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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홍] 김기덕 감독님이 나를 잡아주셨다
김용언 사진 최성열 2011-06-24

<풍산개> 전재홍 감독

남북 분단을 직접적으로 끌고 들어온다. 그런데 무겁진 않다.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전재홍 감독이 연출한 <풍산개>는 기이한 유머와 격정을 품고 있다. 김기덕필름의, 전재홍 감독의, 그리고 배우 윤계상의 새로운 시작이라 부를 만한 기세가 넘쳐난다. 전재홍 감독을 만나 <풍산개>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이모저모 들어보았다.

-2007년 <아름답다> 이후 4년 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김기덕필름의 첫 작품이 <아름답다>였고 두 번째가 <영화는 영화다>였다. 그리고 스톱됐다. <아름답다>로 해외에서 상도 받았지만 극장 잡는 게 힘들었고 흥행과도 거리가 멀었다. 첫 작품에 만족하지만 그 이후 혼자 작업만 계속하며 좀 외로웠다.

-<풍산개> 시나리오를 김기덕 감독이 썼다.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지난해 가을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3년 동안 문닫았던 김기덕필름이 다시 오픈하는 작품이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분단에 대한 생각도 언제나 하고 있었고. 특히 내가 중립국인 오스트리아에서 음악학교를 다니던 시절, 북한 학생들이 몇명 있었다. 같이 음악을 하는 입장이었지만 쉽게 말을 걸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말없는 남자’라는 설정은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 <빈 집> <숨> 등에서 인상적으로 차용됐으며, <비몽>에서도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를 등장시킴으로써 언어적 장벽을 구축했다. <풍산개>의 말없는 주인공 배달부는 이들과 어떻게 다른가. =<풍산개>에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주인공은 국경을 초월하는 존재다. 넌 북한 편이냐 남한 편이냐, 라는 질문을 계속 받는데 막상 말을 하는 순간 어디에 속해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버리니까. 그렇게 정체가 드러나면 <풍산개>의 주제에 어긋난다. 두 번째 이유로는 언어의 장벽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언어가 아니라 소통이 절실하다. 대사가 필요없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세상과의 단절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이 안 보인다든가 귀가 안 들린다든가 하는 여타 감각기관의 단절과는 어떻게 다를까. =말을 하지 않는 건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사람이 말을 하지 않을 때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난 어릴 때 말을 좀 더듬었다. 그래서 말을 잘 하지 않았고, 대신 시각과 청각이 발달했다. 그런 개인적인 이유에서도 주인공에게 굉장히 공감했다.

-주인공을 연기한 윤계상과는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내가 술을 안 마시기 때문에 계상씨와 줄곧 커피를 마시며 토할 때까지 얘기했다. (웃음) 내가 원하는 배달부는 기존의 김기덕 캐릭터와는 좀 달랐다. <빈 집>처럼 신적인 존재는 아니었고, 감정이 있고 현실적이며 인간적인 캐릭터이길 바랐다. 그걸 느끼기 위해 전체 리딩을 할 때에도 계상씨는 대사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몸으로 먼저 느끼는 게 중요했다.

-윤계상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가. 그는 다소 순진하고 개구쟁이 같은 인상이 강했는데. = 진짜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였다. 언제나 부드럽고 순진하다는 이미지로 한정돼 있었는데, <비스티 보이즈>와 <집행자>를 보면서 이 배우는 뭔가 더 가지고 있다, 이걸 끄집어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더라. <풍산개>를 읽자마자 바로 계상씨를 떠올렸다. 주변에서도 너무 부드러운 배우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내가 고집을 부렸다.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하는 게 더 흥미로우니까. 계상씨도 시나리오 읽더니 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고, 바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 만나는 순간, 풍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다. 나도 연출에 대한 갈망이 있다. 할 수 있다, 같이 가자고 했다.

-어떻게 휴전선을 건너는지가 <풍산개> 초반의 핵심이다. 장대높이뛰기라는 설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땅굴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이미지라는 게 휴전선을 뛰어넘는 거니까. 배달부도 날 수 있다고 봤다. 아무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걸 얘는 그냥 해버리는 거다.

-초저예산이라고 알고 있다. 그 예산 안에서 휴전선 장면을 찍는 게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제작비가 총 2억원이었다. 풍산과 인옥이 도망가는 갈대밭 장면은 각기 다른 장소 세곳, 다른 시간대에 찍었고, 휴전선도 작게 만들어둔 다음 CG의 힘을 빌려 늘린 거다. <아름답다>를 1억8천만원 정도에 찍고 나서 다신 이 예산으로 찍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이번에 <풍산개>를 하고 나니 <아름답다>는 무척 풍성하게 찍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풍산개>는 항상 야외촬영에 밤촬영, 평균 영하 15도 날씨 속에서 찍었다. 배우와 스탭의 열정만으로 가능했던 영화다.

-주인공이 임진각에서 서성거릴 때 많은 이산가족과 마주친다. 그중 한명이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강조된다. 아무래도 김기덕 감독의 신작 <아리랑>이 연상되던데. =아, 그걸 의도한 건 아니었다. 김기덕 감독님의 <아리랑>은 <풍산개>가 끝날 때쯤 촬영이 시작됐다. <아리랑> 노래 자체가 한국인의 한이 담겨 있는 노래라 넣은 것이다.

-배달부와 북한 공작원 팀장 모두 클래식 가곡을 듣는 장면이 유독 도드라진다. 감독 본인이 직접 부른 노래라는 얘기도 들었다. =북한 공작원은 기존의 이미지, 강하고 야수적인 인상을 없애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옷도 다른 공작원보다 훨씬 스타일리시하게 입는다. 이 사람이 스파이가 아니었다면 미술선생이었을 것 같은 로맨틱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풍산이는, 마치 나 같았다. 외로운 공간에서 정체성 없이 사는 인물. 나의 개인적인 일부분을 풍산에게 넣고 싶었다. 그가 듣는 가곡은 슈만의 <연꽃>이다. 달이 뜨는 밤을 기다리는 연꽃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그게 마치 풍산과 인옥의 감정 같았다. 미래에 일어날 인옥과의 사랑을 복선처럼 사용하는 매개체로 <연꽃>을 넣었다.

-여주인공 인옥에 대해서는 배달부만큼이나 배경 설명이 없다. 아마도 고아처럼 살았고, 아빠를 대하는 심정으로 고위 간부의 연인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짐작만 해볼 수 있다. 특징이라면 <풍산개> 속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주어졌다는 것 정도인데, 김규리와는 어떤 식으로 인물을 구축해나갔는가. =부모님이 숙청을 당해서 버려진 아이일 것이고, 고위 간부가 인옥을 살려주면서 연인 관계가 시작됐다는 설정을 했다. 그러다가 배달부를 만나며 결정적인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고. <풍산개>에서 인옥이 가장 현실적인 인물 같다. 그래서 유일하게 이름이 있다. 규리씨 역시 예전부터 같이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풍산개> 출연을 의뢰했을 때에는 당시 다른 작품을 촬영 중이더라. 여주인공 캐스팅이 너무 힘들었다. 크랭크인 날짜 13일 전까지도 결정이 안된 상태였다. 전체 리딩 때도 여주인공이 없으니 모두 불안해했다. 그런데 마침 그 순간 규리씨가 시나리오를 잘 읽었다고, 지금 찍는 영화 촬영이 끝나간다고 연락이 온 거다. 당장 만났다. 이미 인옥에 대해 100% 파악하고 있더라.

-<풍산개>의 웃음은 주로 남한 요원들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배용근이 연기한 ‘꼴통’ 요원의 고문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웃음) =<풍산개>는 아주 계산적으로 찍었다. 15분, 30분, 45분, 1시간 타이밍에 딱딱 포인트가 나오게 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게 15분 타이밍과 1시간 타이밍이다. 꼴통 요원 고문이 1시간 타이밍에 등장한다. 관객의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 확 끌어줄 수 있는 장면이 필요했다. 배용근씨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꼬챙이는 CG로 만들었지만 실제로도 와이어 없이 알몸으로 내내 매달려서 촬영했다.

-(이 부분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대체 어떻게 끝날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두 주인공이 모두 죽는 결말을 놓고 고심이 컸을 것 같다. =그게 현실이니까. 원래 엔딩은 좀더 은유적인 쪽이었는데 내가 좀 바꿨다. 멜로 라인을 훨씬 강조해서, 분단이라는 무거운 소재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촬영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반드시 25회차 안에 끝내야 했다. 26회차로 넘어가는 순간 영화를 엎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25회차 촬영 마지막 날, 밤샘촬영을 하는데 그 다음날 해가 막 뜨면서 간신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리허설이 정말 중요했다. 촬영을 시작하면 고칠 시간이 없었다. 예전에 성악을 공부할 때도 그랬다. 세 시간 공연을 위해 두달 내내 연습한다. 영화도 그 준비 과정을 거쳐야만 회차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대신 날씨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세상에, 너무 추우니까 입김도 안 나오더라. (웃음)

-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라서 좀 의외였다. =폭력성이 이유라고 하던데… 나도 좀 이해가 안된다.

-촬영 당시 좀더 밀고 나가고 싶었던 부분들이 아쉬워지진 않던가. =아니다. 지금이 딱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잔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김기덕 감독님 영화도 보면 설정이 센 거지 비주얼이 센 게 아니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데, 굳이 다 보여줄 필요가 없다. 더 센 걸 보여준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난 <풍산개>를 찍으면서, 돈이 아니라 열정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입증하고 싶었다. 입봉을 준비하는 젊은 감독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희망을 주고 싶었다. 물론 이게 롤모델이 돼서는 안되겠지만. (웃음)

-김기덕 감독과 함께 칸국제영화제에도 참석했다. 해외 관계자들이 <풍산개>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을 것 같은데. =난 철저하게 <아리랑>에만 집중했다. 김기덕 감독님이 훨씬 중요했고, 이분이 칸에서 인정받고 새로 시작하는 게 더 중요했다. <아리랑> 상영이 끝나고 기립박수받을 땐 눈물이 나더라. 내겐 아버지 같은 분이다. 감독님께서 “전재홍 감독이 없었다면 난 일어서지 못했을 거다”라고 하셨는데, 그 반대다. 김 감독님이 날 잡아주신 거다.

-<풍산개>를 마친 소감이 남다른 것 같다. =3년 동안 김기덕필름이 폐허였다. 사무실도 없어서 내가 사는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썼다. 연출부들이 한번에 앉을 공간도 안돼 침대까지 아예 엎어버릴 정도였다. (웃음) 2억원 예산으로 찍다보니 나중엔 100원도 아깝더라. 스탭들과 배우들이 도망 안 간 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다들 경력과 능력이 출중한 분들인데, 열정만 믿고 도와주신 거다. 이분들을 먼저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김기덕필름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나 스스로도 극한으로 많이 몰았던 것 같다. 어제 시사회 때 참 좋았다. 김기덕 감독님의 연출부들이 죄다 한자리에 모였다. 장철수 감독님, 조창호 감독님, 노홍진 감독님, 문시현 감독님이 모이니까 덜 외로웠다. 멀리서나마 날 응원해주고 있구나 싶었다. 장훈 감독님에게도 연락했는데 후반작업 때문에 못 오시게 됐다며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것도 고마웠다. 김기덕 감독님이 어제 우리가 모인 걸 직접 봤더라면 흐뭇해하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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