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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맛] 오빠의 고급스러움이라니

손석희

대학 시절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학습보다는 혼자 힘으로 하는 자기 수련에만 힘을 쓰던 내가 4년 동안 딱 한번 외부인사 강연에 간 적이 있다. 초청강사는 손석희였다. 그때의 기억을 애써 더듬어보니 차를 가지고 학교로 오는 길에 일방도로를 거꾸로 타서 빠져나오는 데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주제나 핵심과 무관한 지엽말단만 기억하는 게 나의 고질병이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왜 그 강연을 갔는가 하면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맨 앞줄에 앉아서 두 시간 동안 광채를 받고 나니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손 교수님이 이 글을 보면 한심하다 혀를 차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잘생긴 건 잘생긴 거잖아요.

그래서 <100분 토론>을 열심히 봤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교수님 지적대로 12시 심야 방송은 나 같은 새 나라의 어린이에게는 가혹한 형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무대에서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섭섭했다. 정권 입김 등등의 소문에 열받았다기보다 말 그대로 섭섭했다. 아무리 촌철살인 어록을 쏟아낸다한들 라디오에서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볼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이랴.

이쯤되면 손 교수님뿐 아니라 독자 여러분의 질타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겨우 외모로 손석희를 좋아한단 말이냐? 손석희의 진가를 훼손하려는 의도냐? 너 루저녀냐?(참고로 저는 키 170cm의 위너로서 171cm의 루저와 함께 사는 행동하는 지성파입니다) 물론 손석희는 내가 본 가장 잘생긴 아저씨는 아니다. 그는 내가 본 가장 고급스러운 아저씨다. 고급스러움이란 냉정하면서도 유머감각 있는, 그의 말하는 방식이나 상대방을 대할 때 접대나 인사치레와 거리가 먼 태도, 그의 언어 속에서 드러나는 상식의 수준, 그리고 광고 출연 거부 등 평소 관리해온 이미지, 물론 흐트러짐 없는 외모의 스타성까지다. 여기서 고급스럽다는 게 부티나 보인다는 말이 아니다. 재벌 총수들의 면면을 보라. 부티는 나보이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던?

고급스러운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래전 손석희에게 인터뷰 섭외로 전화를 했다가 심장이 멎는 것 같아서 “제가 요즘 인터뷰를 할 상황이 아니라”, 한마디 딸랑 듣고 “네 알겠습니다”, 바로 전화를 끊었다던 후배처럼 그의 고급스러움은 편하고 친숙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손석희처럼 고급스러운 인물이 한국의 방송에 하나 있다는 것, 래리 킹 같은 외국 유수의 방송인 옆에 갖다붙여도 뭐 하나 꿀릴 거 없는 방송인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정말 뿌듯한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했고 그의 하차가 아쉽다. 전략있는 방송사라면 이런 고급 브랜드를 썩히는 짓은 안 할 것이다. 하루빨리 멋진 아저씨의 복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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