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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일찍 여행길에 나선 아이들 <여행자>
문석 2009-10-28

synopsis 9살 소녀 진희(김새론)는 아버지에 의해 보육원에 맡겨진다.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 믿었던 진희는 차츰 버림받았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밥도 먹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지 않던 진희는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서서히 어울리게 되고 특히 몇살 나이 많은 숙희(박도연)와 단짝이 된다. 그러던 숙희가 해외로 입양 가게 되자 진희는 다시금 외로움에 빠져든다.

인생을 외로운 여행에 비유한다면 <여행자> 속 아이들은 지나치게 일찍 여행길에 나선 경우다. “여행 보내준다”는 아빠의 말을 믿고 보육원에 따라와 홀로 남겨진 진희 또한 마찬가지다. 보육원에서 진희는 혼자서 묵묵하게 삶의 여정을 걷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언제 입양 나갈지 모를 친구들과 적당히 관계를 맺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법 말이다. 화투점으로 운세를 떼어보는 것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달래는 작은 방편이다. 그래도 아직 진희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가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는 희망 또는 미련이 깃들어 있다. 때문에 진희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입양을 가야 한다”며 보육원을 찾는 외국인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숙희처럼 영악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물론 그 희망의 대가는 스스로를 무덤에 파묻고 싶을 정도로 가혹한 법이지만.

알려졌듯 <여행자>는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과장된 감성의 회고담인 건 아니다. 르콩트 감독은 효과적인 영화적 장치를 사용하면서 섬세하고 절제된 연출력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에 진희가 부르는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 거야>는 각각 복선과 클라이맥스로 기능하고, 아이들이 입양갈 때마다 친구들이 합창하는 <작별>과 <고향의 봄> 또한 대사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르콩트 감독은 진희의 내면을 설명적으로 풀어나가기보다 멍한 눈빛과 거친 행동을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임에도 이 영화가 러닝타임 100분 내내 서정적인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잘 구조화된 시나리오와 정성어린 연출 덕분이다..

<여행자>를 말할 때 배우들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진희의 아버지로 나온 설경구나 의사로 출연한 문성근은 분량이 적긴 해도 영화에 안정감을 부여했고, 보모 역의 박명신과 예신 역의 고아성, 숙희 역의 아역배우 박도연 또한 탄탄한 연기력으로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진희 역의 김새론이 있다. 유난히 초롱초롱 빛나는 이 꼬마 아이의 외로운 눈망울을 붙잡아낸 것은 감독이지만, 물 흘러가듯 자연스레 캐릭터에 동화된 김새론의 연기가 없었다면 <여행자>는 허술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진희가 이 험난한 여행을 끝내 씩씩하게 해낼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 또한 김새론의 맑고 깊은 눈동자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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