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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리] 프렌치토스트도 못 굽는다면…
박찬일 2010-03-25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의 목록을 짜면 앞줄에서 빠질 수 없는 더스틴 호프먼, 메릴 스트립을 세트로 볼 수 있는 영화다. 개봉 당시 한국인의 정서로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로 사회적 반향까지 불러일으켰다. 물론 개봉 시점의 미국에서는 붕괴되는 가정, 여성의 권리 같은 예민하고도 보편적인 문제를 다뤄 큰 사회적 격론에 부쳐지기도 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테드(더스틴 호프먼)는 워커홀릭으로 가정에 소홀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조안나(메릴 스트립)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겠노라 하며 독립한다. 갑자기 아들 빌리를 떠맡고 살림을 하게 된 테드는 황당할 뿐이다. 테드의 일상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결국 회사까지 쫓겨나지만, 빌리를 기르는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조안나가 나타나 빌리를 달라고 하고, 재판까지 간 끝에 테드는 빌리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만다.

테드가 막 빌리를 떠맡아 엉터리 살림을 꾸리는 장면은 혼란의 연속이다. 빌리는 아빠에게 배가 고프니 프렌치토스트를 해달라고 한다. 으흠, 과연 테드는 해낼 수 있을까. 사실 프렌치토스트는 프랑스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 오히려 미국인의 사랑을 많이 받는 토스트의 일종이다. 프랑스인이 경멸하는 희고 부드러운 슈퍼마켓 식빵을 쓰는 이 토스트는 우습게도 두어해 전부터 한국에서 대유행이다. 이른바 브런치 바람을 타고 말이다.

프렌치토스트는 달걀을 푼 우유에 빵을 적시고 기름이나 버터를 두른 팬에 지져내면 끝인 단순한 레시피다. 테드는 이 간단하기 그지없는, 요리라고 부르기도 우스운 빵 한쪽도 제대로 굽지 못한다. 머그컵에 달걀과 우유를 풀었으니, 네모난 커다란 식빵이 들어갈 리 없다. 결국 아들 빌리 앞에서 체면을 구기며 빵도 반으로 구겨넣을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맛없게 하기 어려운’ 요리 항목을 꼽으면 빠지지 않을 게 바로 프렌치토스트다. 영화에서 테드가 이 토스트를 만드는 장면 역시 그의 비가정적인 면모를 부각하기 위한 설정이다. 아니, 그까짓 프렌치토스트 한쪽도 제대로 못 구우면서 아들을 양육하겠다고? 여자들 처지에선 이런 말이 곧 튀어나올 지경이다(물론 ‘불쌍한 더스틴 호프먼!’ 하면서 동정심 왕창 던져주실 팬들도 많겠지만).

영화는 비발디의 <만돌린을 위한 협주곡>의 묘한 음률에서 춤추며, 자칫 지루할 이야기를 힘차게 끌고 간다. 해피엔딩을 기대할 팬에게는 아쉽지만, 빌리가 아빠 테드와 함께 사는 걸로 결론난다. 이 영화가 10년만 늦게 나왔어도 조안나는 가정으로 돌아갔을 텐데. 하여간 걸작과 범작의 경계는 이처럼 사소한 데 있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한국의 브런치 식당에서 파는 불어터진 프렌치토스트 한쪽이 1만원이나 하는 이유가 뭔지 누가 좀 알려주기 바란다. 자장면값 500원 올리면 난리가 나는 사람들이 얌전하게 그 값을 지불하는 불가사의한 이유도 말이다(차라리 테드가 해주는 쌈마이 토스트를 먹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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