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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리] 내 인생의 세 가지 음식영화
박찬일 2010-04-08

<바베트의 만찬>

이 코너의 마지막을 3대 음식영화로 매듭질까 한다. ‘3대’라고 해서 <어시장 3대>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뽑은 최고의 음식영화 세 가지다. 그 첫손가락에는 <음식남녀>를 꼽아야 한다. 리안 감독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걸작이다. 패션은 변해도 요리는 그렇지 않으니까. 은퇴한 거물 요리사 주사부가 딸들을 위해 요리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그가 게와 생선을 손질하는 장면, 찌고 굽고 튀기는 중국 요리의 다채롭고 스케일 큰 손놀림은 식욕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대만 최고의 호텔 주방에서 직접 찍은 현장신은 관객의 몰입을 절정으로 이끈다. 수많은 요리사들이 각자의 테크닉으로 요리하는 장면은 화면 밖으로 기름이 튈 것처럼 생생하다. 이 영화 이후 나온 모든 아시아 음식영화는 크든 작든 리안 감독에게 빚을 지고 있을 만큼 요리를 다룬 영화의 한 전범을 이뤘다. 가족애와 유쾌한 반전까지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요소도 두루 갖춘 영화.

아시아에 <음식남녀>가 있다면 서양에는 <에덴>이 있다. 수줍고 자의식 강한 주인공 남녀의 음식을 매개한 기묘한 연애담을 가슴 아프게 풀어냈다. 요리와 인간에 있어 매우 철학적인 사유를 녹여냈다는 평가를 얻고 있지만, 그냥 주인공이 만드는 음식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 특히 요리사 역인 주인공 요제프 오스텐도르프의 눈빛 연기는 누군가 헌사를 바쳐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마음을 시리게 한다. 서양 사람들이 요리를 대하는 태도, 애정과 고급 기술자의 정성이 들어간 요리에 대한 종교적 숭앙의 배경을 읽을 수 있기도 하다. <미쉐린가이드>가 대변하는 수준 높은 식도락 문화의 한 단면을 슬쩍 비추기도 한다. 가장 싱싱한 재료를 구해 자신의 손으로 요리하는 주인공의 태도는 오늘날 <미쉐린가이드>에서 주는 별의 척도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요리를 먹으며 사람들이 탄식과 감동에 몸을 떨며 아무 말 없이 요리에 몰두하는 장면은 먼저 나온 요리영화의 걸작 <바베트의 만찬>에 대한 오마주로 읽어도 될 듯하다.

도저히 요리영화가 나올 것 같지 않은 황량한 북구의 청교도 마을을 배경으로 여자 요리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하고 놀라운 이야기가 바로 <바베트의 만찬>이다. 한국에선 일부 마니아에게만 회자되고 말았지만, 서양에서는 지금도 이 영화에 등장한 요리를 오마주하고, 곁들여진 와인(대부분 병당 100만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걸작들이다)을 마시는 취미 모임이 있을 정도로 인기있다.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프랑스식 ‘풀코스’ 요리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보여준다. 실제 등장하는 요리는 프랑스 요리사에 매우 중요한 클래식한 것들로, 여전히 최상급의 식당에서 서브되고 있다. 좋은 음식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얼어붙은 마음을 해빙하는지 답을 보여준다. 플랑드르 학파의 화풍처럼 인상적인 색채의 부엌 풍경과 정물화 같은 식재료들의 화면을 보면 탐미적인 감독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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