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오픈칼럼
[오픈칼럼] 서운대 4학년 황정음씨에게
강병진 2010-01-01

안녕하세요. 정음씨. <씨네21> 입사 이후 가장 긴 휴가였던 지난 2주 동안, IPTV가 있는 친구 집에 빌붙어 <지붕 뚫고 하이킥!>을 몰아봤어요. 덕분에 제가 나온 학교를 일컫는 새로운 명칭을 알게 됐답니다. 맞아요. 저도 지방대를 나왔어요. 보아하니 정음씨는 그래도 서울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1시간 정도에 갈 수 있는 수도권 소재 대학인 것 같은데, 저는 수도권도 아니었어요. 아무튼 제가 다닌 학교도 서운대였답니다.

서운대 학생이라는 것 때문에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고충을 목격했습니다. 세경이에게는 누나라고 부르는 준혁이가 정음씨에게는 ‘야자’를 틀 때도 신경질 이상의 화를 내지 못했던 건 서운대 출신이 가진 자격지심 때문이었을 거예요. 마음고생만이 아니라 몸고생도 상당했어요. 학생증 때문에 2층 계단에서 몸을 날릴 때는, 가슴 한쪽이 저렸습니다. 최근에는 긴급한 장트러블이 셔틀버스 통학을 해야 하는 지방대 학생에게 얼마나 큰 재난인지를 보여주셨죠. 만약 정음씨가 서울대를 다녔다면, 아무 지하철역이나 내려서 볼일을 해결할 수 있었을 거예요. 저는 기숙사 생활을 했던 터라 통학생들에게 그런 고충까지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정음씨가 자기 얼굴에 낙서를 하던 모습이 아팠습니다. 아르바이트 겸 모델로 출연했던 학교홍보광고가 하필 서울에, 그것도 버스에, 게다가 동네 버스에 실릴 게 뭐랍니까. 모든 광고를 찾아 정음씨 얼굴에 안경과 수염을 그려넣는 장면은 많은 서운대 학생들의 비애를 상징했어요. 그처럼 우리는 때로는 자기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같아요. 남들은 어떻게든 자기 스펙을 드러내려 하지만, 우리는 감추려 할 수밖에 없잖아요(사실 저는 <씨네21> 이력서에 토익점수를 적지 않았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더 비쌌으면 비쌌지, 더 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닌 건 아닌데도 말이죠. 그래도 정음씨는 서운대 학생이 서울에서도 잘 살 수 있는 태도를 가져서 다행이에요. 자신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 말이에요. 처음에는 노심초사하며 낙서를 하던 정음씨가 나중에는 무심한 듯 시크한 표정으로 변할 때 느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도 그냥 사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에요. 사실 남들은 서운대 출신들을 그리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러니 그냥 명품쇼핑하고, 준혁이와 지훈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술 먹고 꼬장부리면 돼요. 저도 정음씨를 응원하겠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알아서 재밌게 살기만을 바랄게요. 개인적으로 준혁이보다는 지훈이를 추천합니다. 그럼 이만….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