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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의 道] 말이 기니 수명 단축일세

<의형제> 그림자

지금까지 등장했던 나쁜 놈들의 최소한 7할은, 착한 놈을 일거에 제압/처단할 수 있는 기회를 영화 상영시간 도중 적어도 한번쯤은 얻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나쁜 놈들은 삼미 슈퍼스타즈를 압도하는 저조한 승률을 기록하며 음지에서 냉대와 비난을 받고 있는 바, 경인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이 원인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원래 그렇게 되라고 돼 있는 놈이라 그렇다고? 물론 그도 맞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단연 이것이다.

말이 너무 많아서. 그것도 하필이면 결정적인 순간에.

무방비 상태의 주인공 코앞에 대포만한 총구를 들이댄 상황에서 이제껏 별러온 착한 놈 약 올리기, 자신의 나쁜 놈질의 대의와 정당성, 자신의 혈액형, 첫사랑의 추억, 좋아하는 색깔, 먹고 싶은 음식 등등을 유엔 사무총장 취임연설이 무색할 만큼 장중하게 읊조림으로써 결국 착한 놈에게 위기탈출의 빌미를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나쁜 놈들의 과도한 쪼여주기는 나쁜 놈들의 평균수명을 단축시켜온 핵심요인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가. 전세계 나쁜 놈들을 일제히 납치 감금한 뒤, 15년 동안 군만두만을 먹여야 할 것인가? <의형제>의 나쁜 놈인 ‘그림자’는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자는 목표한 표적 앞에서 “장모?” “비키라우” 등의 표적 식별 및 장애물 제거를 위한 최소한의 발언만을 할 뿐, 그외에는 오로지 나쁜 놈질에 필요한 동작만 아무런 말없이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일거에 경악과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그는 아군 공작원들에게조차 “어디 춤 한번 춰보라” 등의 아방가르드하고도 함축성 높은 대사만을 일삼아 기선을 제압하고, 심지어 총검류조차 압력밥솥 뚜껑 덮는 소리 이상을 내지 않는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사용함으로써 나쁜 놈쪽의 해묵은 병폐를 더이상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미니멀리즘을 실천해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자 역시도 평균수명 연장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허망하게 스러져가고 만다. 왜인가.

그것은 자신의 할 일을 남에게 미룸으로써 발생한 비극이었다. 만일 그림자가 주인공 ‘이한규’(송강호)의 처단을 ‘송지원’(강동원)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직접 했더라면 끝까지 생존에 성공한 흔치 않은 나쁜 놈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고, 결국 막판 해피엔딩을 향한(최소한 비극회피를 향한) 질풍노도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그림자의 치명적 실수는 사실, 한솥밥 먹고 사는 다른 나쁜 놈들을 배려하고 그들과 함께 공을 나누려는 배려와 아량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러한 생각을 더욱 지울 수 없다.

삼가 그림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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