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작업의 순간
[작업의 순간] 다음부터 엉덩이는 흔들지 말아요
이다혜 2009-10-30

<우리 결혼했어요>를 즐겨 봤던 이유는 신혼생활 대리체험 때문은 아니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일상생활에서는 ‘진상’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라는 편이 옳겠다. 사회생활을 하고 연애를 할 때 안 보여주지만 사실 그 인간의 팔할을 차지하는, 일상기능을 수행할 때 드러나는 진짜 얼굴. 가상부부라고는 해도 가끔 소름끼칠 정도로 진짜 같아 보이는 순간이 종종 발생한다. 러브러브할 때가 아니라 잡일할 때, 싸울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하지만 진짜 같은 진상을 떨면 곤란해진다. 두번의 애매모호한 가상결혼생활의 주인공이 되었던 정형돈의 캐릭터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부들이 다 무릎을 치고 남자 출연자들이 “맞아, 맞아”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런 평범남이 주변에 널렸는데 TV에서조차 또 보고 싶을 턱이 없다. 어딘가 동경할 구석 하나쯤은 가진 남자가 소파에 뒹굴면 “저이도 똑같구나”라며 옆의 남자도 애잔하게 돌아보겠으나, 생활의 때가 칼국수 열 그릇은 되도록 밀려나오는 인물이 소파에 뒹구는 모습은….

그런 면에서 올해 초 등장했던 김신영과 이시영은 특이한 캐릭터였다. 김신영은 유머감각 하나만큼은 천하대장부지만 외모 면에서 기존에 출연했던 여자 출연진과는 많이 달랐다. 청순한 이미지의 여배우도, 섹시미의 여가수도 아니었다. 이시영은 외모로는 이전 여자 출연진과 별다를 게 없었지만 건담 덕후였다. 집 안 건프라의 성전은 함부로 먼지도 털 수 없었다. 김신영은 뮤지컬 배우 신성록과, 이시영은 전진과 짝이 되었다.

이들의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커플들이 함께 모여서 놀던 밤 벌어졌다. 김신영과 전진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 사이, 신성록과 이시영은 노래방 기계를 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시영이 <U Go Girl>을 부르고 신성록은 먹구름이 끼면 비가 내리듯 자연스레 박자를 맞춘다. 신성록은 이전까지 김신영과 형제나 남매 같은 분위기만 연출해왔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소개팅 2차를 간 남학생처럼 엉덩이를 흔들며 박자를 맞추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때 김신영이 집에 들어서고, 그 광경을 목격한다. 신성록은 움찔하지만 이시영은 흘끗 김신영을 본 뒤, 노래는 끝까지 불러야 맛이라는 듯 노래를 계속한다. 세상의 주인공은, 그렇다, 미모의 아가씨인 것이다. 아멘.

부부모임을 다녀온 뒤 남편들이 까이는 이유 중 하나가 저런 악의없고 순진한 엉덩이춤이다. 주인공의 자신감을 잃지 않고 미모와 노래를 과시하는 다른 남자 아내 앞에서 “분위기는 띄워야 제맛”이라는 신념 아래 집에서와 판이하게 다른 표정으로 웃고 응대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남편의 악의없는 순진함. 보는 아내의 울화를 돋우는 해맑은 그 미소. 가상부부라 그런지 김신영이 대장부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밤 손님들이 돌아간 뒤 혼날까 긴장한 라꿍(신성록)에게 까꿍은 짧게 말한다. “다음부터 엉덩이는 흔들지 말아요. 자존심 상하더라고.” 커플모임이 잦은 연말연시가 다가오고 있다. 추울 때 길바닥에서 싸우지들 마시고, ‘한마디만’의 법칙을 기억하시라. “내 앞에서 꼭 그래야 하냐고! 그래야 하냐고!” 하는 분노한 주부의 사자후를 듣느라 노처녀 이마에 주름 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