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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의 道] 죽어서도 나쁜짓 나빌레라

최우수 나쁜 놈 시상식

평소 ‘시류에 편승하여 대세에 영합한다’는 좌우명을 견지하고 있는데다가, 이번 아카데미가 <아바타>에 대해 의외로 정당한 평가를 내린 것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당 칼럼도 하나 준비하였다. 뭐냐고. 그것은 많은 독자들께서 질문해주셨던 ‘귀 칼럼이 최고로 꼽는 나쁜 놈은 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답, 즉 ‘나쁜 놈의 道’ 선정 최우수 나쁜 놈 시상식이다.

이 상의 영예를 안은 애는 다름 아닌,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에 출연하였던 ‘드럼린 박사’(톰 스케릿 분, 이하 드럼린)라는 나쁜 놈이다.

얘는 일단, 어딘지 지성인스러운 분위기, 온화한 사슴 눈, 매혹의 바리톤, 젠틀한 의상 등등의 매끌매끌한 외관을 통해 강력한 나쁜 놈의 기초 자질을 고루 완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타인의 노력과 열정을 날름날름 가로채가는 야비함으로 굳건하게 뒷받침되고 있는 바, 평소에 괄시와 개무시를 서슴지 않던 후배 ‘엘레노어 박사’(이하 엘리)가 올린 ‘외계 메시지 수신’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정치판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얘는 차근차근 착실하게도 가로채주고 있다.

더구나, 나쁜 놈질을 모두 완수한 뒤 엘리와 대면한 자리에서 “엘리, 나도 세상이 공평하기를 바라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닌 것 같군”이라는 대사를 날려줌으로써 자신의 야비함을 일백프로 인지하고 있는 특A급 나쁜 놈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하지만 이 야심찬 대사는 곧바로 “그 세상을 만드는 건 바로 우리라고 생각했는데요”라는 엘리의 대사로 반박 및 일축됨으로써 드럼린 최고의 순간으로 자리매김되지는 못했다.

드럼린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대목은, 엘리가 백악관에서 자신의 발견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대목이다.

먹이를 노리는 굶주린 승냥이마냥 회의 테이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엘리의 브리핑을 듣던 드럼린. 그는 엘리의 설명이 거의 끝나가는 대목에서 갑자기 구렁이 담 넘어가듯 끼어들며, 그녀의 말을 마무리해버린다. 그리고 우아한 손짓과 함께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엘리, 다음 화면으로.”

코오…. 필자는 이 대사야말로, 욕설, 저주, 괴성 등등을 포함해 지금까지 나쁜 놈들이 던져왔던 수많은 대사 중 단연 최고라 단언하는 바이다. 이 한마디를 통해 드럼린은, 엘리가 지금까지 자신의 지원 및 지휘하에 모든 일을 해왔다는 듯한 인상을, 인건비 한푼 들이지 않고 풍겨버렸던 것이다. 더구나 최고위급 인사들이 잔뜩 모인 자리에서 말이다.

드럼린은 결국 권선징악의 道 앞에서 분연히 무릎을 꿇고 이승을 하직한다만, 끝까지 그 야비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됨으로써 나쁜 놈의 금자탑을 완성해내고 만다.

아아, 그랬다. 그는 죽음, 그 너머에서까지도 나쁜 놈의 道를 수호하였던, 진정한 나쁜 놈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