가, 다시 초겨울로 돌아간 듯한 날씨였다. 4월이 코앞인데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뿌렸다. 오전부터 시작한 WBC 결승전은 한국의 석패로 끝났고, 덕분에 회사 업무는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치열한 연장전을 끝까지 보고서야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심판이 불공정했다고 분을 삭이질 못했다.

-오는 5월 전국 투어 콘서트를 끝으로 5집 활동을 마무리한다고 들었다. 이 시점에서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라면. =일단은 그냥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앨범일 수 있고, 두 번째로는 미완성작이다. 발매 때부터 최근까지도 수정반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듣는 분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예전의 그 어떤 앨범보다도 많이 수정했음에도 사소한 실수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들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잡고, 또 수록곡 열곡이 100%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순서를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중간에 새로운 곡이 들어갈 수도 있고. 그런 건 있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내가 뮤지션이라는 자각을 하고 만든 첫 번째 음반이라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순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만들었을 때의 감정이 많이 휘발된 상태기 때문에 새삼스레 돌아볼 게 별로 없다. 빨리 잊고 싶은 앨범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에서만 특별하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예전 앨범은 이렇게 부족함을 많이 느껴본 적이 없다. 5집이 발매되었을 때부터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이를테면 감정적인 측면이랄지 음악적인 야심이랄지 그런 개인적인 요소들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역작용일 수도 있을까. =배우가 어떤 배역에 심하게 몰입했다가 촬영이 끝났을 때, 거기서 못 빠져나오면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나. 나 역시 5집 발매 직후부터 감당이 안됐다. 그래서 앨범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도저히 인터뷰를 할 자신이 없어서 절대 안 한다고 했다가 나중엔 또 하겠다고 나섰다가, 계속 갈팡질팡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 앨범이었으니까. (웃음) 너무 심하게 개인적인 앨범이었기 때문에 무대에서 노래할 때도 힘들었다.

-5집이 나오기까지 4년이 걸렸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거라고 예상했나. =전혀 못 했다.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뭘까. =언제나 전에 해보지 않았던 걸 시도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아마 이번 5집으로도 “언니네 이발관 음악은 어떤 음악이다”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우리는 또 한번 6집에서 그런 틀을 깨려고 시도할 것이다. 5집 경우엔 4집이 굉장히 많이 가공된 앨범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가장 어쿠스틱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낼 수 있을까가 사운드적인 목표였다. 그리고 4집에선 가사를 일부러 관습적이고 통속적으로 썼는데, 5집에선 정반대의 지점에서 아주 특징적이고 개인적이고 내러티브가 확실한 가사를 써야 되겠다는 정도의 목표가 있었다.

-아까 잠깐 5집 수정본을 내고 싶다는 얘기도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건가. =아쉬움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사운드에는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 우리는 사운드의 완전한 마스터가 되고 싶었는데, 죽을 때까지 불가능한 부분일지 몰라도 사운드를 정말 내 몸처럼 요리하고 싶었다. 곡 자체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그냥 마스터가 되고 싶은 거다. 사운드의 마스터가 되고 싶고, 이야기의 마스터가 되고 싶고, 노래의 마스터, 기타의 마스터가 되고 싶다. 우리 같은 보통의 존재가 마스터가 되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5집 앨범 작업 초기의 고민과 작업이 마무리될 때의 고민의 지점이 많이 달랐나. =너무 많이 달랐다. 왜냐하면 이 앨범에 담긴 내용들이 어떤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된 건데, 그 사건은 작업 중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시간을 뒤로 돌려보자. 질문이 좀 길다. 언니네 이발관이 처음 등장했던 1996년은 정말 놀라운 해다. 사실 영화광들 사이에선 프랑수아 트뤼포의 그 말이 꽤 스트레스다.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은 첫째, 한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이고 둘째,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셋째,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에는 진입장벽이랄까, 두려움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런데 1996년 홍대쪽에선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크라잉 넛, 코코어 같은 밴드들이 한꺼번에 등장했고, 그 성취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군데 모였을 때 자연스럽게 너도나도 음악을 만들겠다고 시작하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이게 음악과 영화라는 매체의 차이인지, 당시 분위기가 특별했기 때문인지, 대체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90년대 중반에 그런 인디 문화이자 창작 문화가 동시에 붐업한 건 간단한 이유다. 커트 코베인 때문이 아닐까. 그 사람이 모든 걸 바꿔놨다고 본다. 이 발언은 되게 조심스럽다. 그러니까 커트 코베인이 “너도 음악 만들어봐, 음악 만드는 거 되게 쉬워”라고 유혹한 게 아니다. 어떤 계기를, 물꼬를 터줬다고 해야 하나. 재능이나 감각은 있었지만 쉽게 시작해볼 생각을 미처 못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냐면(웃음),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참 쉽게 이야기한다. 그전에는 특별한 재능과 자격이 있어야 음악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90년대 중반 이후로 아무나 음악하는 세상이 되었다라는 식의 일반화. 거기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90년대 중반 이전에 음악하던 사람 중에는 프로가 한명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다. 한국 그룹들은 왜 이렇게 창작곡을 못 쓰고 다 카피곡만 하지,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거다. 그들에겐 어떤 음악적 재능이나 자격이 없었고, 한국에만 존재하는 어떤 보호막 덕분에 특권을 누리다가 그게 너바나라는 밴드에 의해 다 깨졌고, 정말 재능있는 친구들이 그제야 음악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996년 언니네 이발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처음 접했을 때 상당히 충격받았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음악이었으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1집에 대해 ‘풋풋한 아마추어리즘’이라는 평가를 내릴 땐 동의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가능한 한 꽉꽉 구겨넣은 욕심 많은 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집을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잘 안 돌이켜진다. 너무 오래전이다. 한 가지 생각나는 건 1집과 2집은 굉장히 자신감이 넘치는 상황에서 만들었다. 그 앨범들이 나오면 난리가 날 줄 알았다. 밴드가 처음 출발할 때 전형적으로 대책없이 자신감이 충만했던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2집 《후일담》의 경우엔 어떨까? 2집을 다시 들어보면 진심으로 참신한 노래를 혹은 정말 세련된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욕심으로 응집된 것 같다. ‘5집이 뮤지션으로서 자의식을 가지고 만든 첫 앨범’이라는 아까 얘기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싶은데, 개인적으론 2집에서 ‘우리 진짜 음악하고 있어’라고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2집이 야심을 갖고 만든 유일한 앨범인 건 맞다. 그런데 그런 야심이나 자신감이 뮤지션으로서의 그것은 아니었다. 단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토대가 만들어졌고, 내가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음악이었던 것이다. 만약 글이거나 영화였다면 또 그것대로 밀어붙였을 거다. 음악이 아니면 안돼, 라는 자각이나 사명감이나 책임의식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건 야심이랑 전혀 별개다. 그런데 5집에선 내가 이제야 비로소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여년 이상 해온 음악생활이니까, 그 세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래서 더더군다나 5집은 야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앨범이다. 2집이 망했을 때의 그 실망감은, 정말 말로 설명 못한다.

-4집 《순간을 믿어요》는 첫곡 인트로부터 “우린 이번에 확실하게 락킹(rocking)하다”라고 선포하는 듯했다. 그래서 3집을 좋아했던 팬들이라면 4집에서 당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4집은 상업적으로는 잘 받아들여진 앨범인데, 또 언니네 이발관 팬들을 자처하는 분들한테 욕을 많이 듣기도 했다. 언니네 이발관을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너희들은 이런 팀이야, 이런 음악이야, 너희들 가사는 이래’ 이렇게 정해주는 부분에서 완벽하게 180도 반대 지점의 음악을 썼기 때문이다. 그때까진 우리 사운드가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고들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제일 ‘조지는’ 사운드를 잘하는 엔지니어를 찾아가서,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터지는 사운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가사도 그동안 내가 썼던 가사들의 특질들을 다 버리고 아주 관습적으로 갔다. 문맥도 안 맞고. 확 짜증을 내는 앨범이랄까. 우리 그런 애들 아니야, 하면서. 내가 입이 되게 걸다. 우리 음악을 좋아하다가 나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실망을 표하는 사람들을 접하고 나서, ‘아 씨발 나는 욕하면 안되는 건가’ 하는 불만과 의문이 차오를 대로 차오른 시점에 나온 게 4집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근원은 어떤 건가. 보통 한국대중음악 지형도에서 계보도를 많이 그리는데, 언니네 이발관에 대해서는 다들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밴드’라고만 얼버무리더라. 그 설명이 너무 모호하다. =글쎄. 이게 답이 될진 모르겠지만, 우리의 출발선은 한국 록의 역사에서 하나의 단절이 있었던 지점이다. 한국이 그렇다. 산울림 이후에 산울림의 후배들이 없고, 신중현 이후에 신중현의 후계자들이 없고, 계속 단절의 역사였다. 80년대엔 헤비메탈 밴드들이 득세했다가, 그 다음에 인디 밴드들이 올라왔단 말이다. 우리 출발점이 환경적으로 그러하거니와 음악적으로도 레퍼런스가 없다. 우리 스스로도 그렇고 사람들이 생각할 때도…. 요즘 말로 ‘갑툭튀’라고 그런다.

-홈페이지에 쓰는 일기나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펫샵보이즈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을 많이 얘기하더라. 그런 식으로 언니네 이발관을 설명하기 위한 외국 레퍼런스도 없는 걸까. =외국 레퍼런스는 더더군다나 없다. 펫샵보이즈일 것 같은가? 그럴 리가…. (웃음)

-아, 아니다…. =레퍼런스가 없기 때문에 녹음할 때 엔지니어가 정말 고생 많이 하고, 우리 자신도 그렇다. 작곡이나 편곡할 때 스타일을 카피할 수 있는 전범이 없다. 그게 우리 개성이자 고생의 원인이다.

-홈페이지 일기 중에서 무척 흥미롭게 읽은 글이 있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차창 밖으로 몸을 내미는 장면이 너무 매혹적이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표현했더라. 그 영화에 대해 참 많은 얘기들이 나왔지만, 그 장면을 꼭 집어서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 신기했다. 난 이 영화가 여러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지만,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조커를 주인공으로 하는 청춘물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크 나이트>를 지금까지 세번 봤는데, 처음 봤을 땐 실망했다. 일기에 쓴 그 장면은 <다크 나이트>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장면이다. 그런데 이 영화 별로다라고는 못 썼다. 그 일기 쓰고 다음날인가, 영화잡지랑 인터뷰가 있었거든. <다크 나이트> 후지다고 하면 구린 놈 취급 받을까봐. (웃음) 그래도 그 장면만큼은 정말 빨려들어갈 것 같았다. 그리고 5집과 이 영화가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다크 나이트> 개봉이 우리 앨범 발매 시기랑 비슷했다. 그때 내 상황이라면 작업하다가 장이 완전히 헐어서 몸무게가 8kg 정도 빠졌다. 머리 뒤쪽에는 탁구공만한 혹이 났고 매일 혈변이 나왔고, 몸이 만신창이였다. 혀는 굳어서 언어장애까지 왔다. 사실 5집 앨범 작업기를 자세하게 써둔 게 있다. 내용이 너무 처절하다. 눈뜨고는 못 본다. 앨범 낸 다음 활동을 전혀 안 할 거니까, 작업기라도 홈페이지에 올리고 털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히스 레저 얘기를 들었다. 히스 레저가 조커 연기를 위해서 마약을 했고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잤고 그러다가 완전 폐인이 돼서 자살을 했고…. 내가 지금 이걸 올리면 괜히 히스 레저 따라한 거 아니냐 하는 소리를 듣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질려할 것 같더라. 힘들게 만든 거 다 아니까 적당히 유세하라고, 뭐 그렇게. 히스 레저가 죽었는데 나까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웃음) 질문이 뭐였는데 여기까지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히스 레저는 <다크 나이트>에서 최고였다.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자주 보더라. 창작자 입장에서 다른 창작물을 왕성하게 소화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나. =주저할 이유가 없다. 책도, 영화도, 음악도 마찬가지다. 대신 그런 건 분명히 있다. 2001년 초반쯤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당신 하루키 좋아하지” 하더라. 그런데 난 하루키의 책은 단 한줄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도 하루키 책은 절대 안 읽었다. 영향 받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사실 딱히 할 게 없다. 책 읽고 영화 보는 것 말고는. 만날 파티를 할 것도 아니고.

-음반을 계속 들어왔거나, 일기를 꾸준히 보는 사람이라면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씨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기 위해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뮤지션이고, 인사동 카페의 오너고, 올해 계획대로 단행본이 나온다면 작가도 된다. 그렇게 소개하는 게 서로 가장 편하지 않을까. 뭐라고 해야 하지…. 나를 아는 사람들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타입이다. 어른들한테 그런 말 많이 들었다. 너같이 평범한 애가 어떻게 음악을 하냐고. 회사 다닐 때도, 난 절대 지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뮤지션의 이미지라면 머리도 기르고 회사도 만날 지각하고 회사 나오기 싫어서 불 지르고 이래야 하는데, 난 시키는 일도 잘하고 책임감도 강했거든. 그러니까 회사 사장님이 “내가 볼 땐 석원씨는 뮤지션 타입이 아닌 것 같아” 할 정도였다. 그런 말을 듣는 반면에 음반사에 가면 양상이 달라진다. 3집 작업 당시, 노브레인이라든가 다른 펑크 밴드 애들이 전부 같은 소속사였는데, 걔들도 다 미친놈들인데도 나한텐 어떻게 하질 못했다. 내가 너무 미쳐가지고. (웃음) 결론적으로 특징이 없는 놈이라고 해야 하나.

-일기를 보니 최근 들어 떠나겠다는 얘길 많이 썼더라. 과연 6집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겁이 나던데. (웃음) =6집은 마지막 앨범이다. 멤버들끼리도 얘기를 다 끝냈다. 몇달만 있으면 난 마흔이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아무리 날 위로하더라도 내가 음악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정점을 생물학적으로 이미 쳤을지도 모른다. 기회가 남았다면 이번 앨범 한장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6집 이후의 앨범들은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6집에 내가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부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앨범이다. 7집이 나오면 40대 중반이 될 텐데, 40대 중반의 인간의 창작력이라는 게 음악적으로 반짝반짝할 수가 없다. 그건 팝의 역사가 증명해왔다. 그러니까 6집이 마지막 앨범이다.

-두려운 얘기다. =마지막이라고 해야 사람들이 사겠지. (일동 웃음)

-언니네 이발관은 지금까지 13년 동안 다섯장의 앨범을 냈다. 1집을 20대 초반에 들었던 팬들이라면 지금쯤 30대 초·중반이 되었을 텐데, 뭐랄까, 내가 나이먹는 것과 언니네 이발관의 앨범들이 같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정서적인 일관성을 말하는 건가? 일관성이 있어 보이나?

-개인적으론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나이 먹어도 청춘일 수 있고, 소년일 수 있고 소녀일 수 있는데,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은 그런 부분을 강하게 건드린다고 느꼈다. =노랫말을 내가 쓰니까 어쨌든 앨범의 정서를 책임지는 사람도 나일 것이다. 그리고 주로 내가 살아온 얘기들을 노랫말로 쓰는 편이니까, 변화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가 아무리 변화하려고 발버둥쳐도 뿌리칠 수 없는 일관성은 있지 않을까. 그게 무엇인지는 나보다 타인들이 더 잘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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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제공 홍대 이리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