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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화면 밖의 미스터리
김혜리 2010-01-08

<에이다>(Ada), 1994, 석판, 알렉스 카츠

<에이다>(Ada), 1994, 석판, 알렉스 카츠

“나는 프린터처럼 그린다.” 알렉스 카츠는 오늘이 지구 최후의 날인 양 그려대는 화가다. 매우 빨리 그리고, 하나를 그리면서도 어서 다음 그림에 손대고 싶어 안달한다. 아무리 큰 작품도 하루 안에 완성하는 그의 작업에는 치밀한 예비가 앞선다. 물감을 미리 섞어두고 붓도 차례로 늘어놓는다. 사람이든 풍경이든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한 끝에 휙 잡아챈 이미지를 강하고 재빠르게 그려간다. 결과물은 신속하고 매끈하게 마무리되었으되, 붓자국을 완전히 감추지 않는 맑은 화면이다. 1927년생 알렉스 카츠는 구상화를 고집한 까닭에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대유행 속에서 주요한 작가로 거명되지 못했다. 첫 전시에서 누군가로부터 “사람과 사물을 그리는 일은 무가치하다”라는 말을 들은 카츠는 이후 오기 부리듯 더 큼직한 초상화를 양산했는데 그 신념은 1980년대 후반부터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에이다>의 모델은 50년 가까이 카츠의 이젤 앞에서 포즈를 취한 화가의 아내다. 어느덧 머리칼에는 회색이 섞였지만 표현력 짙은 눈동자와 이집트 여왕 네페르티티를 닮은 당당함은 젊은 날의 모습 그대로다. 평론가 어빙 샌들러는 카츠가 그린 에이다를 가리켜 “여인, 아내, 엄마, 뮤즈, 모델, 능란한 안주인”이라고 표현했다. 무심하고 간결한 표면 아래를 달리는 정열과 힘, 도회적 멜랑콜리는 카츠 인물화의 미스터리다. 흔히 평자들은 카츠의 화풍이 시네마스코프 영화와 광고 간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화가 역시 유년기에 본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말하고 옷입는 법, 사랑과 행복, 범죄와 처벌의 개념에 대해 배웠다고 회상한 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카츠의 초상화는 움직임 도중에 멈춰선 듯 시야를 어슷하게 오려낸(cropping) 프레이밍으로 모종의 드라마를 끌어들인다. 드가와 몇몇 인상주의 화가도 채택했던 이런 구도는 불가피하게 보는 이로 하여금 스냅 사진 나아가 영화의 숏을 연상하도록 부추긴다. 어디서 대상에 다가가기를 멈출 것인가에 대한 ‘카메라의 고민’이 읽히기 때문이다.

쇄골께에서 잘려 속눈썹과 입술 주름까지 더듬을 수 있을 것 같은 <에이다>의 화폭은 클로즈업 숏에 내장된 자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것은 계시처럼 대뜸 우리에게 다가선다. 그러나 화가의 시선은 모델의 주름살과 모공이 드러나기 직전에, 관능적인 유혹이 부담과 두려움으로 옮아가는 임계점에 아슬아슬하게 멈춘다. 오늘날 관객이라면 화상통화 휴대폰의 액정에 떠오른 상대방의 이미지에 비할지도 모르겠다. 탐정의 망원경에 잡힌 용의자의 그것처럼, 커다랗고 매혹적이지만 평면성을 끝끝내 강고하게 고집하는 얼굴. 영화의 클로즈업을 직면했을 때와 똑같이 우리는 거꾸로 반문하게 된다. 이 그림은 에이다에 관해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잘려나간 화면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