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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야'] 모든 것은 몰이해에서 오는 것일지도<최종회>
오지은(뮤지션) 2011-04-22

세상은 아직도 공감 안 가는 것투성이

시작은 냉장고였다. 내 냉장고는 전에 살던 사람이 쓰던 걸 싸게 물려받은 중고품으로, 겉이 깔끔해서 오래 쓸 줄 알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수리기사님을 불러서 물어보니 사람이 노쇠한 것과 같다며 고쳐도 완전히 건강해지기는 힘들다고 했다. 내 손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된지라 젊은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굉장히 오래 일해오셨던 것. 이번에 고쳐도 언제 다시 멈출지 모르니 수리비 쓰지 말고 새것을 사는 게 좋지 않겠냐고 기사님이 조심스레 권하셨지만 난 완강히 거부했다. ‘고치면 더 쓸 수 있는데 새것을 왜 사는가!’ 하는 강직한 마음이 날 환히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말이다.

기사님의 예언은 정확했고, 몇 개월 뒤 냉장고는 결국 다시 멈췄다. 이럴 때마다 계속 모터를 교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어쩔 수 없이 냉장고 구입을 위한 인터넷 창을 열었다. 난 혼자 사는 서민이니까 적당한 크기의 서민 냉장고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검색을 시작하자마자 웬걸, 온 세상은 (적어도 한국은) 양문형 냉장고 천지였다. 내가 생각하는 위칸 냉동실, 아래칸 냉장실, 그렇게 문이 한짝씩 달린 ‘일반형’ 냉장고는 시장에서 희귀종이었다. 충격이었다. 나 혼자 해먹고 사는데 800리터짜리 냉장고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사치도 이런 사치가 없다. 게다가 그 특유의 크리스털 박힌 디자인, 분홍색 꽃무늬, 하이그로시 공법이 더더욱 내 마음의 벽을 높였다. 이런 과소비와 대량소비를 조장하는 사회 같으니, 나는 분노의 마우스질을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대부분의 제품이 그 가격에 맞는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만 그 세계를 파고들어보면 알 수가 있다. 그 가치를 쳐주는가 마는가에 개인차가 있을 뿐이다. 차가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은 슈퍼카의 가치를 모르고, 백에 물건이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은 악어백의 가치를 모르고, 냉장고가 차갑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은 양문형 냉장고의 가치를 모르고….

냉장고 검색하다 알게 된 소비의 황금룰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전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앞의 두개의 가치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파보면 알 수 있으려나) 마지막 것의 가치를 나는 30분의 검색 뒤에 잘 알게 되었다. 한국의 양문형 냉장고는 일반형에 비해 월등히 우월하고도 합리적인 실로 엄청난 물건이었다(이미 세뇌가 끝난 상태라 신빙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경고). 세계 최고 용량의 엄청난 저장력, 자기부상열차에 쓰는 기술을 적용한 10년 보증의 모터, 엄청난 전력 절감, 결정적으로 이런 기술을 가진 양문형이 일반형과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사실. 아아, 팔릴 만하니 그렇게 만들어두었고 그렇게 만들어놓았으니 또 팔리더라라는 소비의 황금룰(또는 쳇바퀴)에서 ‘이유없는 소비’란 결국 없는 것이다. 그렇게 ‘양문형 냉장고를 사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고 나는 또 좁아터진 내 마음과 공감의 폭을 조금 넓혔다. 내가 몰래 비난하던 수많은 신혼집이여, 이 자리에서 반성합니다.

하지만 슈퍼카와 악어백에 대한 욕망처럼 세상은 아직도 공감 안 가는 것투성이. 어느 날 친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동창 결혼식에 갔는데 친구는 바쁘다고 못 오고 그의 여자친구만 와서 동창들과 하하호호하고 갔다는 이야기. 친구는 무심코 한 얘기였지만 난 이국의 관습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아니 나는 나 아는 사람 결혼식 가는 것도 힘든데, 애인 친구 결혼식에 어떻게 애인 없이 갈 수가 있지?(관계가 좀 복잡하긴 합니다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날 보고 친구가 오히려 더 당황했다. 그렇다. 나는 ‘애인의 친구의 애인과 친해지는 심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이런 걸 많이 알면 알수록 세상이 더욱 다채로워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장르도(?) 늘어나는 것인데, 내 머리와 마음에 리미트라도 걸려 있는지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애인의 친구의 애인과 친해지는 심리

내 연애를 돌이켜보았다. 나에게는 이런 만남이나 인연이 없었던가. 그러고보니 남자친구의 친구들은 어디까지나 그의 친구들이지 나와는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물론 내 친구들 또한 그에게 마찬가지.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면 ‘어이쿠 잘 놀다오세요’ 하고 나는 나대로 신나게 놀고, ‘친구들이 너 보고 싶대’라고 하면 그제야 ‘내 남자친구가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니까’ 염탐하러 술자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런 자리는 아쉽게도 재미가 별로 없었다. ‘나 자신’이 아니고 ‘누군가의 여자친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선 너무 ‘파하하!’ 하고 웃어서도 안될 것 같고, 너무 대화에 깊숙이 끼어들어도 안될 것 같고, 대화의 흐름이 내쪽으로 와도 안될 것 같고, 그저 적당히 웃고, 받아치고, 주억거리기만 해야 할 것 같았다(물론 나 혼자 오버한 걸 수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애인의 친구들과도 친해질 수 없었던 내가 어찌 한 다리 건너 그들의 여자친구들까지 친해질 수 있겠는가. 끝판왕은 간혹 모임에 준비되어 있던 ‘여자친구석’(여자친구들끼리 모여 있는 테이블)이었는데 다시 돌이켜봐도 입술이 바싹 마르는 추억이다. 나는 이런 쪽은 역시 맞지 않아 하고 생각해버리면 편하겠지만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쉬이 그럴 수가 없다. ‘나는 다르다’라는 생각은 어쩌면 단순한 몰이해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몇달이 지나고, 아는 동생과 약속을 잡다가 문득 깨달았다. 가만 보자, 얘도 굳이 출신성분을 따지자면 지인의 여자친구로 시작한 아이인데 지금은 둘이 만나는 게 훨씬 편한 사이가 되지 않았는가. 서글서글하고 ‘파하하!’ 웃고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솔직하고 싹싹한 A양과 친해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자친구들’로 만났던 그 언젠가 어색했던 시작점은 까먹은 지 오래. 생각해보면 혼자 결혼식에 참석했던 그분도 그 테이블 사람들과 어찌 시작했는지 중요하지 않은 꽤 돈독한 친구관계가 이미 되어 있는지 모른다. 물 위에 두둥실 떠다니듯 이 사람 저 사람 스쳐가며 만들어지는 흐름이 어느새 연락 끊긴 옛 친구보다 더 돈독한 인연을 낳을 수도 있는데 나는 해안선에 정박해서 ‘여자친구’라는 무거운 추를 내리고 노려보기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상대방을 그렇게 묶어버렸던 것도 나였다. 항상 그랬듯이.

양문형 냉장고와 여자친구 미션은 해결했다 쳐도 역시 슈퍼카와 악어백과 집 한채 가격의 시계와 영어유치원은 나중이 되어서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딱 잘라 말하면 꼭 나중에 번복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 되레 무섭지만 말이다(그렇다면 악어백은 미리 이해해둘까?). 10년 뒤에 내가 이 말을 뒤집고 저 중 하나를 실천하고 있다면 비난… 은 하지 마시고 열심히 살아서 부를 축적했구나 하고 박수를 쳐주시기 바란다. 물론 농담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 강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