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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고>의 괴물, 장혁

`열정`으로 가는 길, 채찍질은 두렵지 않아!

“재 누구야? 완전히 괴물인데….” 상체가 보기 좋게 발달한 한 고등학생이 기관차처럼 쉬지 않고 운동장을 돌고 있다. 반 바퀴 먼저 뛴 다른 반 1등을 제친 지는 오래다. 괴물은 끝내 자신과 함께 뛴 무리의 선두와도 두 바퀴 이상 격차를 벌려놓는다. 그 광경을 지켜본 체육선생, 혜성처럼 나타난 전학생의 기량에 어안이 벙벙하다. 이건 만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7년 전 장혁(25)의 모습이다. <화산고>의 경수처럼, 장혁 또한 친구들에게 하늘에서 떨어진 외계인 같은 존재였다. “우연히 몸에 지니게 된 선천강기로 인해 박수 한번 치면 주위 친구들이 코피를 흘릴 정도의” 내공을 갖진 못했어도 말이다. “아버지가 건설업에 종사하셔서 학교를 자주 옮겨다녔어요. 그래서 주로 혼자 놀았죠.” 김해공항까지 걸어가서 햄버거 하나 입에 물고, 날아가는 비행기 보며 어딘가로 떠나는 공상을 하는 게 취미였다는 장혁. 영화 속 경수의 엉뚱함까지도 꼭 닮은 그의 옛 이야기를 추스르다보면, 김태균 감독이 장혁을 모델로 영화 속 주인공의 캐릭터를 다듬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자연스럽게 가닿는다.

“한 학년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난해 여름부터 계속된 11개월 동안의 촬영. 길었던 작업을 마치고나서의 ‘시원섭섭함’을 장혁은 그렇게 표현했다. “화나서 서로 치고박기도 하고, 성적표 때문에 고민하기도 하고, 애들하고 놀러다니기도 하고. 그렇게 보낸 1년을 마무리할 때의 느낌. 서운함과 홀가분함이 교차하더라고요.” 처음 <화산고>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때, 그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수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드러낼지 고민스러웠다. “경수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에 증오하는 표정을 지을 법한 캐릭터예요. 매번 혼절하면서 탄 와이어보다 어려웠어요.” 그래도 독서백편 의자통이라고, 어렸을 적부터 끼고 살던 만화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를 복기한 것이 경수를 빚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내가 준비해가면 감독님이 그건 아니다, 이건 키우자는 식으로 조절을 해주셨어요. 기는 엄청나지만 조절능력은 없는 경수를 대하듯.”

장혁은 복습만큼 예습도 철저히 하는 배우다. <화산고>를 끝내고 주어진 1주일간의 휴일도 고대하던 <정글쥬스> 촬영을 위해 헌납했다. 청량리를 전전하는 양아치 기태의 의상을 구하기 위해 LA까지 원정을 나선 것. “의상팀이 매번 고생이에요. 제가 아무거나 입혀놓는다고 그림되는 배우가 아니거든요.” 언뜻 보면 비슷한 역할같지만, 경수에서 기태로 옷을 갈아입은 장혁은 고개를 젓는다. “<화산고>가 액션이라면, <정글쥬스>는 리액션이 중요한 영화예요.” 그의 자세한 설명에 따르면, 극중 기태와 철수(이범수)는 청량리를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한몸 같은 존재다. 정해진 액션말고도 상대 배우의 반응에 따라 현장 상황에서 즉석으로 감정 실린 리액션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글쥬스>를 촬영하면서 장혁은 자신의 의자 뒷면에 ‘개척’이라고 적었다. <화산고>에서 그의 별명이기도 했던 ‘열정’이라는 구호와 함께. “배우로서의 감성은 아직 멀었어요. 아직도 머리로 생각하는 게 많고. 그래서 적어놓은 거예요. 누군가는 그런 절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 자리에 앉아도 아무도 수군대지 않는다면 그건 제가 뭔가를 해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한 고비 넘기고나면, 숨을 여유있게 고를 수도 있겠죠.” <정글쥬스> 촬영이 끝났으니 이제는 고된 몸을 풀어줄 법도 하건만, 장혁은 쉬지 않을 생각이다. 시간을 쪼개서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자세다. 내년 3월쯤 들어갈 사극드라마 앞뒤로 영화를 한편씩 더 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30대에 쫓기지 않는 배우로서의 삶을 위해 지금 힘들더라도 채찍질을 피해선 안 되죠.” 장혁은 무럭무럭 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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