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오지은의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말야'] 꼬리 말고 몸통을 봐주세요
오지은(뮤지션) 2011-02-11

타인의 인터뷰 읽기를 좋아하던 소녀, 자신의 인터뷰에 몸부림칠 때

앨범이 나오고 다시 인터뷰 시즌이 왔다. 인터뷰, 그것은 정확하게 2008년부터 날 괴롭혔던 주제로 난 이 때문에 저 멀리 홋카이도까지 날아가 일주를 하며 고찰해야만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나는 인터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터뷰 ‘읽기’를 좋아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신문을 보다 (에헴, 나 신문 보는 초등학생이었음) 한쪽짜리 인터뷰가 나오면 모르는 사람 얘기라도 정독을 했다. 아마도 내막은, 나는 신문을 보는 엘리트 초등학생이어야 하는데 펼쳐보면 기사들은 딱딱하고 재미없고 아오 어려워 하는 타이밍에 나오는 인터뷰 페이지는 말도 쉽고 헐렁해서 열심히 읽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조금 커서 중학생이 된 뒤 막 창간된 패션지들을 사모으기 시작하면서 거기에 실린 여배우와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들의 인터뷰에 열광했다. 이 잘난 사람들은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평소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가를 슬쩍슬쩍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 다음에는 영화지 인터뷰들을 읽었더니 오호 여기는 또 다른 세계였다. 패션지보다 좀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밀고 당기기를 하더라. 간혹 어떤 인터뷰는 서로 빙글빙글 꼬리잡기만 하다 끝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십대였으므로 이렇게 생각했다. 대체 왜 그럴까! 그냥 다 얘기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게 뭐 별거라고! 고작 그거 보여준다고 스스로의 매력이 닳을까! 말과 지면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을 텐데 최대한 종이 너머의 사람에게 스스로를 더 잘 전하려고 노력해도 되지 않을까!(당시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못했을 테지만 읽는 분들의 이해를 위해)

인터뷰어가 된 날

그러다 잡지쪽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실제로 인터뷰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우와 내가 인터뷰하는 현장에 있다니. 매사 열심히 준비를 했었다.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요시다 슈이치에게 직접 일어로 3장짜리 손편지를 썼을 정도다. <문예춘추>의 편집장이 내게 그의 집주소를 알려주었고(내가 스토커면 어쩌려고…) 아쉽게도 난 스토커가 아니어서 얌전히 일정을 잡아 시부야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그는 무려 인터뷰 현장에 30분 일찍 도착했다. 나와 담당기자는 4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미리 사진 찍을 곳도 보고 인터뷰 준비도 다시 한번 하려 했는데 웬걸, 지금 등장한 저 남자는 요시다 슈이치가 아니더냐.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를 맞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상냥했고, 진지했고, 현명했고, 그 와중에 유머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정성스럽기까지 했다. 그 어떤 질문도 신중히 생각하고 대답하였고, 우문에도 현답을 내놓았다. 맙소사, 난 좌절감을 느꼈다. 당신은 까칠하고, 가볍고, 허세부리고, 딱딱하고, 성의없어도 될 텐데 한번 보고 말 어린 외국인 통역에게 왜 이렇게 상냥합니까. 커다란 산을 만난 듯한, 내 인생에 있었던 가장 강렬했던 경험 중 하나였다. 그건 그가 ‘일본인’이고 ‘작가’인데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잘생겼기 때문에 더했는지도 모르겠다(일본분들과 작가님들께 몹쓸 편견을 사과드립니다).

그렇게 계속 일을 하다보니 이젠 통역이나 진행의 역할이 아닌 기자로서 혼자 인터뷰를 진행할 일마저 생겼다. 아, 긴장과 좌절과 성취와 고생의 나날이여.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그의 긴장을 풀고,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건 당연하지만 정말 힘든 일이었다. 가장 끔찍한 순간은 대화의 흐름이 끊길 때였다.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다음 말을 해야 하는데 혀는 굳고…. 아마 스스로의 그릇보다 큰일을 맡아 긴장한 탓도 컸으리라. 하지만 좀더 대답을 잘해줘도 될 텐데 하는 원망도 있었다. 아아, 나라면 안 그럴 텐데, 주절주절 대답을 잘할 텐데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때는 내가 진짜로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지.

인터뷰이가 된 날

처음 인터뷰 요청을 받고는 그저 신났다. 우와! 내가 인터뷰라니! 내가 대체 어떻게 그려질까! 외국 패션지 여배우 인터뷰 보면 처음 만난 순간부터가 기사가 되던데! 예를 들면 이른 식이다. ‘그녀는 햇살이 잘 드는 원목 테이블에 앉아서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특유의 눈주름 가득한 웃음으로 날 맞았다.’ 나에게 뭐가 궁금한 걸까, 열심히 대답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나는 몇 시간이고 신나게 얘기했다. 하나를 물어보면 열을 대답했다. 유일하게 힘든 건 사진 촬영이었다. 자연스럽게 있으라고들 하는데, 카메라 앞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은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나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앞에 찍은 30분 분량은 버려졌고 31분쯤 긴장하기에도 지친 내가 잠시 멍해 있을 때 좋은 사진이 나왔다. 오호라 비결은 멍해지는 거구나! 그 이후엔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멍을 때렸더니 제법 칭찬까지 듣게 되었다.

사진에 점점 요령이 늘어난 반면 인터뷰는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친한 기자 언니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너무 많이 얘기해. 그런 상대는 인터뷰이로서 매력이 없어. 신비감이 없어져서 다음에 다시 보겠다는 마음이 안 들잖아?’ 쇼크였다. 이럴 수가. 착한 애는 매력없어, 뭐 그런 맥락인가!? 이 세상 그렇게 순진하게 호락호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인가!? 내가 어릴 때 싫어하던 인터뷰이들처럼 굴어야 하는 것인가, 난 연애할 때도 밀당을 안 하는 사람인데 이럴 수가. 하지만 그 다음에 온 쇼크에 비하면 이건 쇼크도 아니었다. 당신은 이런 사람 맞죠! 어 아닌데요. 흥! 맞잖아요! 앗 아닌데요! 에이 맞잖아요! 반복으로 이루어진 인터뷰를 몇번 겪고 난 혼란에 빠졌다. 인터뷰는 진심을 주고받는 시간이 아닌, 허공에 칼질을 하는 시간이었단 말인가. 왜 그들이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페이지 내내 도망을 다녔는지 처음으로 이해했다. 애초부터 몸통이 아닌 꼬리만 쫓는 게임이었고, 꼬리는 잡히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비관이었다. 평생을 생각해도 알까 말까 한 문제에 내가 어찌 답을 한담. 내 무의식을 내가 어찌 안담. 그러다 홋카이도에 가서 신선을 만나서 평화를 얻… 은 건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괜찮아졌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람이 있고, 밤낮을 얘기해도 평행선을 타는 사람이 있다. 고로 이런 인터뷰도 있고, 저런 인터뷰도 있다. 전자를 만나면 운이 좋은 것이고, 후자를 만나면 조금 힘든 것이다. 내 어떤 부분에 돋보기를 갖다대느냐에 따라서 내용은 달라지는 것이고, 돋보기니까 어느 정도 왜곡은 있을 수 있고 사실 그것도 다 내 몸이다. 요시다 슈이치 오라버니를 떠올려보면 된다. 스스로가 상냥하고 진지하고 현명하고 유머있고 정성스러우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아 참 쉽네!

예전에 <씨네21>과 했던 인터뷰는, 내가 여기서 연재해서가 아니고, (진짜인데 왜 써놓고 보니 이상하지) 가장 좋았던 인터뷰 중 하나였다. 날카로운 질문을 하면서도 대답은 열어두었고 시선에 따스함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사진을 찍어준 사진기자도 정말 최고였다. 우하하 좋다좋다 하는 분위기로 사진을 5분 만에 찍어가더니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오오, 이 서정성은 무엇입니까.

나는 여전히 남 인터뷰 읽기를 좋아한다. 내 인터뷰 읽기는 여전히 싫지만 그래도 가끔은 인터뷰가 즐겁다. 꼬리 말고 몸통을 불쑥 움켜쥐어주는 인터뷰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터뷰어 손아귀에서 파닥이는 짜릿함은 나만 좋아하나?

일러스트레이션 강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