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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귀신과 사귀어볼 찬스
최보은 2009-04-24

믿거나말거나 우리동네 고스트 이야기

이웃 동네에, 거의 폐가처럼 을씨년스러운 2층 양옥집을 헐값에 전세내어 살고 있는 노총각이 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집주인 사정으로 갑자기 다른 거처를 구해야 했다. 통장 평균 잔고 100만원 이하로 사는 것은 우리랑 비슷해서 알아볼 곳이려야 아무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빈집밖에는 없었는데, 다행히 그런 빈집이 하나 나왔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집에서 귀신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다, 어떤 이는 귀신에게 얻어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어 이웃집으로 곤두박칠쳐 내려왔더란다. 귀신이 여기는 우리 집이니까 나가라면서 주먹을 휘두르더라는 것이다.

이 노총각의 동생은 그 집에서 잠을 자다가 아이울음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부근이 죽은 아이를 갖다 묻는 애장터였다. 이쯤 되니 이 노총각이 앞으로 혼자 살아가야 할, 이 촌구석에서도 제법 외진 그 골짜기 집이 우리 술자리의 단골 안줏감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천지에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떠들긴 해도 의외로 순진한 이 친구는 우리가 무서워서 어떻게 살래 하고 놀리면 정색을 하면서 여러 증인들의 증언을 과학적으로 반박하려 애를 쓴다. 예를 들어 피투성이가 되었다는 그 한의사는 워낙 술을 좋아하는 양반이어서 술에 취해 넘어져서 다치고는 귀신에 얻어맞은 것으로 착각했다는 식이다.

물론 나는 그 집에 귀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해도 무지 졸아 있을 그 노총각을 위하여 “그래도 누가 물어보면 귀신 봤다고 해. 그게 훨씬 더 재미있어. 진짜 귀신을 만나봐 봐. 평생 술 안줏거리는 걱정 안 해도 되잖아” 하고 만다.

읍내에서 중고 가전매장을 운영하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는데도 기계라면 못 고치는 것이 없어서 그곳 사람들이 ‘순돌이 아빠’라고 부르는 털보 아저씨가 있다. 내가 한때 생활했던 폐교에서도, 기계가 고장나면 즉각 이 아저씨의 도움을 청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아저씨가 출장수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의 눈에, 전문용어로 ‘영체’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냉장고나 세탁기를 고치러 나가면 집 한구석에 육신을 갖지 못한 혼령이 웅크리고 앉아 물끄러미 자기를 쳐다보는데, 누구한테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출장은 웬만한 일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여름, 폐교의 대형 탈수기가 고장나서 아저씨를 콜했는데 처음에 완강히 거부하다가 끈질긴 설득 끝에 마지못해 학교로 찾아오신 아저씨, 결국 보셨다. “저기 앉아 있네.”

그 폐교를 처음 임대한 양반도 산중 생활을 꽤 오래한 분인데 15년간 비어 있던 학교를 처음 갔을 때 귀신이 어찌나 우글댔던지 ‘고스트버스팅’을 해야 했단다. 남자들이 출장 품일을 나가는 바람에 연면적이 4천평이나 되는 폐교에서 사흘간 혼자 잔 적이 있었다. 교실 두개를 터서 만든 큰 방에서 일부러 불을 끄고 지냈다. 학교의 귀신 전부를 합친 것보다 내가 더 힘이 세다는 것을 알기에, 귀신들이 나를 무서워해야 할 처지라는 것을 알기에, 귀신들이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아서 심심할 지경이었다. 둘쨋날인가, 잠을 자다가 눈을 떴는데 절간의 사천왕 같은 거인 셋이 어둠 속에서 나를 물끄러미 굽어보고 있었다. 뭐, 안 믿으셔도 좋다. 머글들이 마법사의 세상을 부정한다고 해도, 호그와트의 기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으니까. (내 피 같고 살 같은 짝지가 며칠간 집을 비운단다. 우리 집에 사는 귀신들과 사귀어볼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