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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아이콘] 생성의 바탕이 되는 그 장소

코라와 데리다의 실패한 건축물

오래전 이스탄불을 여행하던 중 ‘코라’(chora)라는 이름의 교회에 들른 적이 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도성 밖의 들판에 있는 교회라서 그렇게 부른단다. 참고로, 고대 그리스에서 ‘코라’(χωρα)는 일반적으로 폴리스를 둘러싼 변두리를 가리켰다. 아무튼 그 교회에서 화려한 비잔틴 모자이크와 마주쳤는데, 변두리의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 그 높은 예술적 성취에 적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나를 그 교회로 데려간 것은 그것의 이름이 우연히 데리다가 쓴 텍스트의 제목과 일치한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우주의 자궁

‘코라’는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우주론을 논하는 가운데에 도입한 개념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플라톤은 우주를 예지계(이데아의 세계)와 현상계(현상들의 세계)로 나누었다. 문제는 ‘오직 지성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데아가 어떻게 감각적 형상을 취할 수 있느냐’는 것. 이 난점을 피하기 위해 플라톤은 예지계와 현상계 사이에 두 세계를 매개하는 제3의 공간, 혹은 빈터를 상정하게 된다. 그것이 코라다. 데카르트가 정신과 신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느라 양자를 매개하는 기관(송과선)을 상정했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데카르트는 후에 ‘송과선은 정신과 육체 중에 어디에 속하느냐?’는 물음을 놓고 곤란을 겪어야 했다. 플라톤의 코라 역시 예지계에 속하는 것도, 그렇다고 감각계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예리한 비판자라면 여기서 이데아를 정점으로 존재의 위계를 세우는 플라톤주의 기획을 전복시킬 기회를 볼 것이다. 데리다의 해체주의 본능이 이를 놓칠 리 없다. 만약에 예지계, 즉 이데아 세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코라와 현상계만 남아, 우주는 무(無)로부터 현상들이 나타나는 영원한 생성의 장(場)으로 변할 것이다.

플라톤은 코라를 ‘수용체’(receptacle)라 불렀다. 이데아를 근본 원인으로 상정하는 이상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데아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때는 아마 코라에게 좀더 적극적인 역할이 돌아갈 것이다. 실제로 화이트헤드는 코라를 능동적인 생성의 장으로 해석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기호학과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코라를 상징계의 바탕이 될 원초적인 생명의 리듬으로 이해했다. 한편, 페미니스트들은 코라에 결부된 자궁, 모태의 이미지에 의거해 그것을 여성의 창조적 신체와 동일시하곤 한다.

건축으로서의 코라

코라는 건축이 될 뻔했다. 1985년 어느 날 건축가 베르나르트 추미가 데리다에게 전화를 걸어 페터 아이젠만과의 협업을 제안한다. 파리의 ‘파르크 드 빌렛’(Parc de Ville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원을 짓는 작업에 이론적 조언을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데리다는 추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아이젠만의 구상에 이론적 영감을 주기 위해 마침 자기가 쓰던 글을 보낸다. 그 글이 바로 <테마이오스>의 문제적 개념, ‘코라’에 관한 것이었다. 데리다의 글을 읽은 아이젠만은 데리다와 함께 지을 정원에 이 개념을 구현하기로 합의한다.

작업은 원활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2년 동안 계속된 협업은 결국 예산의 6배를 초과하는 무모한 계획만 남긴 채 무산되고, 뒤에 그 지적 교류의 흔적들만 <CHORA L WORK>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책은 데리다가 아이젠만에게 보낸 글의 초본,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 정원의 구상을 위한 스케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업 과정에서는 두 사람의 역할이 뒤바뀌어, 아이젠만이 이론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데리다가 외려 기술적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고 한다. 훗날 아이젠만은 데리다의 ‘건축적 보수주의’에 놀랐다고 술회했다.

“나는 두 사람이 정말 정원을 지으려 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책을 내고 싶었을 뿐이다.” ‘파르크 드 빌렛’ 위원회 위원장의 말이다. 실제로 ‘코라’를 건축으로 구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코라’는 예지계에도 현상계에도 속하지 않기에 언어적으로 표기될 수도, 감각적으로 표현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코라’의 개념에 물질적 형상을 입힌다면 그것은 더이상 ‘코라’가 아니라 그것의 결과물에 불과할 것이다. 책으로 남은 그것 역시 코라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막연한 언어적 지시에 불과할 거다.

두 사람의 좌절은 ‘코라’라는 개념의 무용성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동안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이 무용한 개념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가령 하이데거는 코라를 ‘존재와 존재자의 존재론적 차이’로 이해했다. 여기서 ‘코라’는 존재에서 존재자가 생성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을 가리킬 것이다. 데리다는 하이데거로부터 ‘존재론적 차이’의 개념을 수용하여 그것을 ‘디페랑스’(differance)라 바꿔 불렀다. 이때 ‘코라’는 차이를 통해 무한히 의미를 생성해내는 영원한 기표 놀이의 장을 가리킬 것이다.

라캉주의자라면, 예지계에도 현상계에도 속하지 않는 ‘코라’가 상징계로 상징계로도 기입이 안되는 실재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 경우 코라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이 성립한다. 가령 언어로도 표상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이 실은 그 언어와 그 표상의 질서를 세우는 바탕이다. 그렇다면 코라로 되돌아갈 때, 기존의 모든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것들을 원점에서 다시 세울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이 ‘코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개념이 내포한 이 미학적, 정치적 급진성 때문일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지젝이 이 개념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그가 말라르메를 인용하여 “발생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장소일 뿐”이라 말할 때 그 ‘장소’(lieu)란 아마도 모든 사건, 모든 생성의 바탕이 되는 그 장소, 즉 코라를 가리킬 것이다. 그가 ‘거절’(“나는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을 대단한 정치적 개입인 양 말하며, 그것을 ‘무언가’와 ‘아무것도’ 사이의 ‘극소차이’로 정당화하는 것은, 이 적극적 무위(無爲)가 그 장소(lieu=chora)를 여는 가장 급진적인 태도라 믿기 때문이리라.

코라의 건축물을 만들 필요는 없었네

다시 건축물로서 코라로 돌아가자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데리다와 아이젠만이 ‘코라’의 개념을 건축물로 형상화하자는 멍청한 생각에 동의했는가 하는 점이다. 내 생각에 코라를 구현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가령 뒤샹이 변기를 전시회에 내놓았을 때, 당황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그 변기를 전시는 하되 커튼으로 가려놓자는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이렇게 예술과 비(非)예술 어느 쪽으로도 기입되지 않는 변기의 독특한 위상. 그리고 그 변기로 인해 열린 새로운 창조의 장. 코라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니겠는가?

아무튼 데리다와 아이젠만의 구상이 실현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실현됐다면 얼마나 끔찍했겠는가? 가령 아이젠만은 공원 안에 관객이 들어서 이리저리 옮기는 구조물을 설치하자고 제안했고, 데리다는 플라톤이 코라의 비유로 사용한 ‘체’를 기념비로 만들자고 제안했단다. 두 사람은 애초에 코라의 건축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코라’가 굳이 건축물로 존재해야 한다면, 이름 그대로(chora!) 변두리에 외로이 서서 남몰래 품은 비잔틴 모자이크로 방문객을 놀라게 하는 그 교회 하나로 이미 족하다.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