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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볼 만한 옴니버스 영화 <사사건건>
이영진 2010-01-20

synopsis 앞을 볼 수 없는 꼬마 영광이는 병상에 누워 있는 누나를 위해 근사한 산책을 제안한다(<산책가>). 반지하 방에 사는 오누이는 흉측스런 몰골을 한 수상한 남자들의 침입에 당황한다(<남매의 집>).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남자는 돈을 내놓으라는 낯선 소녀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혼란스럽다(<아들의 여자>). 강력계 형사인 태주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잠복근무를 하다 봉변을 당한다(<잠복근무>).

<산책가>는 서로의 눈과 발이 되어 강을 건너는 형제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시각장애우인 영광은 잡동사니를 모아 모조 세상을 만들고, 누나는 손으로 가짜 세상을 더듬으면서 행복을 느낀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뒤섞은 단편애니메이션. 미리 말하지만, 두 남매의 짧은 산책을 통해 감독이 환기하고 싶은 건 우애가 아니다. <산책가>는 온전한 몸을 지녔으나 실제 감각은 마비된 ‘정상인’들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이다. 남매의 산책을 좇다보면 “시각장애는 또 다른 감수성”이며 “시각이야말로 장애요소”라는 잠언을 들을 수 있다.

<남매의 집>에서 ‘시각’은 공포의 서식지다.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오누이는 꼼짝없이 집 안에 갇힌 상태다. 바깥을 볼 수 없는 오누이에게는 조그만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조차 공포다. 결국 폐쇄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열어준 오누이는 요설과 폭력을 내뿜는 괴물들의 협박에 시달린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섭고, 보았기 때문에 오싹하다. <남매의 집>의 실험은 시각과 공포의 상관관계를 넘어 유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선의지를 조롱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아들의 여자>에서도 인간의 윤리와 도덕은 도마 위 신세다. 교복 입은 아들의 여자는 아들의 ‘자식’을 임신한 채 남자 앞에 나타난다. 이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군대 간 아들을 대신해 아들의 여자를 수술대 위에 눕히는 것이다. 남자는 뒤늦게 여자를 수술대 위에서 끌어내리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당신이 뭔데?’라고 따져 묻는 아들의 여자의 원망스런 시선 앞에서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분명한 건 세대를 거치면서 윤리와 도덕은 거추장스러운 혹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선사할 수 있는 건 헛웃음뿐이다. <잠복근무>의 형사 태주가 그러하다. 어린 시절 나고 자랐던 철거촌에 용의자를 잡기 위해 찾아든 태주. 번데기 장사로 위장하지만, 그를 한눈에 알아본 친구들 때문에 태주는 근무 도중 술판을 벌이게 되고, 급기야 용의자를 눈앞에서 놓치게 된다. 웃지만 웃을 수 없는 마지막 장면. 태주의 등판에 잔뜩 묻은 토사물이 아직도 식지 않은 우정의 흔적이라고 여기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건 이정표 없이 어딘가로 실려 가야 하는 군상의 어지러움 호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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