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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말야'] 가수는 오바마가 아니라고요~
오지은(뮤지션) 2011-04-08

현직 가수, 대중의 수많은 요구 앞에 지갑 걱정을 하다

나는 사실 화제의 프로그램인 <우리들의 일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는 가수다>)를 본 적이 없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반대로 엄청나게 관심이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부터 기사와 인터뷰를 전부 읽은 것은 물론, 시작한 뒤에는 각종 게시판의 후기는 물론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까지 들어가보았다. 그런데도 본 방송은 보지 못했다. 불편함을 넘어선 공포 비슷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프로그램에 룰이 바뀌는 소동이 일어나서 인터넷에 난리가 났더라. 이 글 저 글 찾아 읽다가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는 둘째치고, 내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정의가 내 생각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내가 몰라도 이렇게 몰랐을 줄이야. 그래서 이번 주에는 <나는 가수다>가 아닌, ‘대체 가수가 뭔가’에 대해서 써볼까 한다(그러기 위해선 보지도 않은 프로그램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흠흠, 죄송).

일단 난 애초부터 이 프로그램의 기본 구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나의 몰이해는 시대에 뒤떨어진 탓일 수 있으니 이해 하시길). 어떻게 누가 누굴 떨어뜨려 흑, 마음 연약한 나로선 도저히 못 보겠어, 하는 맘은 절대 아니다. 난 리얼리티 프로그램, 특히 서바이벌 계열을 무척 좋아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어려운 미션에 휘둘리며 우왕좌왕하다가, 하루 종일 붙어다니는 카메라에 히스테릭한 반응도 보이고, 꼭 한명씩 있는 악녀 캐릭터가 분란을 조장하고, 그러다 미션을 평가받는 순간에 느껴지는 그 긴장감과 절박함이란. 심사위원은 하늘 같은 존재, 그리고 그 하늘은 참가자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그리고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얼마나 잔인한가. <도전 슈퍼모델>에서는 타이라 뱅크스가 모델 지망생들을 난도질, <어프렌티스>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회사원 지망생들을 난도질, <위대한 탄생>에서는 방시혁이 가수 지망생들을 난도질….

이런 프로그램들은 당하는 대신에 지망생들에게 명성과 돈과 기회를 주기에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무엇을 주나. 이미 자기 스타일을 확립하고 이룬 이들이 새삼스레 지적당해 발전할 부분이 있나, 모두가 아는 히트곡을 갖고 있는 이들이 새삼스레 얻을 기회가 있나. 당장 옆 스튜디오서 촬영하는 오디션 방송에 심사위원석에 앉아도 될 이들을 데려다놓고….이것은 21세기적 가치의 전복인가. 일종의 카니발인가?

기준 없는 경연장에 걱정이 주룩주룩

역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냐면 이것은 마치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고현정을 모아두고 무대에서 연기를 펼치게 한 다음 청중 투표로 탈락시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기가 무슨 공중 3회전을 돌면 가산점을 받는 스포츠도 아니고(그런 능력이 있는 연기자라면 무술영화 캐스팅에 가산점은 확실히 받겠다만) 무엇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느냐가 문제인데… 인공눈물 안 쓰고 제일 먼저 눈물 떨어뜨리는 사람순으로? 오열할 때 데시벨 높고 얼굴이 가장 시뻘게지는 사람 순으로? 같은 대본이라도 주룩주룩 눈물 흘리는 사람 있고, 또르르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사람 있고, 저 정도 연기 귀신들이라면 해석 다음에는 ‘틀림’이 아닌 ‘다름’만이 있을 텐데 무슨 기준으로 저 사람들 중 하나를 떨어뜨린단 말이냐 하고… 나는 프로그램 시작되기 몇 주 전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존경하는 선배가 위기에 처하는 것을 먼발치서 지켜보는 후배가 된 기분으로.

그런데 첫 방송이 끝나고 각종 게시판은 가수들에 대한 절찬으로 뒤덮였다. 음원 판매도 늘었다고 하고 침체된 음악계에 구원투수가 되어줄 프로그램이라는 말도 들었다.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칭찬 중에 꼭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하나씩 있었다. “너무 멋진 무대였습니다. 이런 무대를 얼마만에 TV에서 보는지”라든가 “소름 돋았습니다. 또 어디서 이런 무대를 보겠어요. 감사합니다” 등등. 어라라? TV에서 자주 했습니다만? 다른 프로그램에서 많이 했습니다만? 더 좋은 음향, 밴드, 환경에서 더 잘 불렀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어디 있었어?’라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동안 바로 눈앞에서 열심히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나는 어리둥절했다. 잠깐의 리서치 끝에 새벽의 음악방송은 회사원이나 학생이 보기 힘들며 (아하), 그래서인지 줄줄이 폐지가 되어, 이런 주말 좋은 시간대에 노래를 부르면서 관심을 얻으려면 ‘너 탈락임’ 카드 정도는 꺼내놓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방송 3사 중 남은 것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단 하나. 대기실 터지겠다.

그리고 3주차에 드디어 멋진 무대와 극찬에 가려져 있던 서바이벌이라는 카드가 이빨을 드러냈다. 엄밀히 말하면 드러냈다가 감추었다고 해야 하나. 그랬더니 인터넷에 폭풍이 불어닥쳤다. 가수는 패닉, 피디도 패닉, 그리고 시청자의 감정은 주로 분노였다. 이번에는 글이 너무 많이 쏟아져서 이틀에 걸쳐 웹서핑을 했다. 다양한 의견이 있어서 정리하기가 어렵지만 대략 노래가 멋졌고 프로그램이 소중했던 만큼, 시청자의 상실감이 몹시 큼, 원리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를 안방극장에서까지 봐야 하다니 몹시 모욕당한 기분임, 저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자세가 안된 사람들임, 저런 인성이 덜 된 사람의 노래는 듣고 싶지 않음, 이런 느낌이었다. 사실 난 방송을 안 본 사람으로서 편집이나 프로그램의 룰과 흐름, 시청자와의 약속, 이런 부분은 잘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 저런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라고 했기에 서바이벌 부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아마 제작진도 그러지 않았을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서바이벌을 안 하면 이상하긴 하지만 제작진은 그 부분을 단지 장치로만 생각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우승자도 없고 딱히 상금이나 데뷔의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내게 쇼크였던 건 사람들이 가수라는 직업에 요구하는 사항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점이다. 노래를 잘해야 하니 예민한 감성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급변하는 상황에 냉철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이성 또한 갖춰야 하고, 어떤 정신적 충격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굳은 마음과 공직자를 뛰어넘는 원리원칙을 지키는 자세에, 12시간의 녹화에 견딜 수 있는 체력과 웃음을 잃지 않는 상냥함, 그리고 계속 따라다는 카메라를 상대해야 하는 무던함마저 있어야 했다. 무슨… 오바마인가? 사회생활이 여러 자극에 무던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면, 음악 생활은 여러 자극을 더 깊게 느끼고 품은 그 결과물로 음악을 내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이 요구사항에 납득할 수 없었다. 예민한 감성 파트 하나 버티는 것만으로도 매달 한약값이 수십 만원씩 깨지고 있다. 저걸 다 하려면 한약값 수백 만원은 깨질 테니 난 거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루어내면 승천할까 두렵다.

서바이벌 개념이 사라진 것을 놓고 시청자의 권위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가수가 노래를 거짓으로 하면, 듣는 사람보다 다른 것을 더 중시하면, 어떻게 해야 호주머니에서 돈을 긁어낼까를 생각한다면 바로 그때가 가수가 시청자를 물로 보는 순간이고 또한 시청자가 분노해야 할 순간이다. 예능인이 예능을 우습게 보면 욕먹어 싸다. 가수가 음악을 우습게 보면 욕먹어 싸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가수인가, 예능인인가. 답은 프로그램 제목에 나와 있다. 그들은 가수다. 프로그램 제목이 고도의 역설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 강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