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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액세서리]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의 가방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사랑>은 덜 유명한 영화다. 간혹 비토리오 스토라로가 찍은 놀라운 사막(부드러운 모래언덕이 여자의 거대한 누드처럼 보이는)과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감독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집착을 다룬 평이야 봤지만, 이 영화의 ‘스타일’과 배우들의 ‘빙의’에 가까운 캐릭터 몰입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하긴 <마지막 사랑>이라는 국내개봉 제목만 보면 영화를 볼 마음이 싹 사라지긴 한다.

결혼 10년을 맞은 부부가 이제 그만 지겨워져서 새로운 감정의 물꼬를 좀 터보고자 아프리카에 놀러온 설정답게 영화는 130분 내내 여행자의 정서를 축축하게 권한다. 영화의 첫 장면,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모로코의 탕헤르 항구에 도착한다. 얼핏 보기에도 고상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의 그룹이다. 남자들은 리넨 슈트와 스펙테이터, 챙에 리본을 두른 라피아 모자를 썼고 레오파드 테에 녹색 렌즈를 끼운 선글라스를 꼈다. 여자는 우아한 듯 방종해 보이는 쇼트커트에 실크 셔츠, 폭이 넓은 팬츠 차림이다. 도심에 나타난 기린처럼 눈에 띄는 이들 뒤로 여행 가방이 줄을 잇는다. 이니셜을 새긴 가죽 트렁크는 냉장고만큼 크고, 캔버스로 만든 트렁크는 네 귀퉁이에 가죽을 덧댔다. 가방의 행렬 안에는 초콜릿색 보스턴백과 큰북처럼 생긴 베이지색 모자 박스도 있다. 항구의 꼬마들이 맨발로 트렁크를 나르는 동안 남자는 가방의 개수를 열심히 센다. 열넷까지 셌는데도 멀었다.

항구에 선 채 담배를 피우면서 이 지나치게 세련된 여행자들은 이제 막 도착한 낯선 도시의 풍광에 들뜬다. 그러고는 “우리는 여행자야. 관광객이 아니라고. 관광객은 도착한 즉시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여행자는 달라.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포트(존 말코비치)의 이 말은 이제부터의 스토리를 눈치채게 만드는 전주곡이다. 독특한 억양과 나긋한 말투의 포트, 남자 재킷과 퍼프소매 파자마가 둘 다 어울리는 이중적 차밍함을 지닌 키트(데브라 윙거), 핸섬한 곱슬머리 터너(캠벨 스콧)의 동반 여행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먼 곳과 가까운 곳, 안전한 곳과 위험한 곳을 가리지 않는 무모함 때문에 이들의 여행 가방은 기차, 흰색 메르세데스, 더러운 버스, 하물며 낙타 위로 옮겨지며 사막을 횡단한다. 여행의 끝은, 뜻밖의 결과를 맞는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세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느라 녹초가 된 몸과 마음이 풀썩 허물어지는 기분도 든다. 하지만 당장 눈이 멀 것 같은 깔깔한 바람과 사막 한가운데의 더러운 호텔, 모래언덕에 앉아서 피우는 싸구려 담배는 꾀죄죄하고 불안해 보이지만 묘한 자극을 준다. 그리고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카메라는 사하라 사막도 사막이지만, 주인공들을 먼저 꿰뚫는다. 데브라 윙거의 목덜미가 그토록 예쁜지, 존 말코비치의 목소리가 과연 얼마나 섹시한지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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