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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혹함에 전염된 인물들 <허트 로커>
김용언 2010-04-21

이라크전 당시 미군을 위협하는 최대의 살상무기는 불법 사제 폭탄이었다. 이런 종류의 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지식이 더이상 전문가만의 전유물에 머무르지 않는 순간, 현대전은 말 그대로 부비트랩이 되었다. 순진무구해 보이는 행인 중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피해자인지 가늠할 수 없을 때, 전쟁은 더이상 액션영화의 일부가 아닌 거의 공포영화의 전제처럼 바뀌어간다.

앨프리드 히치콕은 서스펜스를 두고 ‘등장인물은 모르고 있는 위험을, 관객이 알고 있을 때 느끼는 초조감’이라 규정했다. <허트 로커>는 그 전제를 한층 더 밀고 나아간다. 영화 속 폭발물 제거반 EOD 팀원과 관객은 모두 동등하게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다. 어느 순간 폭발할지 모르는 사제 폭탄을 앞에 둔 채 등장인물과 관객 모두 극심한 불안과 초조를 느끼게 된다. <허트 로커>에서 폭탄을 해체하는 주도면밀한 과정이 차례로 등장할 때마다 폭탄의 규모와 잔인함의 세기는 점점 커진다. 폭탄 해체의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리듬의 기승전결이 솜씨 좋게 배분되는 동시에 영화의 전체적인 기승전결의 리듬 또한 완벽하게 조율된다. 그리하여 영화 막판에 살아 있는 인간 폭탄이 등장하는 순간의 서스펜스는 어마어마하다. 불가해한 심연처럼 인간 폭탄은 자신의 재킷을 들어보인다. 이 순간, 전쟁의 참혹함에 전염된 인물들만큼이나 관객까지 함몰되어버린다. 영화가 제공하는 환상, 감정이입의 극대화의 모범으로 손색이 없다.

각본가 마크 볼은 이렇게 말했다. “<플래툰>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쉰들러 리스트> <지옥의 묵시록>은, 적어도 내게는 그저 단순한 영화적 체험이 아니다. 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는 의미에서 뛰어난 정보를 주는 영화들이었다. 나는 감히, <허트 로커>가 그 행렬에 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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